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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Jul 05. 2024

서울은 흐림

장마

서울은 흐림 - 못(MOT)


서울은 흐림

시간은 느림

추억은 그림

그대는 흐림

서울은 흐림

생각은 느림

널 그린 그림

기억은 흐림

아무 말도 아무 일도 아무 예감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하룬 가고

아무 말도 아무 일도 아무 예감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나도

https://youtu.be/ZSBLDyitAqo?si=O_cFoCFEUT8OzjAW


 장마가 시작되었다. 하늘에 싱크홀이 생긴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출근해 보니 길고양이들의 자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물을 싫어하는 녀석들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몸을 숨긴 채 움츠리고 있을 것이다. 기상청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잠깐 내리고 그칠 비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기분이 아득한 아래로 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로 인해 운동장이 흥건해지면 흙탕물에 털썩 주저앉아 진흙을 이겨가며 성을 짓던 시절이 있었다. 흙으로 만든 성은 굳는 성질이 부족해서 오래가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우산이 있으면서도 펴지 않고 비를 맞으며 걸었다. 억압과 해방에 대한 인식도 갖춰지지 않은 어린 나이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의문이지만 속 시원함이 느껴졌다. 작은 물웅덩이가 만들어진 곳을 지날 때면 여지없이 장화를 담그고 지나쳐야만 했다. 장화 코로 물을 차면 어여쁜 물결이 만들어지고 그 작은 파문이 마음에도 새겨졌다. 사소하고 하찮은 물의 파동이 연결되어 더 큰 파장이 되고 결국 외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만들어냈는지도 몰랐다. 대청마루가 있는 조부모님의 옛집에서 듣던 빗소리는 아직도 귀에 담겨 있다. 공부할 때 빗소리로 가득한 백색소음을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집중이 잘됐다. 사랑하는 사람과 피부가 닿도록 붙어 우산을 함께 쓸 때면 향긋한 샴푸 향이 났다. 그 순간만은 물비린내 따위가 근접할 수 없었다. 우산이 닿지 않는 왼쪽 팔이 다 젖어도 마냥 좋았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고교 시절 비가 오는 주말은 무료했다. 야외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축구에 미친 누군가가 사감실 마이크를 켰다. "수중전 할 사람 운동장으로 다 나와!" 이십여 명의 남자아이들이 빗속에서 괴성을 질러가며 공을 찼다. 상의를 벗은 이도 있었고 트렁크 팬티만 입은 놈도 보였다. 골을 넣은 트렁크 팬티가 더티 댄스를 추며 골 세레머니를 했다. 넘어져서 더러운 흙탕물이 묻어도 상관없었다. 사납게 쏟아지는 폭우에 금방 씻겨 나갈 테니까. 비싼 운동화와 옷이 젖을까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레 뛰는 상대는 별거 아니었다. 이미 비에 흠뻑 젖어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처럼 무서운 것은 없었다. 공을 주고받으며 득점을 하기에 불편한 환경이었지만 그건 수비수도 마찬가지여서 의외로 골이 많이 터졌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경기는 처음이었다. 질퍽질퍽한 운동장에서는 평소처럼 공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물과 바람의 저항 때문에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없었다. 삶이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매번 원하는 곳으로 나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바로 비였다. 장애와 난관이 발생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으면 갑자기 생긴 변수 앞에 사람이 만든 계획은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비에 얽힌 추억과 이미지를 종합할 때 호감으로 남았을 뿐이지 성인이 된 후에도 마냥 비가 좋지는 않았다. 비는 애초에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때론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 될 만큼 변덕스럽고, 포악하기도 했다. 비를 좋아한다는 것은 비가 그친 후의 맑게 갠 하늘과 공기, 습도까지도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장마는 해당이 안 되었다. 장마는 호우로 인해 물리적인 피해를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우울과 무기력의 씨앗에 물을 준다는 사실이었다. 수험 생활의 가장 무서운 적은 장마였다. 그칠 줄 모르는 비는 그나마 얄팍한 의지마저 꺾어 버리고 나를 헤어 나오기 힘든 구렁에 빠뜨렸다. 억수의 겁박에 독서실 가는 걸 빼먹고 집에서 공부한 것이 발단이었다. 주위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자 스스로를 감독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그만 나태하고 말았다. 자신과의 약속만을 깨는 일은 세상 어떤 것보다 쉬웠다. 소설을 펼쳐 들고 침대에 눕기도 했고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장시간 접속하기도 했다. 비는 태도를 모호하게 했고 책임을 회피하게 했다. 작달비가 내는 비명은 다른 소리는 일체 들리지 않게 했다. 또한 시야를 희뿌옇게 꾸미더니 기어이 판단력까지 흐릿하게 만들었다. 옥탑 작은 방에 갇혀 비가 그치길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정오가 되자 빗줄기가 주춤해졌다. 온종일 비가 올 거라던 일기예보가 틀렸다. 어떻게 사람이 하늘의 일까지 세세하게 예측할 수 있을까. "날도 궂은데 짬뽕이나 먹으러 가지." 동료들은 짬뽕을 좋아했다. 비 오면 비가 온다고, 술 먹은 다음 날이면 해장한다고, 바람이 쌀쌀하면 뜨끈한 국물이 당긴다고 중국집으로 향했다. 짬뽕 국물은 처음에 먹을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다 먹을 때쯤엔 짭조름한 소금 맛을 남겼다. 빗발이 누그러지자 고양이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아침을 굶었으니 성대한 오찬을 대령하라고 시위했다. 2개월쯤 되는 새끼들은 이토록 줄기차게 내리는 비가 처음이었다. 빗물이 물그릇에 천연 식수를 만들었다. 빗물에는 화학 물질이 들어 있지 않아 고양이는 빗물을 마시는 것을 선호했다. 깨끗하고 좋은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 다르기 마련이었다. 유년에 접했던 비와 소년, 청년의 시기에 맞았던 비가 제각각으로 다르게 인식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중년의 비를 맞고 있고 노년이 기다리고 있다. 더이상 비를 맞으며 모래놀이를 하거나 축구를 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대신 장마가 온다고 우울의 늪에 빠지지는 않는다. 지킬 것이 하나둘 생기고 남을 대하는 떳떳한 얼굴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삶에 도달했다. 그것이 성숙한 인간이 지나쳐야 하는 반환점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뛰고 춤을 추지 못한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장년에도 잘 부탁해.' 손끝을 뻗어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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