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두 리스트 속 로망 한 줄
다이어리에는 언제나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회사에서는 매일의 업무 리스트를 적은 뒤 끝낼 때마다 하나씩 체크하며 관리했고, 집에서 쓰는 다이어리도 마찬가지였다. 독서, 글쓰기, SNS 브랜딩, 강의 듣기 등등 to do list로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6개월 간의 휴직을 하며 내 다이어리는 본격적으로 리스트를 확장했다. 책 출간과 작가 브랜딩, 커뮤니티 활동이 본격적으로 들어갔고, 사이사이에 운동과 집안일도 자리를 차지했다. 어떤 날은 할 일을 15개 넘게 적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할 일 만으로도 가득한 리스트 속에 내가 의지적으로 넣은 것이 있다. 예전에는 없던 항목, 바로 [로망] 카테고리다. 해야 할 일이 아닌, 순수히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고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새로운 달이 시작될 때 다이어리의 먼슬리 페이지 상단에는 이번 달의 목표나 체크 리스트를 적는 박스가 4개 있다. 그중 한 칸을 나는 [로망]에 할애하고 있다. 위클리 페이지에도 마찬가지다. 그 주에 해야 할 일과 대등하게 [로망] 카테고리를 꼬박꼬박 적고 있다. 이 칸을 채울 때 아마 나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을 것임을 거울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로망이라니, 다이어리에 로망을 적는다니. 무엇보다 로망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니!'
다이어리에 로망을 적을 때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나 홀로 기쁘고 벅차게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을 펜으로 적으며 계획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존중하는 경건함 마저 들었다.
[로망]에 들어가는 것들은 이러하다. 카페 독서, 카페 글쓰기, 전시회 관람, 북토크 참석, 오프라인 책모임, 지인 만나기 등등. 꼭 해야 하는 일들도 아니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일들도 아닌, 순수히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다. 커리어, 미래 지향, 이타심 이런 것들과는 상관없는 어찌 보면 매우 나 중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일들의 목표는 단 하나, 나의 행복이니까.
"그럼 그냥 하면 되지, 다이어리에 열심히 쓰고 체크해 가면서 까지 할 일이야?"
나도 스스로 묻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일들일수록 내가 적극적으로 챙기지 않으면 누구도 알려주거나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행복은 생각보다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그 열매를 하나씩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제는 많은 로망을 실현했다. 만나고 싶었던 이와 공감 가는 이야기를 나눴고, 전시회에서 아름다움을 향유했다. 저녁에는 오랜 친구들을 만나 그간의 안부와 지금을 나눴다. 평소 가보지 못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할 일을 정리하기도 하고, 오후의 예쁜 거리와 밤의 흥겨운 거리를 걷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단순히 스케줄표에 있는 일정을 해내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고 골라 다이어리 한켠에 적어놓는 일이고, 그것을 들여다보며 기대하고 기다리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에게 해주는 일이다. 행복에 대한 성취감을 얻는 일!
3월도 어느새 마지막 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 달은 섭섭함이 크지 않을 것 같다. 계획한 로망을 모두 실현했으니까. 기쁘게 다음 달의 로망을 슬슬 세워 볼 수 있겠다.
이 휴직이 끝나갈 때, 작은 내 다이어리 세상 속에서 로망 회고 타임을 가져봐야겠다. 얼마나 많은 로망이 주렁주렁 달려 있을지 생각만 해도 크리스마스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