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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May 24. 2024

무릎

할머니, 손자 왔어

아이유 - 무릎


모두 잠드는 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다 지나버린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서 깨어있어

누굴 기다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자리를 떠올리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조용하던 두 눈을 다시 나에게 내리면

나 그때처럼 말갛게 웃어 보일 수 있을까

나 지친 것 같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아

그대 있는 곳에 돌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면 좋겠어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스르르르륵 스르르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스르르르륵 스르르 깊은 잠을


https://youtu.be/SfeaTW4bcAw?si=EOZRUGNp0ZPc3Iab


 

 전화기 벨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초저녁부터 일찌감치 잠들었던 나는 시간부터 확인했다. 저녁 11시 35분, 발신자는 엄마였다. 불길한 촉이 발동했다. 대체로 불행한 일은 예감이 잘 들어맞았다. "할머니가 가셨다." 담담함이 낮게 깔린 진중한 톤의 목소리였다. "할머니가 어딜 갔다고?" 분명히 알아들었지만 단번에 인정하기 싫어서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체했다. "일단 푹 자고 아침에 장례식장으로 와라."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장례를 준비해 온 사람처럼 차분하게 말했다. "할머니 돌아가셨대." 아내에게 부고를 전하고 직장 동료에게 문자를 남겼다. 할머니는 향년 103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홀로된 큰아버지가 극진히 모셨지만 아흔이 넘어가면서부터 노인성 치매 증상이 나타났다. 요양원에 십 년 넘게 계셨다. 점점 기억을 상실하며 아이를 향해 역행하는 모습은 가족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그런데도 장수를 무조건 복이라 할 수 있을까. 뇌의 노화로 기억력과 이해력, 이성적 능력을 상실한 채 고독하게 연명했던 시간이 과연 행복했을까. 할머니는 분명 요양원에 살아 계셨지만 내 일상에서 소외되어 조금씩 잊혀졌다. 부음을 전하고 죽음을 인식하는 게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이미 할머니의 손을 놓아버렸는지도 몰랐다. 한 세기가 넘도록 길고 지난했던 할머니의 생애는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도중에 깬 탓인지 쉽사리 잠들지 못하다가 잡스런 꿈이 흉흉한 선잠에 겨우 빠졌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잠들었던 그 옛날처럼 깊이 잠들지 못하고서.


 할머니, 손자 왔어. 우리 너무 오랜만이지. 내 말 잘 들려? 이렇게 크게 말하는데도 안 들려? 잘 안 들리면 입 크게 벌릴 테니까 입 모양을 봐. 입을 쩍 벌리니까 꼭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 같다. 이렇게 입을 벌리면 할머니가 우린감도 넣어 주고 닭 다리도 물려 줬잖아. 자주 못 와봐서 미안해.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닌데 마음먹기가 쉽지 않네. 상준이 아니냐고? 아니, 그건 사촌형이고. 정호? 그건 고모 아들이잖아. 갑자기 왜 아빠 이름까지 나와. 내가 벌써 그렇게 삭았어? 좀 아까 상희라고 했잖아. 그래, 이제야 알아보시네. 장가? 장가는 아직 안 갔는데. 에이, 동생이 먼저 장가들 수도 있지.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서른 넘어도 결혼 안 하는 사람이 수두룩해. 그리고 난 못 가는 게 아니고 안 가는 거야. 나중에 이쁜 색싯감 생기면 할머니한테 젤 먼저 인사시킬게. 아이고, 취직해서 직장 잘 다니고 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요. 서울에서 내가 무슨 고생을 했다고 그래. 뭐? 세탁기 들어가면 옷이 자꾸 바뀐다고? 알았어요. 여기 직원들한테 잘 얘기할게. 할머니 좋아하는 감 사 왔으니까 한 번 드셔 봐요. 난 먹었으니까 할머니나 드셔. 나 국민학교 다닐 때 할머니 매일 우리 집 와서 지냈던 거 기억나? 그때 정말 좋았는데. 맛있는 저녁밥도 차려주고. 컴컴하기만 했던 집에 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어. 동생과 장난치다가 소화기 안전핀을 뽑고 손잡이를 누르는 바람에 온 집 안이 하얀 가루로 뒤덮였을 때도 할머니는 화 한 번 안 냈어. 그저 굽은 허리를 하고 빗자루로 아주 천천히 방을 쓸어 훔쳤지. 언젠가 할머니가 일본어 동요 불러줬던 게 생각이 나. 할머니 그때만 해도 한자도 많이 알고 기억력 진짜 좋았는데. 목소리는 또 얼마나 고왔어.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할머니한테 옛날이야기 보따리가 있는 줄 알았어. 특히 복숭아 동자 얘기를 가장 좋아했잖아. 자식이 없는 노부부가 살았는데 아이가 없어서 늘 적적했다고 했어. 하루는 냇가에서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를 발견해서 집어 들었는데 복숭아가 쩍 갈라지더니 귀여운 사내아이가 쑥 나왔지. 복숭아 동자는 수수경단을 하나씩 먹을 때마다 키가 한 뼘씩 자라고 힘이 세졌다고 했잖아. 마을에 와서 약탈을 일삼는 도깨비를 무찌르기 위해 복숭아 동자가 개랑 원숭이, 꿩을 이끌고 도깨비 섬에 가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설레어 엄마한테 수수경단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가 파리채로 맞을 뻔했잖아. 골목 어귀 철물점에서 키우던 큰 셰퍼트도 생각난다. 이빨이 얼마나 날카롭고, 짖는 소리는 왜 그리 우렁찬지 개만 보면 벌벌 떨다가 먼 길로 돌아서 집에 왔잖아.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어. "그깟 미물이 뭐가 무서워. 이 할미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고 전쟁통도 겪었어. 아가, 상대 눈을 절대 피하지 말고 매섭게 노려봐. 회피할 생각 말고 당당히 맞서." 그렇게 할머니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게 대드니까 녀석도 짖기만 할 뿐 꼬리를 내리고 물러섰지. 나중에는 내가 오징어로 꼬셔서 친해졌잖아. 응? 집에 가고 싶다고? 요양원에 왜 데려다 놨냐고?


 짧은 삼 일 장례라서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들 위로의 말 꼬리에 호상이란 단어를 붙였다. 과장해서 곡을 하는 사람도, 서럽게 우는 사람도 없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일가친지들, 문상객과 대화하느라 시간이 냉큼 지나갔다. 떠난 이를 추모하는 것보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장례였다.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할머니와의 일화를 대화의 주제로 끄집어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였다. 영정 사진 속 작은 눈과 납작한 코는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남긴 유산이었다. 생김새와 목소리, 성격마저도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여 못다 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사흘을 할머니에 관한 말로 채울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이야기를 만들고 구전하는 것이 내가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화장터의 활활 타는 불 앞에서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고마워.' 결혼하기 직전 아내를 데리고 요양원에 갔을 때 할머니는 가족 중에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할머니, 손자 왔어,라고 목청을 높였지만 내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연신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정신이 온전할 때 오지 못한 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할머니의 눈을 제대로 마주 대하지 못했다. 장례 마친 후 휴가 기간이었으나 밀린 업무 때문에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 재미있게도 나고 자란 동네에 위치한 사무소로 발령이 나서 삼 년째 근무하고 있다. 궁금한 마음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옛집을 찾아 나섰다. 진입로가 바뀌고 지금은 커다란 축사가 위치하고 있어 예전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존재처럼 지도도 황폐해졌다. '할머니, 손자 왔어. 할머니가 알려준 대로 회피하지 않고 생 앞에서 작은 눈을 매섭게 부라리고 있지만 녹록지가 않네.'


 꿈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완전히 지워버린 줄 알았던 치욕적인 순간을 불러오기도 하고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소환하기도 한다. 융통성이라곤 없어서 자기 최면도, 기억의 왜곡도 일절 허락하지 않는다. 과거의 한 장면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오늘의 꿈은 완성도가 높은 편이었다. 아주 어릴 적이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이제야 알 것 같다. 꿈이 시사하는 대로 그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음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옛날 집이다. 가을 장맛비가 후드득후드득 소리를 내는 마루에서 세상 시름이야 내 알 바 아니라는 얼굴로 어린 내가 낮잠을 자고 있다. 손자에게 무릎을 내어준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우린감의 껍질을 까고 있다. 얼굴 모양으로 문자 변환이 가능하다면 '잘생긴 내 새끼' 혹은 '할미는 네 얼굴만 봐도 배부르다'일 것 같은 표정이다. 잠에서 깬 나는 바로 일어나지 않고 실눈을 뜬 채 순간을 음미한다. 자는 척하며 조금 더 그 시간을 누리고 싶어서. 할머니는 내가 깼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둔다. 밤처럼 어두컴컴한 가을 낮의 빗소리가 눈물나게 적요하다.



이미지 출처: 할머니 무릎_저자 한영진, 박성은_그림 박성은_출판 책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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