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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May 03. 2024

그렇게 살아가는 것

녀석에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 - 허회경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
날씨 같은 인생을 탓하고
또 사랑 같은 말을 다시 내뱉는 것


사랑 같은 말을 내뱉고

작은 일에 웃음 지어놓고선

또 상처 같은 말을 입에 담는 것


매일 이렇게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서러워 나

익숙한 듯이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무서워 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답을 찾아 헤매이다가
그렇게 눈을 감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아아아
아아아아


상처 같은 말을 내뱉고
예쁜 말을 찾아 헤매고선
한숨 같은 것을 깊게 내뱉는 것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서
다 괜찮다고 되뇌이다가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꿈을 꾸는 것
그렇게 꿈을 꾸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우우우우
우우우우


한숨 같은 것을 내뱉고
사람들을 찾아 꼭 안고선
사랑 같은 말을 다시 내뱉는 것

https://youtu.be/1Qtr8TznwNI?si=7Vdrx9AO89el0SB4



 네가 떠난 지 몇 년이 지났는지 이젠 잘 기억조차 나질 않아. 그만큼 너의 죽음은 일상과는 무관한 영역이 되어 버렸어. 무덤덤해졌다고 하기엔 처음부터 실감이 나지 않았기에 그저 가슴 먹먹한 상태의 옅은 지속이라고 봐야겠다. 너의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왠지 그 공간은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것만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어. 해마다 너의 생일이면 누군가 찾아와 방명록에 추모의 글을 남기더구나.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어서 네가 덜 외롭겠구나 하고 안도했지. 이제는 그 공간도 폐허가 된 도시처럼 폐쇄되고야 말았지만. 부고를 접하던 날 울먹거리던 형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해. 전날 자취방에 남경이가 놀러 와서 술을 마시고 잠들었는데, 그 이른 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가 벌써 예사롭지 않았어. 받는 이를 배려할 겨를도 없이 다급한 전화는 보통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일 가능성이 높잖아. 전화기 진동 소리가 그렇게 불길한 적은 처음이었어. 정색을 하며 일어나 존대하는 걸 보고 남경이도 심상치 않게 느꼈는지 잠에서 깨어 통화 내용을 예의 주시하더라고. 남경이에게 네가 갔다는 소식을 전하고 나서 우린 별스러운 말도 없이 한숨만 쉬었던 것 같아. 그리고 곧바로 동창들에게 부고를 전하는데 차마 '죽었다'라는 표현을 할 수가 없어서 그걸 대신할 말을 찾느라 애를 먹었어. 그리곤 내가 말했던가. “아, 어떡하냐. 녀석의 장례식에 가야 될 거 같다.”

 

 어렵게 구한 골수의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들떠 있던 네가 기억이 나. 병마와 싸우던 시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시 공부할 계획을 세우고 미세하게 흥분하던 네게 생기가 느껴졌어. 나 같으면 회복됐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려고 했을 텐데. 생을 대하는 너의 태도는 늘 치열하고 진지했지. 백혈병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맞는 골수를 더이상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골수를 이식한다고 했을 때 불길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 부모님의 골수를 이식받고 나서 내 자취방에 찾아온 적이 있었지. 그때 너와 나눈 이야기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그렇게 황급히 떠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사랑한다고 말하며 한 번 꽉 안아줬을 텐데. 네게 어떤 위로도 건네지 못했어. 그저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아무 말 없이 같이 들었지. 청승맞은 선곡이 취향에 맞지 않았는지 네가 말했잖아. "왜 우울하게 이런 노래만 듣냐? 인생도 노래 따라간다." 그 당시에 나 역시 공무원 시험에서 연신 낙방의 고배를 마시며 쓰디쓴 한숨을 내쉬며 살았거든.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만큼 사려 깊지 못했어. 그렇게 인생을 비관하고 염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니 너 또한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어. 몸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병원으로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한 통화 기억나니. 이번에 들어가면 어쩌면 잘못될 수도 있다던 너는 그때 이미 죽음을 직감했겠지. 그날에도 나는 치료 잘 받아, 기운 내, 같은 뻔한 말밖에는 할 수 없었어.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진부하고 표현력이 부족한 건 여전하네.

  

 그 이후로 너에게 줄곧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우리들 모였을 때 너의 이름이 나오더라도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암묵적인 룰이 되어 버렸어. 마치 살아 있는 사람 얘기인양 자연스럽게 반응하면서 너의 부재를 상기시키지 않으려 했던 거야. 존재에 대한 인식은 흐릿해져 가고 상실의 아픔도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더라. 남겨진 자의 삶 또한 전쟁과 같이 치열하기만 하더라.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함께 어울리던 12명은 모임을 만들어서 일 년에 두 번씩 모이고 있어. 네가 있었더라면 13명이었겠지. 이번엔 제부도의 한 펜션에서 모였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전처럼 밤을 새가며 왁자지껄하게 놀지는 못 해. 술을 많이 마셔도 속 시원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이 없어서 모임이 예전만큼 재미가 없어. 다들 나름대로 고민과 걱정이 있겠지만 이제는 속으로 삼킬 뿐 꺼내 놓지를 않아. 그래도 간혹 옛날이야기는 해. 수백 번은 넘게 했을 단골 레퍼토리 있잖아. 이상하게 지겹지가 않은 어릴 때 이야기. 그러고 보니 우리에겐 어마어마한 유산이 남아 있더라. 그렇게 추억할 거리가 있다는 것이. 그러던 중에 술이 과한 누군가 불문율을 깨고 말았어. 네가 보고 싶다고. 순간 정적이 흘렀지 뭐야. 지나가는 말로 잠깐 등장한 너의 이름은 현실의 무게 속에 금세 묻히고 말았지만, 나도 자꾸만 보고 싶어진다. 잘 지내는지. 그리고 또한 궁금하다. 너에게 삶과 죽음이란 어떤 의미였는지. 가끔씩 생각해 보곤 해. 병에 걸린 게 나였더라면 어땠을까. 너처럼 맹렬하게 저항하지는 못했을 거야. 불치의 병에 잠식을 당한 순간 삶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을 놓치고 말았을 거야. 소진해 가는 생을 향한 열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용히 죽음을 준비했겠지. 불행의 실마리를 보았을 때 재빨리 그 꼬리를 잡아채지 않으면 거꾸로 뒤를 붙잡히게 된다고 하더라. 그 꼬리를 보게 될까봐 늘 두리번거리며 살았어. 이런저런 근심에도 대수롭지 않은 척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사실은 가끔 악몽을 꿀 만큼 두려워. 도심의 보도블록 사이로 억지로 피어난 식물처럼 삶은 위태롭고 불안정하기만 하다. 보고 싶다. 날 좀 응원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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