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으면 이혼이라는 것의 특성상 아이를 키우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을 구분하여 양육 그리고 비양육이라고 구분하게 된다. 물론 이혼 후 딸은 엄마가 키우고 아들은 아빠가 키우는 상황도 들은 적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렇게 나뉜다.
누구나 사정이 있겠지만 나 또한 애 엄마와 함께 한다면 나 스스로 괴멸해 버릴 것 같았고,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일 것 같아 홀로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배우자에 대한 경멸, 무관심, 분노는 서서히 아이를 멍들게 할 것임에 분명하니깐.
그런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살 수 있는 건가. 독립(?)한 지 4년이 지나니깐 이전 감정들이 옅어지고 아이는 엄마랑 같이 살고, 나는 혼자 떨어져 지내는 현실만 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애 엄마나 나에게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한쪽이 아이를 100%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일반 부부나 다름이 없다. 꼭 사고로 죽거나 이런 게 아니더라도 살다 보면 부모 중 한쪽이 일시적으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일은 있을 것 같다.
대충 아이 만나는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아이를 픽업하러 가면 마치 공동경비구역 JSA 경계선 마냥 아이가 엄마한테서 나한테 넘어온다. 가슴이 저릿하고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여러 번 크게 안아준다.
아이와 하는 데이트는 보통은 서울시내 어린이 박물관, 미술관, 한강공원, 놀이터, 오락실 등 일단 가성비 있는 곳을 기본으로 하되, 조금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을 때는 공연이나 놀이공원을 가곤 한다. 딸이라서 그런지 진짜 성인들의 데이트와 비슷한 면이 많다. 좀 더 크면 더 멀리 데리고 갈 생각인데, 올해 9살인 딸이 언제까지 내 손을 잡고 따라다닐지는 모르겠다. 좀 더 있으면 친구랑 논다고 하겠지?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데이트를 마치고 나의 집에 데려와서 저녁을 차려주고 같이 조금 더 놀다가 저녁 9시쯤에 엄마 집에 데려다주는 패턴이다. 인사이드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아이 마음속에 행복한 기억은 노란색 구슬로 쌓이는데, 내 아이에게도 최대한 많은 노란 구슬을 만들어 주고 싶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지만 비양육자인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비양육자라는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엄밀히 말하면 외부에서 양육 중이라고 생각하며 내 고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론에 노출되는 비양육자 아버지는 양육비를 제 때에 주지 않고 자식에 무관심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유감스럽다. 할 수없이 이혼했지만 본인 역할에 충실한 아빠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양육자란 말을 다른 말로 바꿔 쓰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핏 떠오르는 단어로는 실제로 키우는 사람은 주양육자, 따로 떨어져 양육하는 쪽은 보조양육자?
더 좋은 말이 있으면 그걸로 대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비양육자라는 단어를 쓰면서 실제로 비양육자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지원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머 사실 상관은 없다. 사회적 관념이나 통념이 아직은 못 따라오는 깃일 뿐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비양자인 내 역할을 충실히 할 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