미안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미안해
아이가 9개월이 되었을 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했다. 그와 동시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푸른 아침에 아기 침대에서 자는 아이를 살포시 떠올려 겉옷만 겨우 입혔다. 차에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엄마는 20분을 달려 이 시간에 이 작은 아이를 맡아줄 제법 신뢰 가는 어린이집을 향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내가 회사에 있는 9시간 동안, 아니 왔다 갔다 하는 시간까지 더하여 거진 10시간을 아이는 기관에서 보냈다. 한 살, 두 살, 세 살...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주욱. 학교에 들어가서는 오후 시간을 학원으로 채웠다.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아이는 부모가 아닌 선생님 곁에 있어야 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했다. 아이가 나보다 working time 이 더 길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여러 차례 울었다. 편안한 집을 놔두고 긴 시간 바깥에서 보내야 하는 아이에게 무척 미안했다.
그에 반해 나의 어린 시절은 달랐다. 언제나 집에는 엄마가 있었다. 할머니도, 동생도 있었다. 하교 후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간식을 먹으며 빈둥빈둥 보내다 저녁을 먹었다. 해가 하늘 높이 떠 있을 때 집에 들어갔고, 집은 늘 가족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서 쓴 나의 휴직이 아이의 생활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평소처럼 학교를 가고, 이어서 학원을 간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안 좋은 아이에게 오늘은 학원에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오라고 말한다. 학원 일정에 구멍이 생길 때 그 시간에 집에 와서 간식 먹고 다음 학원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한다. 혹시 학교나 학원에서 아프면 견디지 말고 집에 오라고 말한다. 언제든 엄마가 집에 있다고.
내가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진 못했지만,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엄마가 집에 있고 없고에 따른 안정감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아침에 모두가 자고 있을 때 출근 준비를 하고 쌩 나가는 엄마가 아닌, 편안한 옷을 입고 언제든 집에 머물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그 자체로 주는 안정감이 있지 않을까. 밖에서 급한 일이 생겨 전화해도 한 시간 이내로 달려오기 어려운 엄마가 아닌, 부르면 10분 내로 만날 수 있는 엄마.
한 번은 아이가 친구들과 모여서 미술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말했다. 우리 집에서 하라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다 괜찮으니 우리 집에 초대하라고 말이다. 아이 친구들이 온 날, 나는 미리 준비해 놓은 델리만쥬를 달콤하게 덥히고, 24팩 사놓은 과수원 음료를 꺼내며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이만큼 많이 사놨으니, 친구들 다 데려와도 돼~"
별것 아닌 그 간식을 쟁반에 담는데 뭐가 그리도 참 행복했다. 그동안 못해본 영역의 엄마 노릇을 해보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 우리 엄마가 집에 온 내 친구들, 학습지 선생님들에게 소담히 간식을 내오시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그 모습들이.
이런 감정들이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커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쁘고, 아련하고, 슬프고, 안쓰럽지만... 어쩌면 나만의 감정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아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내가 다 알 수 없기에. 날 때부터 워킹맘에게서 자라난 우리 아이는 모든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언제든 집에 엄마가 있어."
그래서 이 말이 아이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도 확신이 없다. 아이를 위해 건넨 말이지만 결국 끌어안아버린 건 나 자신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엄마라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며 지켜주는 엄마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며 글썽이는 지금이 나만의 청승일 수도 있다. 아니, 나만의 청승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에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회사를 가고 안 가고 가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커다란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거짓말 같은 만우절이 지나고 빼박 4월이 되었다. 복직의 달이다. 꽃소식이 늦은 우리 동네의 벚꽃이 질 때쯤 나는 다시 '언제든 집에 있는 엄마'를 내려놓는다. 회사에서 아이의 학원 알림 메시지를 받으며 잘 이동했구나 안심하고, 아이에게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지 하며 얼른 받는 그런 날들이 다시 시작되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아이는 자라나서 이제 혼자 오갈 수 있는 길이 늘어났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으니. 청승쟁이 엄마는 이번 봄까지만 울며 웃다가 다시 씩씩해질게.
집은 아니겠지만, 언제든 어디에서라도 엄마가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