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길 Jun 30. 2024

움직인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즉,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생명이라면 먼저 호흡을 해야 하고, 자손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생명 중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포함 된다.대부분의 식물은 여기에 해당되며,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대부분이 무생물에 속한다.     


식물은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으나, 다른 자연의 힘에 의하여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바람이 분다든지, 비가 온다든지, 눈이 온다든지, 폭풍이 온다든지 하는 타의에 의하여 움직일 수 있다.     


무생물이 움직인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된다. 돌이 움직인다는 것은 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움직이는데 산사태나, 위치에너지를 갖는 물질들이 에너지를 소비하여 이동하는 것이다. 대부분 이들의 움직임은 파괴이거나 창조이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한다. 산사태는 파과기 동반되나, 건설자재로 사용되면 창조에 해당된다. 아주 멋진 빌딩, 집, 교량, 길 등을 창조할 수 있다.     


움직인다는 것은 창조족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생명의 의미에 대하여 절실하게 표현하는 일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야말로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다. 가령,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자신의 주위를 방어한다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가족을 위하여 돈 벌러 나간다거나, 사회의 일환으로서 자리매김을 한다거나,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산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사랑을 쟁취하는 것과 이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사랑을 지키는 방법의 하나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하기도 하고, 마음을 쌓아 가기도하고,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하여 스킨쉽을 하기도 한다. 그 사랑을 위하여 넥타이를 매어 준다는 것도 움직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도 움직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Moving is Loving” 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움직이지 않고는 사랑을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에서도 보면 꽃이 피면 나비, 벌들이 모여들고, 식물은 움직여서 꽃을 만든다.     

 

움직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마음이 편안한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제비가 날아온다는 것도, 새들이 짝을 지어 둥지를 만드는 것도 모두 자신의 환경에 잘 맞도록 이동하는 것이고, 독수리가 먹이 활동을 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모두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고, 결국 사랑으로 연결된다.     


또한, 움직여야만 자신의 일을 다하는 무리도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생명이 없으나, 움직여서 생명을 얻는 것에는 물이 있다. 물은 가만히 있으면 그냥 물이다. 목이 마를 때 마시는 물 정도의 물이 된다. 그러나, 이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된다. 물은 우리 몸에서, 혈액, 림프액, 땀, 소변 등으로 쓰이게 되는데,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있다.


 물이 우리의 몸에서 가장 중요하게 하는 일은 생체에 필요한 성분들을 녹여 이동 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맛있고 좋은 것을 먹는다하더라도 그 성분이 물에 녹지 않으면 이동시킬 방법이 없다. 물은 우리 몸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몸에서 발생되는 나쁜 성분인 독을 희석하여 몸의 안전을 돕는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물을 손에 들고 다니다가 목이마르는 신호가 오면 망설이지 말고 물을 마셔야 한다. 20년 전에 미국에 연구하러 갔을 때, 전차나 지하철에 타는 사람들은 모두 물병을 손에 들고 타고, 다니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우리는  요즈음 젊은이들부터 물병을 휴대하고 다니는 일들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된다.     

또, 물은 엄마의 뱃속에서 아기가 자리 잡을 때 같이 생성되어 아기를 낳을 때까지 보호하며 성장을 돕는다. 대부분 생명의 발생은 물에서 시작된다. 생명의 탄생은 물로부터 시작되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물은 움직이면서 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항상 낮은 곳으로 흘러 사람들에게는 겸손을 배우게 하지만, 화가 나서 움직일 때는 이 세상 그 무엇도 막을 수 있는 길이 없다. 말없이 조용하던 사람이 화가 나면 막을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폭풍에 휘말려 떠내러 가는 집, 성난 파도에 잡혀 먹히는  커다란 배 그 무엇도 쳐다보는 일 외에는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꼭 티폰(Typhon) 화가 났을 때와 같을 것이다. 티폰은 신들의 왕 제우스에 의해 제압되는 걸로 보아 신이 아니면 다스리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자연에 의해 존재하는 폭풍은 스스로 잠잠해 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물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기도 하지만, 그 생명을 지키는데도 없어서는 안 될 힘을 가지고 있다, 제우스보다는 더 센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지에 물이 마르면 생명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오직 물이 흘러 움직어야 만이 생명을 안전하게 유지 할 수 있다. 움직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을 그 활기를 잃은 것 같이 보이지만, 고여 있는 물은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여 가두었다가 이를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여 농부들을 움직에게 만들고 삶의 터전을 만들고,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 물은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아도 생명을 보살피는 역할을 한다.     


식물은 자의에 의하여 움직이지 못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생명에 대하여 피톤치드(Phytoncide)를 분비한다. 이것은 식물이 내뿜는 자신을 보호하는 물질이다. 움직이지 못하여 해충이 붙어 못살게 굴고, 고함지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물질을 분비하여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이 또한 움직임의 한 방법이 된다.     


생물이 움직이지 못하면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어 물질을 만들어 낸다. 또한 생명들이 자신의 배우자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를 페로몬(pheromone)이라하며, 서로 어려운 환경에서 가장 쉽게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상대를 움직에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쓰고 있는 향수도 일종의 페로몬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특히, 사람들에게는 ‘그리움’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는 보고 싶어도, 만나고 싶어도, 시간, 공간적으로 만날 수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통 한쪽이 움직이면 어떻게든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 생물의 장점일 수 있으나, 상대방이 존재하고 있지 않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이 그리움이다. 이는 생명체가 기대를 갖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없거나 공간상으로 만날 수 없으면 큰 상처를 만들게 되는 것도 그리움이다.


상대방이 있어 한쪽이 움직여 만날 수 있으면 만남(상봉)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상대방이 없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미움만 애타게, 허공을 쳐다보게 하는 것이 그리움이며, 그리움을 항상 눈물을 만들고 소리 없는 울음을 만들어 낸다.     


종(種)이 다른 경우에도 한쪽의 움직임으로 다른 쪽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애완견은 주인에 대한 강한 충심으로 주인과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데 이때의 표정이나 신체의 반응을 보면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알 수 있다. 움직임은 기대이상으로 생각지도 않은 기쁜 일들을 만들어 낸다. 주인의 출퇴근 시간을 발걸음 소리나 차의 엔진 소리만 들어도 금방 문 앞으로 달려 나간다. 이는 다른 개체 간에도 기다림과 이에 대한 보답은 서로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 가지고 있는 현상 중에서 공감이라는 말이 있다. 종이 다르건, 같건 소통을 이루게 하는 말이다.     


“WHENEVER, WHEREVER, MOVING SHOULD BE LOVING!”


소도 공감하는 데는 마찬가지다. 은근히 주인에 기대며 살을 비비는 것, 커다란 눈으로 눈 맞춤을 하는 것, 엉덩이를 쓸어주고, 털을 쓰다듬으면 기분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서로의 공감에서 표현되는 것일 것이다. 또한 소는 주인의 요구를 거슬리지 않는다. 이것은 신뢰이고 양방향의 소통으로 믿음이 굳어 졌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의 이동은 믿음과 신뢰가 원천이며, 이것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내가 저 상대를 위해서는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과 마음이 있어야 신뢰도, 믿음도 가능할 것이다.     

사람에 있어 움직임은 정서적인 일 이외에도 자신의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움직임이 삶의 필수가 되어 가고 있고, 움직이지 못하고 살아있는 생명은 생명답지 못할 수도 있다. 아플수록, 나이가 들수록 무조건 움직일 수 있게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삶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WHENEVER, WHEREVER, MOVING SHOULD BE LOVING!”     

작가의 이전글 개망초(亡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