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았다. 난자와 정자를 채취해 체외에서 수정시킨 후, 배양하여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는 시술이었다. 만약 의술이 발달하기 전에 태어났더라면 영영 아이를 갖지 못했을까. 임신 확률이 부부간 사랑하는 마음의 총량에 비례한다면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고 아이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첫 실패를 뒤로하고, 동결해 두었던 배아를 이식한 후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단번에 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담담하게 수긍하는 아내를 보며 괜히 애처로운 마음이 일었다. 주위에는 오 년이 넘도록 시술을 계속하는 지인도 있었다. 그 부부를 대할 때처럼, 아내에게도 차마 어설픈 위로를 전하지 못하고 쭈뼛거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이식을 마치던 날 엄마가 좋은 꿈을 꿨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길 건너 꽃집 앞에 수족관이 생겼는데, 거기 팔뚝만 한 장어가 바글바글하더라고." "그래서? 엄마가 잡았어?" "아니. 남의 집 장어를 허락 없이 건들면 되나. 그냥 보기만 했지." 몽리 중에서도 소심한 엄마의 꿈은 완벽한 태몽이라고 하기엔 서사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꿈이라는 것도 간절한 사람만이 갖는 것이니까. 장모님의 느닷없이 커다란 구렁이 꿈 얘기를 꺼낸 것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엄마, 나 뱀띠잖아." "장모님도 뱀띠 아니세요?" 제일 무서워하는 동물이 뱀이라는 얘기를 안 하길 잘했다. 아내와 장모님은 뱀띠, 만약 내년에 아이가 태어나면 뱀띠 아이. 엄마의 꿈은 바다장어. 갑자기 오돌토돌한 닭살이 돋았다. "나는 닭띠인데..." 닭은 뱀의 천적이자 포식자이지만 간혹 닭을 잡아먹는 뱀도 존재하는 법이다. 하지만 뱀띠 아기를 만날 수만 있다면 징그러운 뱀마저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뾰족한 주사 바늘을 아내의 배에 꽂는데 아내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우리는 왜 아이가 안 생길까." 입술을 떼어 뭐라고 답하려다가 생물학적 원인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말을 삼켰다. 아내는 우리가 갖고 있는 마음가짐, 생활 패턴, 신앙적 태도 등 삶을 대하는 자세를 전부 돌이켜보길 원했다. 도마 위에서 진액을 뿜어가며 생존을 갈망하던 장어의 간절함이 아직도 부족했다. 열매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막상 닥치면 다 하지 않을까. 여전히 안일하게 생을 대하는 미적지근한 태도는 아내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했고, 장차 아기에게도 양분을 주지 못할 것이다.
"아빠가 안 하고 잡아왔대." 동생의 문장에는 기이하게도 목적어가 없었다. 지성이 다소 부족하고 유치원 성적이 부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우리말 겨루기에 나온 퀴즈를 풀듯 불완전한 문장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아빠가 어떤 행위를 안 하고 무언가를 잡아왔구나. 출근을 하지 않고 바다에 다녀온 게 분명해. 여기까지 관념을 이동시키는데 동생이 말했다. "형, 근데 안 하고가 뭐야?" 그제야 안 하고가 동사가 아니라 고유명사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렇다면 '안하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일명 '아는 체 병'에 걸린 나는 2살 터울의 동생 앞에서 우주 삼라만상에 대해 통달한 것처럼 행동했다. 겨우 일곱 살밖에 안 먹은 주제에. "기훈아, 그건 말이야." "우리 기훈이가 이런 건 처음 보는구나." "아이고, 우리 아가가 그게 궁금했구나." 일단 바다에서 잡았으니 해산물일 테다. 그리고 '고'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이거지. 잠시 숙고하고 나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뭐, 고등어 비슷한 거야." 일단 말은 뱉었지만 정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날 벌어진 광경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을 만큼 끔찍하고 충격적이었다. 먼저는 안하고의 정체였다. 바다장어의 일본말이 아나고라는 것을 알고 괜히 머쓱하여 동생에게 서둘러 변을 늘어놓았다. "고등어나 바다장어나 엇비슷해. 바다에서 살고, 맛이 좋지. 단지 장어의 몸이 좀 길고 가느다란 게 미세한 차이라고나 할까." 아버지는 바다장어를 손질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도마 위에 장어를 올려놓고 머리에 못을 박는 장면은 마치 생사를 건 전투 같았다. 장어는 몸으로 점액을 뿜어가며 몸부림쳤다. 잡아먹는 자와 잡아먹히는 자 중 누가 더 간절할까. '미안한데 나도 딸린 식구가 많아서.' 아버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으려나. 장어의 활력에 당황하여 밀리는 국면이었으나 결국 못과 도마 사이에 장어의 머리를 고정시키는 일에 성공했다. 그 이후의 장면은 끔찍하여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해도 마지막 남은 인류애까지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아나고의 손질이 끝날 즈음 다시 주방을 찾은 나는 2차 문화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회를 뜬 아나고를 수건에 감싸 탈수기에 돌리는 장면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공할 만한 속도로 빙빙 돌아가며 아나고의 수분이 다 빠져나갔고 식욕도 달아나버렸다. 정말 고소하다고 먹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한사코 거부하는데, 동생이 호기심을 못 참고 한 점 집어 들었다. 고무를 씹듯 질겅이던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엔 좀 질긴데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해." 아나고의 맛이 궁금하긴 했다. 게다가 동생 앞에서 먹어본 척 설레발을 떨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다. 아나고의 피비린내 나는 사투와 장렬한 최후를 목격한 나로서는 양심상 그럴 수 없었다. 세탁기 안에서 아나고의 수분이 빠져나가듯 내 안에서도 어떠한 감정의 탈수가 이루어졌다.
임신 확인 검사를 하는 날, 최저 기준치에 조금 모자란 숫자가 나왔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2차 피검사에서 두 배 이상 상승할 경우 임신이 될 수도 있는 수치였다. 의사는 헛된 소망을 품을 수 없도록 최대한 담백하게 말했다. 하지만 스멀스멀 마음을 휘감고 올라오는 기대감을 억지로 억누르고 싶지는 않았다. 유튜브에 출산과 육아라고 검색해 보았다.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영상이 있었는데, 가장 먼저 이끌린 것은 자폐 아이에 대한 정보였다. 무의식 속에서 건강한 아이에 대한 최우선 순위가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사람의 생각은 참 이상했다. 약간의 기쁨이라도 생기면 바로 그것을 유지하지 못할 거란 두려움으로 바뀌어버리곤 했다. 드디어 2차 피검사 수치를 확인하는 날, 건조하고 싱거운 언어를 사용하던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어떻게 좋은 꿈 좀 꾸셨나요." 아내와 나는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바라보고 눈을 맞췄다. 그 짧은 문장 안에는 여러 가지 희망의 자취가 함축되어 있었다. 축하해요. 그동안 고생했어요. 얼마나 아기를 기다렸어요. 잘 참고 견뎌낸 결과예요. 엄마가 장어 꿈을 꿨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태명을 장어라고 지으려다가 아내에게 쌍욕을 먹고 열매라고 지었다. 지금은 임신 8주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