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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Jul 12. 2024

Happy Wife, Happy Life.

 숲 최유리 


난 저기 숲이 돼볼게 너는 자그맣기만 한 언덕 위를

오르며 날 바라볼래 나의 작은 마음 한구석이어도 돼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날 지나치지 마 날 보아줘

나는 널 들을게 이젠 말해도 돼 날 보며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파 난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나


난 저기 숲이 돼볼래 나의 옷이 다 눈물에 젖는대도

아 바다라고 했던가 그럼 내 눈물 모두 버릴 수 있나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날 밀어내지 마 날 네게 둬

나는 내가 보여 난 항상 나를 봐 내가 늘 이래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파 난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나


나의 눈물 모아 바다로만 흘려보내 나를 다 감추면

기억할게 내가 뭍에 나와있어 그때 난 숲이려나

https://youtu.be/7ihLv8_Vd-4?si=Kh2RhGmni06l1Ogv


 글램핑장에 갔다. 글램핑은 비용이 다소 들었지만 장비가 전부 갖춰져 있어 캠핑에 비해 간편했다. 숯에 불을 붙이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질리지가 않았다. 나뭇가지를 넣고 볏짚에 불을 붙여 고구마나 밤을 구워 먹던 유년의 추억은 유통기한이 없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처음 불을 선물 받은 인간처럼 경외와 경이를 담아 숯에 불이 붙기를 기다리곤 했다. 바비큐에는 인내과 정성이 필요했다. 자칫 화력만 셌다가는 고기의 속은 안 익고 겉면만 태우기 일쑤였다. 기름이 숯으로 떨어지면 그을음이 생겨 고기에 까만 칠이 생겨났다. 은은한 불에 고기가 골고루 익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만 했다. 고기를 굽는 것은 주로 그룹에서 가장 헌신적인 사람의 몫이었다. 자신은 얼마 먹지 못하면서 익은 고기를 접시에 담아 연신 테이블로 보내는 마음은 참 예쁘장했다. 귀뚜라미나 개구리가 우는 야외에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는 꽤 쏠쏠했다. 어둠을 꿰뚫은 조명의 빛과 지상을 감싸고 있는 공기가 사람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곤 했다. 글램핑장의 배후에는 작은 숲이 듬직하게 버티고 있어 공간을 더욱 매력적으로 꾸몄다. 숲까지 가는 좁은 오르막길이 비밀 공간에 이르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언덕에 올라 글램핑장과 동네를 내려다보면 가히 장관일 것 같았다. 하지만 길이 질퍽이는 바람에 숲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게다가 오후 6부터 비까지 예보되어 있었다. 7년 전 미국으로 떠났던 E 커플이 가족의 결혼식 때문에 잠시 귀국했다. 아내의 유일한 친구들과의 부부동반 모임이었다. 아내의 대인관계는 특이했다. 외향적인 면이 다분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편이었지만 깊은 관계를 맺진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대하는 자신만의 사상과 철학은 확고해지고 타인을 허락하는 장벽도 견고해지기 마련이었다. 아내는 유독 심했다. 마치 지금 있는 친구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그 친구들을 만날 때면 묘한 흥분으로 일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투와 기분까지 바뀌고 마치 스무 살의 아내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함께했던 네 명의 여대생들은 결혼을 했고 종종 모임을 가진 탓에 남편들끼리도 친분이 생겼다. 처음은 어색했다. 여자들끼리는 끈끈한 연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자기들끼리는 막역하니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겠지만 내향적인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 구석에서 겸연쩍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누구의 남자친구, 남편이란 역할로 시작되는 관계는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가까워지기 어려웠다. 누구 하나 모난 사람 없이 다정했지만 내 포지션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가늠이 안됐다. 사람을 사귈 때 어디까지 나를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늘 걸음을 주춤거리게 했다. 대인 관계란 숯불에 고기를 굽는 일과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랜만인 것이 무색할 정도로 달가운 만남이었다.

 

 E와 J가 미국에서 고생한 스토리를 듣는데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그들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송별하기 위해 다 함께 만난 적이 있었다. 아내와 사귄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라서 어색한 시간이었다. J는 여자들과 같은 대학 동아리 선배여서 그 시절을 함께 보냈고 관계도 돈독해 보였다. 그는 개성과 자아가 강한 사람 같았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중했고, 가벼운 듯하면서도 공손했다. 처음 보는 내게도 싹싹하게 형님이라고 호칭하며 먼저 다가와 주었다. 교수가 되기 위한 부푼 꿈을 안고 미국에 가서 일주일에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했다고 했다. 교수 밑에서 사적인 업무까지 도맡아 하면서 갖은 수모는 다반사였다고. 언어가 능숙하지 못한 그는 삼 년 동안 녹음기를 차고 다녔다. 놓치고 실수한 부분이 있을까 봐 퇴근 후에도 녹음기를 틀어 놓고 하루를 복기했다. 때가 되면 불러 주겠다고 장담했던 모교의 은사는 연락이 없고 막막한 상황 앞에서 수백 번은 좌절했다.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무작정 버티며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은 공황 장애가 올 만큼 쓰라린 시간이었다. J는 모든 고통을 혼자 감수하고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의 안녕이 자신보다 더 먼저였던 E의 사정은 달랐다. 그녀 역시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는 이방 나라에서 고독과 회의에 시달렸다. 사랑하는 남편이 겪는 설움과 아픔이 그녀에게도 동일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남편이 억울하고 불합리한 냉대 속에서 인내해야 되는지를 분통하다가 결국 그녀에게도 공황 장애가 찾아왔다. 숨이 막혀 견디기 힘들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J는 일하다가 말고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는지 처음 보는 멕시코계 미국인 택시 기사에게 가족의 신세를 주저리주저리 하소연했다. 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택시 기사는 묵묵하게 얘기를 다 듣더니 대화의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Happy wife, Happy life." J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삶에서 자기 행복이 최우선순위이던 가치관이 산산조각 나던 순간이었다. 무얼 하더라도 남편과 하는 것이 젤 행복한 아내, 자신보다 남편이 더 우선순위이던 아내, 남편을 조력하는 것이 일상의 기쁨이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J의 우선순위도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내의 행복이 축복받은 삶의 기준이 되는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Happy Wife, Happy Life. 

 퇴실 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소록소록 내리는 비는 대화와 만남을 운치 있게 만들어 주었다. J는 자신을 부려먹던 교수의 추천으로 미국 굴지의 반도체 회사에 취직했고 최근에 집도 장만했다. 모든 결말 중에 제일은 역시 헤피 엔딩이었다. 오라는 말도 없었는데 아내에게 내년 휴가는 샌디에이고에서 보내자며 추태를 부렸다.

 결혼하기 전 제주도에서 웨딩 촬영을 했다. 빼곡하게 심긴 삼나무가 그늘을 만든 사려니숲길에서 아내와 미소를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수많은 신혼부부가 푸르른 산림 아래에서 사랑을 맹세하고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사려니는 '실 따위를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라는 뜻이었는데, 청정한 공기가 우리를 보듬어 축복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러포즈를 할 때 아내의 친구들이 도와주었다. 브라이덜샤워를 해준다고 장소를 대여하고 내게 청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준비해 온 편지를 읽을 계획이었다. 어찌어찌 마치긴 했지만 감정이 복바쳐 그저 엉엉 운 기억밖에는 없다. 아내는 조그만 풀잎처럼 여린 나를 껴안아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키 크고 곧은 삼나무처럼 불어오는 바람을 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때론 아린 마음을 거둬 먼바다로 흘려보내며. 'Happy wife, Happy life.' 나도 숲이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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