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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Apr 26. 2024

그 때 그 노래

Half The World Away

그 때 그 노래 - 장기하와 얼굴들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이상하다 했더니

벌써 몇 달째 구석자리만을

지키고 있던 음반을

괜히 한 번 들어보고 싶더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예쁜 물감으로 서너 번 덧칠했을 뿐인데

어느새 다 덮여버렸구나 하며 웃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였구나

그렇다고 내가 눈물 한 방울

글썽이는 것도 아니지마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https://youtu.be/jA1Przdo0ZE?si=8XmD0EwlV_PBhZx6



 대학에 입학하고 첫 학기는 방탕에 빠져 통으로 날려 먹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선후배를 중심으로 알코올이란 비공식 동아리를 만들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주점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게 고작이었다. 기세등등하게 술잔을 부딪히고 고성을 질렀지만 허세 가득한 몸짓은 언제나 부자연스러웠다. 세상에 갓 나온 스무 살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다. 공작새의 구애처럼 제발 나를 알아봐 주기를 애원하며 서글픈 춤을 췄다. 같은 부류를 찾아 인간으로서의 합격점을 받는 것이 최우선 순위였던 이유는 내면 깊이 존재하는 결핍과 열등감 때문이었다. 기껏 술자리를 기웃거리며 사람을 사귀는 데에 시간을 다 허비했다. 개중에는 야무지고 성실하여 학업에 열중하거나 놀 거 다 놀면서도 준수한 학점을 받은 친구들도 있었다. 공업수학과 전자기학, 회로이론 같이 적성에도 맞지 않는 수업을 들으며 진작에 편입을 고민할 지경이었다. 공업용 계산기를 아무리 두들겨 봤자 내가 이동해야 할 좌표는 나오지 않았다. 적성과 진로에 대해 아무도 조언해 주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의미 없는 원망이었다. 어차피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있기에 누구도 대신 꿈꿔 줄 수 없으니까. 도살장으로 가는 가축처럼 질질 끌려다니며 알아들을 수도 없는 강의를 듣다가 손목시계만 쳐다봤다.

 막 선배가 된 2학년들은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현인처럼 어른 행세를 했다. "형 때는 말이야", "오빠가 살아 보니까"로 시작되는 일장 연설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런 허풍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년에는 내가 소화해야만 하는 역할이라 생각하고 똑같이 모방할 준비를 했다. 선배들은 앙증맞게도 자리가 파할 무렵이면 한두 푼씩 걷어 술값을 충당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셨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합석해서 어울리고 다음날이면 어색해서 안면몰수했다. 속이 좋지 않은 어떤 날엔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집어넣어 억지로 구토를 유발했다. 결국 그간 정성껏 축적한 술과 인간관계는 역겨운 토사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방종의 결과는 속이 텅텅 빈 허무뿐이라는 진리를 배우는 데에 한 학기가 걸렸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시간이란 대가를 지불했음에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알코올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교내 음악 동아리에 입단 오디션을 보았다. 음악이 나의 공업용 계산기라고 철석같이 믿던 시기였다.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Oasis의 'Half The World Away'라는 노래를 불렀다. 가요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듣는 음악이 최고라는 만용과 우월감이 선민의식처럼 충만했다. 탈피와 탈출을 갈망하는 곡의 가사가 꼭 내 맘 같아서 열창했다. '내 노래 어때? 장난 아니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했지만 현실은 기타를 썩 잘 치는 것도, 노래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여행스케치 같은 그룹의 곡을 카피해서 화음을 강조하는 가창곡을 공연에 올리는 포크 음악 동아리였다.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알 수 없는 눈빛을 교환했다. 이윽고 동아리 회장이라던 남자가 입을 뗐다. "혹시 베이스 기타 칠 줄 아세요?"

 베이스 기타는 리듬을 주도하는 드럼만큼 강렬하지 않았고, 일렉 기타처럼 다채로운 주법과 사운드로 멜로디를 갖고 놀지도 않았다. 키보드는 리듬과 스케일을 동시에 표현하며 악기 구성의 중심이 되었다. 베이스 기타는 화려함이 부족해 주목받지 못했다. 거들고 보조하는 조연의 역할 같았다. 피아노나 기타처럼 단독으로 연주하기 힘들었다. 음의 이동이 적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끌렸던 것은 울림이 강한 중저음이었다. 킥 드럼과 함께 박자의 기초가 되어 가장 낮은 음고를 생성하였다. 밑바닥에서 시작되는 듯한 둥둥거리는 저음은 스무 살의 불안하고 성마른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때로는 끈적끈적하고 때때로 리드미컬한 베이스 기타의 그루브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군대 간 어느 선배의 뒤를 이어 베이시스트가 되었다.

 

 유진이 학기 초에 동아리 입단 지원서를 내러 왔을 때 모든 남자들이 술렁거렸다. "쟤는 노래를 못해도 무조건 뽑아야 한다." "악기를 가르쳐서라도 우리 동아리로 데려와야 한다." 남자 선배들과 동기들은 여자 부원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어떻게든 유진을 뽑고 싶어 했다. 마침내 신입생 오디션이 시작되었고 2학년이 된 나도 심사를 보았다. 유진이 선곡한 곡은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라는 노래였다. "음, 선곡 나쁘지 않네." "노래 고르는 것도 실력이야." 팔푼이들이 시작부터 노골적인 편파 판정을 예고하자 여자 부원들이 눈을 흘겼다. '제발, 그만해. 너희 때문에 노래도 못 해보고 집에 가겠어.'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이며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유진의 목소리는 꾸밈이 없고 청아했다. 어떻게 그렇게 음정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잘했다. 마치 시간이 슬로모션으로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베이스 기타의 가장 낮은 '미' 음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묵직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그때 문득 깍지를 끼고 있는 유진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예쁜 얼굴과 아름다운 노래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했지만 나만이 손을 발견했다. 청량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하게 들리는 그녀의 노랫소리처럼 유진의 손에는 투박하고 거뭇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팔푼이들이 감동의 기립 박수를 쳤다.

 

 알코올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유진과 후배들에게 매일 밥을 사주었다. 공연 때 유진의 솔로 곡에는 항상 내 베이스 기타와 편곡이 들어갔다. 부쩍 친해진 유진과는 한참 가까이 지냈다. 종종 같이 저녁을 먹고 통학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통화하며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음정이 그렇게 정확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고 했다. 유진은 셀 수 없을 만큼 고백을 많이 받았는데 제대로 된 놈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한 번도 먼저 고백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유진의 아버지는 술 먹고 엄마를 때린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술 좋아하는 남자는 질색이라고 했다. 나는 체질에 안 맞아서 술은 입도 못 댄다고 했다. 유년에 뭔가 잘못을 하면 간혹 아빠에게 구둣주걱으로 맞았는데, 내가 구둣주걱을 다 숨겨 놓는 바람에 아빠는 항상 구두를 구겨 신었다고 했다. 그녀는 못생긴 손이 콤플렉스라고 했다. "아니, 못생기지 않았어. 우수에 찬 네 목소리처럼 손도 분위기 있어." 나야말로 못생긴 얼굴이 콤플렉스라고 했다. "하긴." 유진의 대답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웃음이 터졌다. "오빠는 사람을 참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같이 얘기하다 보면 속 마음을 다 털어놓게 돼." 유진의 다정한 말에 팔팔 끓는 주전자의 물처럼 마음이 마구 일렁였다. 베이스 기타 연주처럼 유진의 노래를, 아니 그녀의 삶을 조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유진은 한 학기만 마치고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다. "영국은 여기서 멀지?" 아쉬워하는 나의 말에 유진이 답했다. "오빠가 노래한 'Half The World Away'보다는 안 멀 걸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왠지 유진이 떠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지막 악수를 나누며 유진의 검은 손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자작곡을 쓰면 유진에게 먼저 들려주었다. 내가 만든 노래를 끝까지 들은 유진이 말했다. "가사는 무슨 얘기인지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고, 멜로디는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아요." "너 그렇게 솔직하게 살면 인생 피곤해." 유진이 히죽대며 말했다. "오빠처럼 솔직하지 못한 것보다는 낫죠."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했다. 동아리 부원들은 유진이 떠난 현실에 상심하여 군대로 도피한다고 놀려댔다. 화천에서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우락부락한 고참들이 신병들을 세워 놓고 장기자랑을 시켰다. 나는 기타를 치며 'Half The World Away'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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