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길에서 울고 있던 여자를 본 얘기 했던가. 사람들로 번잡한 번화가 한복판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흐느끼던 여자 말이야. 어찌나 서글프게 울던지. 모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꽉 안아주고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더라. 어떤 상황이 되면 타인의 이목 따위 신경 쓸 겨를 없이 길거리에서 절규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전화기를 붙잡고 서럽게 울며 연이어 '제발'이란 말을 되뇌던 여자. 여자를 그토록 슬프게 만든 건 전화기 너머의 그 누군가일 것이 분명할 텐데 정신없이 울면서도 손아귀의 핸드폰만은 악착같이 쥐고 있었어. 분유를 먹을 때 갓난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에 핏기가 가시도록 젖병을 꽉 쥐듯이, 누군가를 죽어라 붙잡고 있었나봐. 그것마저 놓치면 인연의 끈을 영영 주워 담을 수 없을 것처럼 말이야. 여자는 한참을 그렇게 울음을 토해내더니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나갔어. 그녀의 뒷모습이 작아져 갈수록 흐느끼는 소리도 페이드아웃되듯 소거되었지. 그날의 기억은 꽤나 인상적이라서 이후에 그녀의 울음과 손에 대해, 그것을 접한 내 감정에 대해 기록해 놓았어. 절망과 고독 따위가 한데 뒤엉켜 있던 메마른 손. 매니큐어도 없이 주름만 가득한 손으로 얼굴을 덮고 엉엉 울던 여자를 보며 당신 역시 강단 있는 척하지만 길에서 주저앉아 울 만큼 괴로운 날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어.
아이를 가진 아내는 입덧도 하지 않고 비교적 수월하게 임신 초반을 보냈다. 여보는 임신 체질인가봐,라고 했다가 뺨따귀를 맞을 뻔했다. 17주가 지나고 유산의 위험이 덜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각종 검사 결과도 정상으로 나오고, 슬슬 성별이 나올 시기가 되자 아이의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했다. "열매야, 넌 남자니, 여자니?" 어느덧 D라인의 곡선 형태가 갖춰진 아내의 배에다 대고 물었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아내는 아이의 성별이 딸이길 바랐다. 장모님과 허물없이 지내는 아내는 친구처럼 막역한 모녀의 모습을 로망으로 품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남자 반 담임을 경험해 보더니 남성이 갖고 있는 특유의 철없음과 허세, 반항심 따위에 질려버렸다. "무엇보다 대화가 안 통해. 남자애들은 한쪽 귀로 들은 걸 다른 쪽 귀로 다 흘려버리고 뭐가 문제냐는 듯 능청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니까." 그 얘기를 듣고 사춘기의 내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는 아들을 그려 보았다. "그래. 역시... 딸이 좋겠어." 나를 닮은 남자애가 싫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쩌면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을지도. 다만 생을 학습하며 내가 겪은 고초와 속앓이, 시행착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사내아이를 상상하는 것이 괴로울 뿐이었다. 외모와 심성까지도 똑 닮은 내 축소판에게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해줘야 하는데, 아들이냐 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란 생각에 이르렀다. 속으로는 고열과 불안에 딱 미치지 않을 만큼 끙끙하면서도 입 밖으로 단 한 마디도 내놓지 못했던 유년 시절. 사춘기에 접어들어 남자아이들의 야만과 폭력 앞에서 이렇다 할 저항도, 적응도 하지 못했던 어리숙함.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안에서 실체도 없는 껍데기 꿈만 남루한 외투 안에 품다가 다 녹아 버리고 난 후에야 현실 앞에 질질 끌려다니던 이십 대를 떠올려냈다. 삶은 매 순간이 선택이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비결에 대해 말해 주어야 하는데, 실은 아직 나도 몰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 아직까지도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비의 역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셈이었다. 아내는 당근마켓을 통해 각종 유아용품을 사기 시작했다. 서재로 쓰던 내 공간이 유모차와 분유 제조기, 젖병 소독기 등으로 가득 차 발 디딜 곳이 부족했다. 성별과 관계없이 다 어울리는 중성적인 이름 중에서 내 성인 한, 아내의 성인 이, 마지막은 어질현을 써서 한이현이라는 이름을 먼저 마음에 품었다.
"순한 아이였어. 잘 울지도 않고 낯도 많이 안 가렸어." 나는 어떤 아기였어,라는 질문에 엄마가 말했다. 밥 해놨다고 먹으러 오라는 말에 아내와 함께 친가를 방문했다. 알을 잔뜩 품은 커다란 생태와 무, 쑥갓, 고추를 넣고 끓인 얼큰한 생태찌개가 밥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눈이 오는 바람에 매콤한 음식이 먹고 싶었기에 아내와 함께 카, 소리를 내며 맛있게 흡입했다. "너 가졌을 때 맵고 칼칼한 음식이 그렇게 당겼어. 한 번은 친정에 갔는데 네 외할머니가 겉절이를 담가 놓으셨더라고. 맛이나 보려고 하나 집어먹었다가 갖고 가라고 싸준 반찬통에 담긴 것까지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치웠어." 날 가졌을 때 기분이 어땠어,라고 물으려다가 낯간지러워서 그만 "아들이면 좋겠어, 딸이면 좋겠어" 하고 말았다. "그게 뭐가 중요해. 너를 닮은 네 아이라는 게 중요한 거지." 하필 딱딱해진 명태의 알을 부숴 먹으며 부모 자식 간에 이어진 끈에 대해 고찰하려고 하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맨손으로 허겁지겁 배추 겉절이를 집어 우걱우걱 씹어 삼키는 젊은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어제 아내와 산부인과에 다녀왔어. 성별 나왔냐고? 그래. 드디어 열매의 다리 사이에 숨겨진 웅장하고 튼실한 그것을 발견하고 말았어. 아내는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고 난 덤덤했어. 어쩌면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날 닮은 사내아이와의 만남을 말이야. 그토록 원망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기를 반복하며 아버지를 향한 애증을 쌓아둔 나는 오래전부터 좋은 아비가 되는 꿈을 꾸었어. 아버지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절대로 그렇게 살지 말 것을 다짐했지만 결국 나는 아버지와 가장 많이 닮아 있어. 그래서 설레지만 조금 두렵기도 해. 아버지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게 아이를 대할까봐. 남자아이만 둘 낳은 당신이 그랬듯 아내에게도 가끔은 외롭고 소외되는 날이 찾아올까. 나를 임신하고 행복해하는 당신을 상상해 보았어. 일렁이는 마음에 태명을 짓고 작명소에 찾아갔던 당신을, 평소 듣지도 않던 클래식 음악을 듣던 당신을, 매콤한 음식과 딸기를 먹으며 배 속의 나와 대화하는 당신의 모습을 연상해 보았어. 그리고, 임신 중에도 어떤 일인가에 낙심하여 엉엉 울었을, 텅 빈 교회 예배당의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당신의 모습도 그려 보았어. 너희는 낳기만 해. 애 봐주는 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 황혼이란 멋스러운 단어 뒤에다가 육아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붙여 쓰는 이 시대에 당신은 그리움으로 벌써 손주를 둘이나 길렀지. 열매가 내 아들이 될 거란 사실보다 당신의 손자가 될 거란 기대가 나를 더 흐뭇하게 해. 아기인 내가 울지 않았던 건 아마도 눈물이 다 마를 만큼 태중에 다 쏟아낸 당신 때문일 테고, 온순했던 것은 깊숙하고 아늑하게 나를 바라봐주었던 당신의 눈빛 때문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식당에 갔다가 문 위에 액막이로 걸어둔 말린 명태를 보았어. 옛날엔 농민들이 여름철에 명태 몇 마리를 먹지 못하면 그 해 어려움을 당할 것으로 간주할 만큼 북어는 신비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지. 혼례 때 신부집에 함을 들일 때 부정을 가시게 하기 위해 북어로 함을 두드리기도 했대. 이제 나도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온종일 매달려 있던 북어처럼 되어 보려고 해. 당신이 식구들을 지키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