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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Aug 05. 2024

마마

기차 여행

마마 - 김필선


마마 왜 내 심장은 가짜야?

나는 왜 찢겨도 붉은 피 하나 나지 않는 가짜야


다들 물어본다고요

너도 겨울을 아냐고

마른 가지 같은 손가락이 왜 슬픈 줄 아냐고


그럼 당연히 알지 왜 몰라

그 잔가지 위에 업힌 나의 생


그럼 당연히 알지 왜 몰라

그 잔가지 위에 업힌 나의 생


마마 왜 내 목소린 차갑지

나는 왜 녹슨 겨울을 노래하며 살아야 하는지


다들 물어본다고요

너도 여름을 아냐고

살아있는 언어의 온도가 뜨거운 줄 아냐고


그럼 당연히 알지 왜 몰라

그 잔가지 위에 업힌 나의 생


그럼 당연히 알지 왜 몰라

그 잔가지 위에 업힌 나의 생


내게 심장을 주겠니?

네 언어를 느끼고 싶은데


네 눈에 흐르는 별들을 보며

예쁘다고 해주고 싶은데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https://youtu.be/uSrux7qg_pk?si=7c4oxwLnJds-mSgW




 성난 알람음이 주말 아침의 단잠을 깨웠다. '벌써 다섯 시라고?' 긴장하고 잠든 탓인지 피로가 영 가시지 않았다. 300킬로미터가 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KTX 열차를 타기로 했다. 혼자 운전해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동차로 사십 분 거리에 위치한 KTX 역까지 가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역 주차장에 주차하고 종종걸음으로 플랫폼까지 향했다. 오랜만에 기차를 탈 때면 괜한 초조함에 부대꼈다. 한 번도 기차를 놓친 적은 없지만 나만 남겨 두고 홀연히 떠나는 기차를 상상하곤 했다. 필요 이상의 불안에 시달리는 탓에 늦는 것보다는 일찍 와서 기다리는 게 나았다. 시간 낭비는 응당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였다. 만사태평한 사람은 서두르지 않기에 근심에 시달리지 않았고 시간도 알맞게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간혹 기차를 놓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때로는 안일하고 대책 없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내게는 없는 느긋함이 늘 부러웠다. 기차에 올라 짐 선반에 장우산을 올려 두었다. 오후부터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종종 우산을 분실했다. 외부로 나가는 시점에 비가 오지 않을 경우 간혹 우산을 챙기는 걸 잊어버렸다. 불행은 형체가 없었으므로 친절하게 시각적인 경고도 해주지 않았다. 오늘 우산을 갖고 내리는지, 두고 내리는지에 대해 나 자신과 내기를 걸었다. 옆자리에 곤히 잠들어 있는 남자에게서 미세한 술냄새를 풍겼다. 남자가 쓴 모자가 자꾸만 내 어깨를 노크했다. 몇 번이나 어깨를 들썩거렸으나 남자의 고개는 점점 내 품으로 향했다.  


 백일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던 기차 안이 떠올랐다. 기차 안에서 영원히 시간이 멈추길 바랄 만큼 부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학교에 이어 경험한 사회 집합체, 군대에는 더 거대하고 폭력적이며 강압적인 규율이 작용하고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겁의 앞에 잔뜩 주눅들은 나는 예민한 사슴처럼 사방을 두루 경계했다. 덕분에 사냥감으로부터의 포획은 면할 수 있었으나 내내 긴장에 시달려야만 했다. 실상은 비굴한 겁쟁이였지만 군기가 바짝 들었다는 칭찬이 자자했다. 천안역에서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 모자를 눌러쓴 채 탑승해 있던 옆 소대 동기를 발견했다. 그는 가방에 맥주캔을 숨겨 두고 몰래 들이켜고 있었다. 야금야금 아껴 마시던 그의 맥주처럼 몇 모금 되지 않던 나의 시간은 시나브로 소진되었다. 도피성 공상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넣었을 때 목적지인 대전역에 도착하였다. "반씩 내고 택시 타고 들어가자." 뒤늦게 나를 발견한 그가 말했다. "싫어. 택시 타면 너무 빨리 도착하잖아." "바보야, 맥주 한잔 먹고 천천히 들어가면 되잖아." 그에겐 긴장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술 취해서 걸리면 어떡하려고." 불안의 그늘이 깊이 드리워진 내 얼굴을 보지 못했을까. 태연스럽게 그가 말을 뱉었다. "괜찮아. 껌 씹으면 돼." 질겅질겅 껌을 씹으면 숙취와 염려까지 사라진다는 말인가. 치킨과 맥주를 우적거리던 그가 마인드 컨트롤 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부대에 들어가는 순간 최면을 걸어. 나는 심장이 없는 양철 로봇이다. 불안도 공포도 느끼지 못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하긴 기차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자대에 복귀하는 이등병이 정상일 리가 없지. "그게 마음대로 되냐?" 사유의 스위치를 끄는 것이 의지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었지만 달려드는 겁을 외면하기 위해 그의 조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중대 본부에서 호출이 왔다. 취사병 최고참의 제대로 발생한 결원을 메꾸기 위함이었다. 말이 제안이었지 강제나 다름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로봇이었기 때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응했다. 중대 본부 안에서 신병에 대한 구타가 이루어질 때도, 시위 진압에 나갔다가 무릎을 다쳐 불구자가 된 후임을 보면서도, 군대 안의 부조리와 추잡한 인간의 천태만상을 접하면서도 나는 무심한 척 양철 로봇을 연기했다. 이중인격 안에 두 개의 자아는 동시에 활동할 수 없어서 원래의 나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열차가 김천역에 도착했을 때 옆자리 남자가 비틀거리며 내렸다. 좌석에 공백이 생기자 긴장이 풀리고 불현듯 허기가 몰려왔다. 일어나서부터 줄곧 빈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년에 타던 무궁화호에는 음식물을 파는 카트가 지나다녔다. 카트 안에는 훈제 오징어나 삶은 계란, 바나나우유 따위가 진열되어 있었다.

언제나 카트가 나타날까 눈이 빠져라 객실 문을 노려보았다. 엄마는 계란의 껍질을 까서 동생과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명절이면 엄마의 고향인 김제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좌석을 구하지 못해 서서 간 적도 있었지만 기차를 타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너무 어려서 왜 아버지와 함께 자가용을 타고 가지 않는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남편을 두고 애들만 데려온 엄마는 친정 부모님께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기차가 대전역에 잠시 서면 엄마는 승강장으로 뛰쳐나가 가락국수를 한 그릇 사왔다. 대전역 승강장에서 15분 정차하며 가락국수 따위를 팔던 시절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것은 고역이었다. 엄마가 가락국수를 사는 사이에 기차가 출발할까봐 손에 땀이 났다. 열차의 출입문 앞에서 빨리, 라고 연신 외치며 손짓을 해댔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린 만큼 가락국수는 꿀맛이었다. "소화가 안 돼서 못 먹어." 엄마는 한 젓가락도 뜨지 않고 길쭉하고 앙상한 손으로 동생과 나를 번갈아 먹였다. 정말로 답답한 듯 가슴 부위를 두들기던 엄마의 손에서 슬픔이 느껴졌다. 엄마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학급의 반장이 되었을 때, 반에서 성적으로 일등을 했을 때 녹초가 된 엄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표정을 읽고 간사한 아양을 떨고 말을 돌리는 법을 그때 배웠다. 왜 엄마의 심장이 그토록 터질 듯이 뛰었는지, 무르고 가느다란 우동 면발 하나 소화시키지 못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기차 안에서 지루하면 가져온 동화책을 읽었다. 오즈의 마법사에는 결핍을 갖고 있는 여러 인물이 등장했다. 도로시는 토네이도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어버렸고, 허수아비는 뇌가 없기 때문에 지성을 갈망했다. 사자는 백수의 왕이면서도 겁이 많아 용기를 구하기 위해 여행에 동참했다. 양철 나무꾼은 마녀의 저주로 인해 자기 도끼에 팔다리가 잘렸다. 잘린 부분을 양철로 메꾸다 보니 온몸이 철이 되었다. 온몸이 잘려나가 마음을 잃어버린 나무꾼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엄마는 스스로 감정을 거세시키고 마음을 제거했다. 마치 내가 군대 안에서 눈과 귀를 닫고 버텼던 것처럼. 단단하지 못한 심장으로 생의 수레바퀴에 몸을 싣고 발버둥치던 엄마의 삶은 내게도 고스란히 유전되었다.

 드디어 목적지인 마산역에 도착했다. 안내 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우산을 발 앞에 두고 내릴 준비를 했다. 비는 오지 않았다. 도리어 폭염이 기다리고 있었다. 습하고 무더운데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들고 다니느라 더욱 짜증이 났다. 나직하게 주문을 외웠다. "나는 더위를 타지 않는다. 나는 짜증이 나지 않는 양철 로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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