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르헉

I Love My Car

by 아옹다옹하다

잘 굴러가던 자동차가 갑자기 멈췄다. 노인장의 오줌발 같은, 엔진 기능의 간헐적 저하를 포착한 적은 있었다. 하필이면 고가도로로 진입하는 오르막길에서 사달이 날 줄이야. 여느 때처럼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는데도 맥없이 덜덜대더니 기어코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가라앉게 되는 늪지대에 빠진 듯했다. 꼬리를 물고 따라오던 자동차의 행렬에 순간 진땀이 났다. 대장인 나만 믿고 따라오던 차들이 지네의 몸마디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힘이 과하게 들어가서인지 발이 다 저릴 지경이었다. 시큰한 통증은 그 짤막한 찰나에 운전면허 기능 시험의 한 장면을 소환시켰다. 기능 시험의 언덕 구간에서 정지했다가 출발하게 되면 차는 내리막을 향해 저절로 밀리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감점이 아니라 바로 실격 처리 대상이었다. 정차했다가 출발할 때 밀리는 현상을 방지하려면 클러치 페달 위 발을 살짝 떼서 반 클러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처음 운전을 가르쳐준 김태왕 씨의 표현에 의하면 사랑하는 애인의 볼에 발을 갖다 대듯 포근하면서도 살며시 터치해야 했다. 그런데 어떤 미친 작자가 애인의 볼을 살포시 지르밟는다는 것인지. 어쨌든 그렇다고 페달을 너무 약하게 밟아도 시동이 꺼질 수 있어서 초보 운전자에겐 시험 초반부터 쉽지 않은 구간이었다. 세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약하지도 않게 발밑에 감각을 집중시키면 어느 순간 감이 온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동을 틀자 천만다행으로 엔진은 버거운 숨을 내쉬며 작동했다. 과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일까. 하필 오르막길에서 시동이 꺼진 것에는 분명 원인이 존재할 것이다. 차의 엔진도 사람의 심장과 같이 과부하가 걸리면 멈추게 되어 있으니까.

2012년형 구형 싼타페지만 신차를 뽑던 그날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아마도 생애 첫차라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방의 대중교통은 열악해서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주머닛돈이 얼마 없어서 중고차를 샀어야 했는데 말도 안 되게 무리를 했다. 자동차 매매 계약서를 쓰던 날 동행한 짠지가 눈치도 없이 말했다. "우리 나이에 이 정도는 타야 무시 안 받지. 그리고 결혼하고 애 키우려면 에스유브이는 필수야." 그로부터 8년 후에 가까스로 결혼을 했고 아직 애는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건 그야말로 촌극이다. 생각해 보면 차 안에서 정말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 바쁜 일상 중 끼니를 때우기 위해 햄버거 따위를 먹기도 했고, 혼자 맥주를 마시고 소설을 읽다가 잠든 날도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 초라하고 가난한 마음을 위로하며 눈물을 훔친 날도 기억난다. 업무 중 거래처에 간다고 빠져나와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를 무작정 달리기도 했다. 차량이 정체된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아내와 닭살 애정 행각을 벌이다 그만 앞차를 아주 살짝 들이받았다. 번호판의 볼트가 하나 떨어져 덜렁거렸지만 우리는 슬퍼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내에게 처음 고백한 장소도 바로 차 안이었다. 거절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밀당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좋다고 할 줄은 몰랐다. 아옹이와 다옹이를 처음 집으로 데려올 때도, 아내가 열매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자동차 안에서 콩콩대는 가슴을 매만졌다. 48개월 할부에 대한 이자 비용은 진작에 본전을 뽑았다고 봐도 무방한 셈이었다.


내 운전의 역사(역사라고 하면 조금 거창하지만)에 대해 기술하자면 일단 김태왕이란 인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는 둘째 사촌형의 절친이자 10살 터울의 동네 선배이자 중학생 때 과외 선생님이었다. 설마 한자를 太王이라고 쓰지는 않겠지만 그분을 대할 때면 왠지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고 경외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름 덕인지 그의 키는 나폴레옹처럼 작았음에도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또한 모든 스포츠와 잡기에 능통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친구 두 명과 함께 방위(지금의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이던 태왕에게 영수 과외를 받았다. 공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간식을 먹고 웃고 떠들던 기억만 남아 있다. 태왕처럼 말을 맛깔나게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농담을 진담처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이 매듭지어지고 나면 잠깐씩 고민해야만 했다. 말하는 태도로 보아 분명 진심에서 우러나온 참말이 틀림없는데 대부분은 실없는 장난말이었다. 태왕은 수업 중에도 대학생의 술문화와 미팅, 전교조 모임, 방위가 맡고 있는 국방의 중책 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태왕은 겨울에 몽골로 다녀온 배당여행에 대해 줄기차게 얘기했다. 지구상에서 최고의 여행지를 하나만 꼽으라면 자기는 무조건 몽골이라고.(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당시 그는 몽골 말고는 다른 나라에 가 본 적도 없었다.) 몽골 하면 씨름이랑 징기즈 칸밖에 모르던 우리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양을 통채로 잡아 뜨겁게 달군 차돌로 익혀 만든 허르헉이란 음식 얘기를 들려줬을 때는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유목민의 집인 게르는 둥글넓적한 구조를 하고 있어서 아무리 춥고 강한 바람에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게르 안에는 화로가 있는데, 불을 신성하게 여겨 화로를 넘어 다녀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몽골에선 실수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으면 미안하다는 뜻의 '오츨라레'라는 말과 함께 악수를 청하는 풍습이 있어." 며칠 전 비 오는 날, 친구가 새로 산 흰색 에어포스를 밟았다가 수업 시간 내내 티격태격한 나를 두고 하는 소리인가 싶었다. "드넓은 초원에서는 유목민들의 발에 병이 나면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발을 머리나 심장보다 더 중하게 여겼대. 그래서 발을 밟는 건 상대를 위협하는 행위이고, 더 나아가 당신과 싸우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거지." 그 말을 들은 나는 친구에게 해맑게 '오츨라레'라고 하면서 오른손을 내밀었고, 친구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뫼산을 표현하며 화답했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태왕은 초중고등 대상 영수 학원을 운영했다. 방학이 되면 나를 불러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켰다. 최저 시급을 받으며 피시방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입이 좋았다. 운전면허가 없던 나를 위해 학원 승합차로 운전 연수를 시켜주기도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물을 뿌려가며 S자, T자 라인을 만들어 놓고 코스 연습을 했다. 무려 네 번이나 떨어지고 다섯 번만에 합격했지만 태왕은 짜증 한 번 안 내고 타 시에 위치한 면허시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합격하던 날엔 중일 학원생들까지 따라와 종이 가루를 날리며 기립박수를 쳤다. 면허 시험장을 오가는 차 안에서 태왕과 나눴던 대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자주 깔깔거렸고, 몽골 얘기를 들었다.


몽골에서 말은 단순히 교통수단만이 아니라고 한다. 한 사람이 오직 한 필의 말만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야만 말이라는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고 뭘 원하는지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몽골에서 말은 가족이자 친구이며 인생의 동반자라고 떠들어대던 태왕님의 말이 떠올랐다. 자동차 수리를 맡기던 주말, 대시보드 위 소복이 앉은 먼지를 닦았다. 생애 첫 차 안에서 품었던 생각과 웃음과 눈물 따위가 새어 들어온 햇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형체를 드러냈다. 오르막이 있으면 분명 내리막도 존재할 텐데, 왜 뒤로 밀릴까 하는 근심만 품고 살아가는 건지.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생 속 반 클러치는 언제쯤 익숙해지는 것인지. 나는 늙은 말을 조심스레 껴안듯 핸들을 감싸 안았다.

https://youtu.be/RKXayhEWqs0?si=d9sSN36PClykRmgx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