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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가뭄

by 물길

[하늘의 가뭄] [마음속의 가뭄] [영혼의 가뭄]


들판의 풀도

정원의 꽃도

남은 청춘의 초록마저

뙤약볕에 스스로를 태워 간다


한때는 센 바람에 버틸만한 힘도 있었고

빛을 향해 고개를 들던 날도 있었는데

지금은 숨조차 덥고,

그 푸름은 잿빛으로 허물어져 간다


촉촉하던 가슴도

풀어 헤쳐 두었던 마음도

사막에 내던져진 흙덩이처럼

갈라지고, 부서지고,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나마 남아 있던

혼신의 영혼조차

거북등처럼 메마른 틈새로

서걱서걱 갈라지며

이제는 바람에도 부서져 간다

어쩌면 이마저도

세월이 주는 마지막 자비인지 모른다


육체는 가물어도

찬물 한 바가지로

잠시 위안을 줄 수 있지만

세월에 삭은 기억의 주름은

봄날의 단비로도

다시 펼 수가 없다


한 번 접힌 추억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아

밤마다 서늘한 꿈으로 찾아온다


겉이 타는 가뭄은

세월의 당연한 보상일지 몰라도,

속이 마르는 이 갈증만은

아무리 긴 강물의 길로도

삭일 수가 없다.

마시려다 보면 모래만 남고,

남기려다 보면 바람이 되어 흩어진다


나는 세월을 하냥 바라보려고

온 것이 아닌데,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무얼 찾기 위해 버텨 왔는지

이제는 나조차도 어렴풋하다.


허공에 던진 물음만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공허할 뿐,

뜨거운 바람줄기는

더 마를 것도 없는 속마저

대장간 불길처럼 태우며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부스러기까지

검은 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 불길 앞에서

나는 다만 반항 없이 서 있지만,

다시 피어날 애절함으로

청춘의 깃을 붙잡고 있다.


[촉촉하던 가슴] [무얼 찾기는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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