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곤 May 26. 2023

11. 유엔 국제기구 본부, “저 인턴 시켜주세요!”

교환학생과 이탈리아,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다 ②

1. UNWTO 본부에 다녀왔다. 오늘의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접하는 모든 일들에 잔잔하지만 지울 수 없는 스케치처럼 녹아 있을 것 같다. UNWTO(United Nations World Tourism Organization)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부를 두고 있는 관광에 대한 유엔 국제기구다. 1925년 헤이그에서 국제관광연맹 설립으로 시작하여, 관광과 국가 간 거래를 촉진할 목적으로 1975년에 세계관광기구(WTO)가 정부간 기구로 개편되었다. 한국은 이때, 1975년에 회원국이 되었고, 명칭 그대로 세계관광의 진흥과 발전 통해 경제 발전, 국제적 이해, 평화, 번영, 인권에 이바지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는 유엔세계관광기구이다.


2. 이미 전날 한 번 가봤기에, 길을 다 익혀 큰 걱정 없이 집 밖을 나섰다. 본부에 도착하니 군복을 입은 가드가 출입구 앞을 서성이며 지키고 있었고, 예약 리스트를 확인하고서야 나를 출입시켜줬다. 게이트를 통과하니 데스크에 있는 두 명의 직원들이 나를 맞이해줬다. 본부 건물 안에는 여러 국기와 금색 명패들이 보였다. 교황 방문, 국왕 방문, 미국 대통령 방문 등등 엄청 많았다. 그 사이로 익숙한 리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함자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담당관님이 나를 데리러 와주셨고, 인사를 드리고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태지역 오피스로 올라갔다. 직원분들께서는 되려 내가 감사할 정도로 나를 정말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3. 담당관님께서는 건물이 좀 오래되었는데,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당시 건물 시설이 눈에 안 들어왔다. 그 흔적이 묻어나는 컨트롤 타워로 불리는 본부에 와보는 것만큼 뜻깊고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시설보다도 지금 생각해보니, 유엔 국제기구의 일원으로서 많은 사회적 압박과 고난에도 직업인으로서 맡은 바에 따라 원칙과 소신을 지켜 세계 속 관광산업을 지키는 전문가들의 모습은 내게 큰 교훈과 울림을 주었다. 담당관님께서는 나를 제일 먼저 국장실로 데려가 국장님께 인사를 시켜주셨다. 국장님께서는 출장을 다녀오시고 처음 출근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며 내게 명함과 개인 번호를 적어주셨다. 이렇게 대학생이 본부에 오는 건 처음이니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하시며 먼저 문을 두드린 걸 칭찬해주셨다.


4. 국장님께서는 그간 관광에 관해 뭘 배웠고, 관광 관련해서 어떤 분야로 꿈을 꾸고 있는지 상세히 말해보라 하셨다. 나는 그간 배운 관광 관련 수업과 수상, 경력과 함께 내가 꿈꾸는 지역 관광과 언론에 관해 포부 비슷하게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UN HABITAT에서 세계 고위공무원과 UN 임직원 통역 및 연수 보조한 경험과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인턴 경험을 어필하며 본부에서 의자 옮기는 현장 요원 인턴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국장님께서는 고민하시더니 6월에 열리는 총회에서 RDAP Communication 인턴을 해볼 것을 권해주셨고, 상세 일정은 추후 말씀해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감사하다고 하며 도장이라도 찍듯 고개를 강하게 숙였다. 그리곤 사무실로 이동하여 근무하시는 분들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궁금한 것들을 여쭤보고 찬찬히 둘러봤다.


5. 담당관님께서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UNWTO에 파견 직원으로 오신 한국인 두 분을 내게 소개해주셨고, 스페인 정통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참으로 기억에 남고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하고 감사한 식사였다. UNWTO 본부에 왔다는 분위기 탓도 조금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직원분들께서 젊은 MZ세대와 오랜만에 밥을 먹는다며 내게 해주신 좋은 말씀 중 하나에 꽂힌 것 같다. “0과 1의 차이는 크다. 1과 2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하지만, 0과 1처럼 경험해보고 안 해보고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러니 젊을 때의 경험들은 엄청난 것이다.” 물론 맛있는 요리들은 따뜻했지만, 대화에서 함께 먹은 사람들의 온기와 그분들이 품은 생각이 더 따뜻했고, 내 마음을 채웠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랑 식사하면 이런 느낌이 일렁일 때가 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좋사좋시(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라고 하면 될까?


6. 이렇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는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고, 또 다른 식사를 하기도 싫어진다. 유익한 본부 투어를 마치고, 숙소에 가는 마당이 되니 긴장이 풀리며 괜히 감성적 모드가 되었다. 마드리드 거리 곳곳에는 스페인 대표 기념품인 꿀과 꿀 국화차를 팔고 있었는데, 꿀을 보니 갑자기 벌이 생각이 났다. 그중에서도 영어로는 범블리(bumble bee)라고 불리는 이름부터 귀여운 통통한 호박벌이 떠올랐다. 과학계에서는 호박벌이 속한 뒤영벌은 통통한 몸체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서, 절대로 날 수가 없는 구조라고 한다. 반면에 닭은 다른 새와 같이 날 수 있는 조건을 고루 갖추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닭은 땅에 있는 모이를 쪼아 먹으며 걷고, 뒤영벌은 날아다니며 꿀을 따온다. 무엇이 뒤영벌을 날게 하는 걸까?


7. 가끔은 세상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다. 내게 오늘은 뒤영벌이 날아 꿀을 채집하는 것 같은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해외 뉴스, 다큐멘터리 그리고 교과서에서 자주 봤던 UNWTO 본부에 직접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오늘을 시점으로 항상 순간들을 의심하지 말고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래서 인턴을 하러 6월에 가서 그분들을 다시 뵙게 된다면 멋쩍게 웃으며 잔을 들고 싶다. 건배를 제안해주실 때, 잔 부딪치는 소리가 그간의 공백을 "짠"하고 채워줄 수 있도록, 민망스럽지 않게 오늘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면서 나중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을 사줄 수 있고, 그런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전 10화 10. 프라도 미술관 : 아름다움과 바라봄의 차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