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볶음탕

듣는 사람

by 아옹다옹하다

말이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 상대방이 다변을 쏟아내면 상대적으로 내가 말할 기회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로가 자기 말만 할 수는 없기에, 야구의 공격과 수비 같이 누군가 얘기하면 다른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들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이 말하는 동안 가만히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말을 머릿속으로 준비한다. 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지만 눈까리는 이미 말을 뺏고자 하는 탐심으로 가득 차 있다. 더 악질은 그마저도 기다리지 못해 남의 말을 댕강 자르고 들어오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특정 인물이 생각나서 분노 게이지가 치솟기 시작한다. 그가 자주 쓰는 멘트는, 저기, 중간에 말 끊어서 미안한데. '으이구, 화상아, 미안할 짓을 왜 밥 먹듯이 하니.' 말도 일종의 소유물이라면 그것은 강도질이나 다름없다.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아니, 상종을 말아야 한다. 그의 열변 중 대부분은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거나 자기 얘기도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 얘기일 때가 많다. 또한 정확하지 않은 정보이거나 누구나 아는 상식 이하일 때가 흔한데, 말하는 순간에는 뭔가 대단한 지식인 양 신념을 가지곤 한다. 자신의 수비 시간에 룰을 깨고 공격하게 해달라고 떼쓰는 자는 이기적일 확률이 높다. 자기 생각만이 정답이라는 아집에 사로잡혀 있는 자이고, 타인을 향한 존중은 평생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말하는 것도 먹는 것과 같은 욕망의 한 방식이다. 마치 자기 음식은 다 먹어치우고 탐욕스레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들이대는 격이다.

잘 듣는 사람을 좋아한다. 더 명확히 얘기하면 내가 술술 말하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잘 듣는다는 건 인격적이고 너그럽다는 얘기이다. 아는 척, 잘난 척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줄 안다는 반증이다. 타인의 입에서 쏟아지는 장황스런 말이 멈출 때까지 인내할 줄 아는 사람. 다 맞지도 않는 말을 겸손하게 귀담아듣는 사람. 간혹 싱겁거나 논리와 유머가 부족한 언어에도 웃으면서 호응해주는 사람은 무조건 곁에 둬야 한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 말하는 것도 정석은 아니다. 아무리 잘 듣는다고 해도 피드백이 없으면 입력에 대한 출력값을 짐작할 수가 없다. 오히려 내 말이 지루한가, 나한테 관심이 없나, 나만 혼자 떠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를 유발한다. 실제로 나의 경우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말해봤자 동조와 이해가 기대되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그 많던 말이 다 사라지고 만다. 진짜 고수는 잘 듣는 것을 넘어 맞은편에서 진심을 꺼내 놓을 수 있게 신뢰와 편안을 조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요샛말로 티키타카라고 하던데.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축구 전술을 말하기도 한다. 대화라는 것도 탁구의 랠리처럼 양편의 타구가 균형감 있게 이어져야만 한다. 건전한 대화, 아니 더 나아가 심장이 찌릿찌릿할 정도의 쾌감을 선사하는 말의 교감은 공감과 소통이 동반되어야 한다.


친목회의 연말 모임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이루어졌다. KTX를 타는 순간에도 킹크랩과 대방어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던데, 어째 난 반대일까. 이십 년 만에 다시 방문한 노량진은 낯설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동안 건물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풍경도 사뭇 달라져 생경했다. 지하철역 3번 출구 쪽에는 오래전에 수업을 들었던 유명 공무원 학원이 친근하게 버티고 있었다. 시험의 경쟁률이 백 대 일에 육박하던 시절 교실 안에는 백 명 좀 못 미치는 수험생이 수업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경쟁률만 따지고 보면 그 공간 안에서 단 한 명만이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셈이었는데, 나는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공무원의 인기가 시들해져서인지 학원가는 예전만큼 붐비지 않았다. 과거의 내가 어깨에 짊어졌던 근심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케케묵은 푸념이 생각나서 갑자기 침울해졌다. 조건 자극에 의한 무조건 반사처럼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 튀어나올 뻔했다. 학원가와는 대조적으로 수산시장은 술과 해산물, 사람 냄새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친구들이 반가워서 술을 몇 잔 마셨다. 제철을 맞은 방어회의 기름기가 분위기를 부드럽고 다감하게 만들어주었다. 털어놓고 싶었던 말이 커다란 풍선처럼 터질 듯이 쌓여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누그러졌다. 대화의 상대에 따라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즐거울 수도 있는 법이다. 이제야 알겠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 희열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 것임을. 그 소중한 옛친구 중에서도 유독 가까운 K. 오랜 시간을 공유했고, 시간 속에 유의미한 감정까지 함께 갈아 넣은 존재.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서로의 본모습에 대해 가장 근접하게 이해하고 있는, 베프라고 말할 수 있는 동창 놈이었다.


한창 고시 생활을 할 때 녀석은 이미 사관학교를 졸업한 직업 군인이었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항상 자취방 근처로 찾아와 당구로 밥 내기를 하고 삼겹살과 곱창 따위를 구웠다. 물론 내가 지는 날에도 계산은 늘 그의 몫이었다. 배배 꼬인 곱창과 다르게 우리의 진심과 언어는 직통이었다. 불판 위 고기가 지글지글하게 끓어 익으면 성마르고 다급한 가슴에도 겨우 안정이 찾아들었다. 그것이 동물성 지방이 주는 포만감과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 잠자코 넋두리를 들어주는 신우 덕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한 번은 남영동의 어느 식당에서 녀석을 만났다. 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매운 닭볶음탕이 담겨 나왔다. "난 양은 냄비가 싫어. 아버지가 보증 잘못 서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잖아. 돈은 안 갖다주고 술통에 빠져 살지, 집에 쌀은 없지. 하루는 엄마가 점심으로 양은 냄비에 라면을 내왔는데 아버지가 밥상을 물리며 소리를 지르더라고. 자기 무시하는 거냐고. 자격지심 때문에 그랬을 테지." 이후로 양은 냄비라면 치가 떨린다는 그는 표리부동하게도 닭다리를 야무지게 뜯고 있었다. 한동안 흐른 정적을 깨고 그의 빈 술잔에 소주를 채우며 말했다. "그래도 라면은 양은 냄비에 끓여야 제맛이지." 우리는 그 시절, 치부와 고민거리를 비롯한 속 깊은 얘기를 농담 주고받듯 서슴없이 나눴다. 닭과 감자를 건져 먹고 콩나물과 김가루, 참기름을 넣어 밥을 볶기까지 젊음을 나눠 먹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지 말고 그 여자 잡아." "이제 아버지 원망 말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너도 이제 알을 깨고 나와야지. 다 잘될 거야." 실없는 말장난 속에 간혹 진심을 섞어 서로에게 탁구공을 건넸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기회는 점점 줄어들 거란 것을 알았더라면 더 자주 술에 취하고 랠리를 주고받았을 텐데.

빈 술잔을 보고 K가 저 멀리에서 리모컨, 이런다. 오늘따라 킹크랩의 살이 달다. 단순히 배부른 돼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