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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Oct 08. 2023

국화의 전설

꽃을, 국화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을 꺼내는 자체가 꽃에 대하여 아주 무지한 사람임을 고백한다.


국화라고 운을 떼면 가장 먼저 떠나간 님의 승천식에서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들이 생각이 나고, 다하지 못한 삶을 이승에 남겨두고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부모의, 님의,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림에 눈물을 빨아들이는 꽃이다.

그래서 국화는 눈물을 만들고 외로움을 만들고, 뼈 속까지 스미는, 술잔에 고독을 타서 독으로 마시며 산다.

흰 국화는, 꼭 한그루에 하나의 꽃만 피는 국화는 너무 섧어 보인다, 내마음 같기도 해서.     


2 년전에 새 집으로 입주하면서, 넓은 테라스가 있는데, 여기에 여러 가지 나무들과 꽃들을 심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가드닝이라 무식하여 용감한 일을 하였는데, 그래도 사철 푸르른 화단을 가꾸고 싶은 마음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봄에 피는 꽃, 여름에 피는 꽃, 가을에 피는 꽃, 겨울에 피는 꽃들을 찾아서 심기로 하였다.     


봄에는 이름을 알 수 없어도 수많은 종류의 꽃이 있었고, 봄꽃만 심어도 테라스가 꽉 찰 것 같았다. 그래서 덩굴장미를 25송이를 심어 담장처럼 만들고, 접시꽃, 시계꽃, 치자나무, 매화, 수국, 작약, 포도나무를 심었다. 여름철에는 푸르른 그 자체가 좋아 블루애로우, 철죽, 금송, 병꽃나무, 천리향, 오죽, 금목서 등을, 문제는 가을에 피는 꽃을 찾아보았는데 그렇게 쏙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 중에 내 마음에 드는 것, 란타나를 골랐다. 이는 가을에만 피는 꽃이 아니라 가을에도 피는 꽃이다. 요즈음 나의 테라스에서 가장 마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쁜 꽃이다. 그러고, 여우꼬리가 있는데 빨간 버들강이지와 흡사한데, 가을까지 자리를 지켜주어 고맙다. 그리고, 국화이다, 꼭 국화가 아니라 국화 종류이다. 한 송이만 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블루밍하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흰 국화는 갈바람처럼 마음을 후벼파고 쳐다보면 저절로 눈물을 만들곤하는데, 이들은 백지장에 아주 엷게 물이든 분홍색이어서 내 눈 속에 풍덩 들어온다. 저번 달까지는 필까말까 애를 태우더니 이제야 주인이 마음에 드는지 속내를 들어내고 있다.     


사람은 무식하더라도 적당히 무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면 참으로 대책이 없는데 재작년에 심었던 이 국화가 작년에 엄청 많이 자라서 다른 꽃들이 자라지 못하게 되어 베어 버렸는데, 몇 줄기 남은 놈들이 작년가을에 너무도 예쁘게 피어 나를 아주 멍청한 놈으로 만들어 버렸다. 올해는 같은 길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른 식물에 비하여 너무도 빨리 자라서 작년과 같은 난감한 일이 일어났다. 순천의 국가 정원에 공부하러 갔더니 무성하던 국화를 모두 잘라내어 버려 놀랐는데, 국화는 꽃이 피기전이 한번 잘라주어야 한단다. 그래서 잘라내어 버렸더니 그 자리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나서 국화들이 숨을 못쉬고 있었다. 다시 좀 솎아내고 마음을 좀 보였더니 한여름이 갈 무릎에 봉오리를 맺는 것이었다. 곧 피겠거니 생각했는데 이제사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 꽃 옆에는 노랑색의 국화가 필 준비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가을에는 국화 이외는 피는 꽃들이 별로 없어, 나의 테라스에는 분홍바늘꽃, 층꽃나무, 능조라, 목마가렛이 피어있고, 란타나의 꽃잎위에는 나비가 앉아 속삭이고 있다.    

 

오늘은 테라스에 노트북을 들고 나와 꽃을 보며 글을 쓰고 있는데, 참 기분이 좋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들어와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은 만사 제켜놓고, 맑은  가을 구름과 이제사 나를 보았는지 갈바람이 인사하고 지나간다.     


                                                    [엷디엷은 연분홍 국화]


국화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사랑에도 현재의 사랑, 과거의 사랑, 잃어버린 사랑, 잊혀진 사랑, 내리 사랑, 가슴 속 사랑, 찬 겨울 사랑, 말로서는 표현 할 수 없는 사랑, 버릴 수 없는 사랑, 갚을 수 없는 사랑, 빚진 사랑, 플라토닉 사랑, 에로스적 사랑, 제우스적 사랑, 하데스적 훔친 사랑, 페르세포네적 사랑, ......, 그리고, 가을사랑     


국화 꽃의 색깔과 종류가 많은 이유를 이제사 알겠네.

희다는 것은 비어 있다는 말 같은데, 이 세상에 사랑하는, 하던 사람이 비어 있으면 그것이 쓸쓸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색이 생겨났나 보네. 그 빈자리를 무슨 색으로 물들이면 어떠랴. 검은 색은 말고. 

    

꽃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면, 그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반대로 비어 있다는 것은 채울 수 있는 색이 많다고 생각하면 너무 이기적일까.     


별이 희게 보이는 것은 거기에 영혼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별을 보며 국화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별들을 국화 송이로 바꾸어 생각을 하면 때 묻은 그리움이 어깨너머로 찾아들어 얼마나 많은 눈물을 만들까.     

흰 별이 때에 따라서는 엷디엷은 연분홍색으로 변할 수 있다면, 적막한 외로움과 고독이 조금은 엷어지려나.     

가을이어서 피는 국화보다, 국화가 피어 다가오는 가을이 더 깊게 파고드는 노을 같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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