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
엄마가 끙끙대며 가스레인지 위로 거대한 들통을 올려놓았다. 시퍼런 가스불이 사나운 기세로 뜨거운 기운을 일으켰다. 가스만 끊기지 않는다면 영원히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사골 끓일 때 풍기는 누린내가 집 안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엄마, 어디 가?" 양 손바닥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동생이 물었다. 곰탕을 끓이면 엄마가 장기간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한 것이었다. "가긴 어딜 가." 들통의 출현이 엄마의 출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며칠 동안 곰탕을 먹어야 한다는 현실에 좌절했다. 곰탕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아무리 먹어도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무슨 보약이나 되는 것처럼 억지로 곰탕을 먹였다. 소 다리뼈를 뽀얀 국물이 나올 때까지 푹 고아 먹으면 기력이 회복되고 관절도 튼튼해진다고 했다. 특히나 키가 작고 성장이 더딘 동생에게 곰탕은 마치 영양제 같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기름기와 느끼함이 싫어서 사약을 대하듯 했다. "곰탕에는 곰이 들어가지 않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사약, 아니 곰탕을 들이켜고 있는 대역죄인에게 농담을 던졌다. 실제로 곰탕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곰이 들어간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곰의 쓸개와 발바닥도 식재료로 사용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닭곰탕은 닭과 곰의 콜라보레이션이게." 곰탕에 함유되어 있는 단백질과 비타민, 아미노산, 철분 등이 녀석의 두뇌 회전을 가속시킨 것일까. 동생은 밥풀을 튀기며 활기를 띤 채 대꾸했다. "곰을 뒤집으면 문이 되지. 형, 당장 저 문으로 나가." '고기나 뼈 따위를 진액이 빠지도록 끓이다.' 엄마는 '고다'라는 단어가 곰이 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끓이면 끓일수록 진국이 되는 곰탕과 같이 사람도 시련을 겪을수록 강인해진다는 말과 함께.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없는 살림에 엄마가 내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보양식이 곰탕이라는 것을. 그리고, 단 하루도 예외 없이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곰탕과 같이 내 삶도 진국이 되기 위해 고난과 함께 단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십 대에 떠난 봉사 활동의 마지막 밤이었다. 고된 일정을 전부 마친 후 조명을 끄고 은은한 캔들 빛 사이로 둘러앉았다. 끈끈한 동지애를 형성하는 데 있어 고통만큼 좋은 재료는 없었다. 고통을 대하는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인간 본성의 가장 밑바닥을 목격했다. 최악의 상황과 극한의 괴로움을 만났을 때 각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나까지 포함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실체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대상자를 칭찬하는 시간이 있었다. 손발이 오글거렸지만 동고동락하며 힘든 시간을 버텨낸 직후라서 감성은 촉촉해질 만큼 촉촉해져 있었다. 서슴지 않고 상대에게 진심을 얘기하고 장점을 말하는 시간은 흔하지 않은 틈새였다. 사람들은 칭찬에는 인색했고 감정 표현에는 미숙했다. 남을 높이고 칭찬하는 일에 능숙한 누군가가 내게 '볼매'라고 말해 주었다. 어떤 사람은 첫인상이 굉장한 호감이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지만 속을 까면 깔수록 실망을 안긴다고 했다. 반면 어떤 이는 알면 알수록 진실되고 사람을 잡아 끄는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외적인 요소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며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성을 주목할 수 있지." 지금까지 들은 어떤 칭찬보다도 마음에 들어 가슴이 설렐 지경이었다. 그 말은 일종의 희망이자 방향성이 되었다. 껍데기는 남루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하지가 않지만 그럼에도 단련하자.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리고 물에 담가 식히는 과정을 수천 번 반복해야 제대로 된 칼이 만들어지듯 인생은 담금질의 연속이었다. 지금 괴로운 것은 성장통이며 더 단단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시련을 보내는 것이 조금은 수월하게 느껴졌다.
아내의 임신을 준비하며 곰탕을 자주 먹었다. 시중에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성품이 많아 직접 사골을 끓이지 않아도 된다. 만두를 넣기도 했고 소면이나 떡을 넣기도 했다. 반찬이 없을 때 밥 한 그릇 말아 뚝딱 해치우기 좋은 메뉴였다. 어릴 때는 왜 그토록 싫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처가에서 직접 끓여주신 곰탕을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끓여 먹었다. 다진 마늘과 후추, 대파를 넣고 겉절이와 먹으면 그 맛이 꿀맛이었다. 이제는 곰탕을 끓이는 이가 어떤 마음으로 불을 올리는지 짐작이 된다. 자식을 생각하며 애정과 정성을 담아 만든 음식이라 그런지 정말로 아내와 나를 보호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주 오래전 캔들 빛 속에서 사람들과 서로를 칭찬하던 시간이 떠올라서 아내를 칭찬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불평 없이 잘 감당하는 것이 대견할 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농도 짙은 진국이 되지 못했다. 불안과 우울을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감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감사를 하면 뇌에서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생성되고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오늘 비록 직장에서 힘들었지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아직 아기가 생기지 않았지만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정갈하고 맛깔난 한입이 되기 위해 바짝 졸여지는 지금 이 순간이 참 감사합니다.
간이 되어 있지 않은 곰탕에 큐브처럼 네모난 왕소금을 뿌렸다. 소금의 형체가 타이타닉호처럼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받은 연단이 소금처럼 녹아 없어지면 어쩌지. 만약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된다면. 그러다 국물을 한술 뜨고 깨달았다. 소금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