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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의 개혁

by 물길

그렇지도 멀지 않은 옛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논에는 허수와 허수아비가 온 들판을 지키고 있었다. 농부들도 나름대로 참새를 쫓기 위한 아이디어가 발달했었지만, 날개 달린 놈들이라 어디서 그렇게 빨리 정보를 얻는지 농부들은 항상 뒷북을 쳤다.


우리 할머니 곰방대로 ‘후여~’ 하지만 저놈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조그마한 참새 대가리보다 한 백배나 클 듯한 사람들의 머리를 비웃고 말았다. 그 다음에 소리 잘나는 양푼이나 새참 나를 때 쓰던 커다란 다라이를 논 어스름한 곳에 두고 참새가 날아오기 기다렸다 힘차게 두들겨 놀래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처음 몇 번은 놀라는 척 했으나, 곧 익숙하게 되어 장단에 춤을 출 판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할머니, 우리도 좀 먹고 삽시다’ 라고 우기는 데는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 영리한 허수를 만들기로 한다. 허수아비의 모습이 영 무섭지도 않고 움직임이 없어 새가 아닌 다른 놈이 보더라도 놀라긴커녕 놀리기까지 하였다. 움직이면서 좀 더 강력한 허수를 만드는데 연을 모태로 만들어 보기로 한다. 가운에 둥그렇게 사람 얼굴을 험악하게 그리고 양쪽에 끈을 매달아 바람이 불면 아래, 위로 바람의 세기에 따라 힘차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허수는 더욱 힘을 내어 아래 위로 좌우로 할 것 없이 정신 없이 흔들어 댔다.


새들도 참신한 아이디어에 놀라기보다는 재미있어 했다. 그래도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며 위협을 가하는 것에 조금은 움츠려졌을까. 심지어는 어떤 놈들은 실수인가 실제인가 알 수 없어도 힘차게 움직이는 허수의 얼굴을 들어 받기도 하고, 줄 타는 재미로 허수의 끈에 앉아 째작거리기도 했다. 참, 그 때는 요즈음처럼 AI나 전자 시대가 아니어서 통합적으로 위협을 주기에는 어리석을 만큼 어려웠다.


그 다음으로는 어느 정도 전자 시스템을 이용하기로 하는데, 군데 군데 커다란 농촌 스피커를 이용하여 참새떼가 오면 마이크로 소리를 지르거나 총소리, 대포 쏘는 소리, 매 울음소리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참새떼를 몰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정도면 참새떼는 농부의 애타는 심정을 봐서 다른 곳으로 놀러갈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 놀리는 재미로 꼭 허수 곁에서 장난치고 놀았다.


이제는 전기와 전자장치를 이용하여 꼭 귀신같이 움직이면서 으스스한 소리도 겸비한 허수가 등장한다. 꼭 귀신처럼 날면서 소리를 질러대기도 하여 효과가 좀 있었을 것 같기는 한데 농촌에는 집에서 논까지 전깃줄을 이어대려면 위험하기도 귀찮기도 고달프기도 해서 얼마 오래가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전깃줄 사고, 전기세 내고 할 돈이면, 차라리 참새가 먹고 남은 나락을 추수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공기총을 구비하게 되고 참새를 공기총으로 잡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참새구이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고, 참새들 사이에도 금방 옆에 앉아 있는 놈이 짹 소리도 못 하고 떨어지니, 처음에는 저 애가 잠이 와서 자다가 떨어지는 건가 생각을 했다가, 또 소리도 없이 옆에 있던 놈이 떨어지니까 무엇보다도 다음은 내 차례인가라는 생각하게 되었나 보네.

허수들도 ‘너 맛좀 봐라’고 생각하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풀렸는지 모르겠다. 농민들 쪽에서 보면 그 많은 참새들을 공기총으로 잡는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포탄처럼 한 번에 많은 놈들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총알 한 방에 한 마리밖에 못 잡으니 참새를 좇아낼 좋은 방법이고 참새들 입으로 많은 소문이 났을 텐데 포기하기도 그래서 이번에는 한 번에 여러 놈을 잡을 수 있는 엽총을 가진 포수들을 불러온다. 효과가 대단했다 한번 방아쇠를 당기면 공기총은 픽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나지만 엽총은 아주 큰 총소리를 내면서 많은 동료들이 없어지니깐 참새들도 아주 당황하게 되고 논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수수밭, 잔수, 열매 등을 찾아 나서 다른 방향에서 농부들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또한, 세상이 발달할수록 농토가 개발되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단이 들어섬에 따라 참새는 방황의 길로 들어선다. 이제는 다르게 생존 방법의 하나로 농부들과 전쟁을 하기 시작한다. 배를 채우는 일이면, 옆에 사람이 있으나 마나 대들고, 이제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면서 참새의 수도 많이 줄어 들어 갔다. 농부들도 아주 걍력한 드론으로 대응하면서 차츰 참새를 쉽게 보지 못하게 되어 간다. 그들에게도 지도자가 있어 어디가 안전하고 어디에 가면 농약에 오염되고 등의 세세한 계획을 짜는 것이었다.

때 맞추어 다행히 인간들의 요구에 이해 유기농산물의 재배가 시작되면서 농약을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참새들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그 오랜 전에는 참새와 인간의 사이가 아주 좋은 때도 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초가집 지붕 속에 참새들이 둥지를 틀고 겨울을 나기도 하는 시절이 감미롭게 다가온다. 혹시 둥지에서 애기가 떨어지거나 뱀이 참새집을 기어들어가면 뱀을 끌어 내려 참새를 보호하기도 하였고, 겨울에 눈이 많이 와 대나무 가지가 활처럼 휘어지고, 날은 춥고 먹을 것이 없을때 나락을 채워 둔 곡간의 벼를 마당에 뿌려주곤 하기도 했었다. 그것도 할머니의 눈을 피해서 해야 하는 일이라 자주 배가 부르게 모이를 줄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하였다. 그 때만 해도 보릿고개라서 벼 한 톨을 마당에 뿌리는 것은 매를 자청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면 어느 듯 겨울이 지나가고 참새들은 어디론가 가버려 너무 조용한 절간 같은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아마도 곡식이 나지 않은 겨울철과 봄에는 참새는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철새가 되어 다른 나라로 갔다 오는지, 어디서 겨울잠을 자는지는 생각도 없다. 아마도 춘공기엔 사람들처럼 참고 사는 건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촌 동네로 사진을 찍으러 가면, 초가집 지붕에 하얀 박꽃이 피어 있고, 박이 열려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고구마 빼때기가 지붕에 널려 있는 경치, 그리고 쟁기를 지게에 얹고 소를 몰고 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찾아 옛날의 모습을 담아 두고 싶은데, 요즈음은 도저히 찾을 곳이 없다. 참새들도 할아버지 지게 따라 어디로 멀리 갔나보다.


이 말은 참새가 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데, 나의 삶에도 참새처럼 좇겨 다녀 조용하고 여유로운 농촌에 많이 가보지 못했다는 말과도 연결이 된다. 나도 어느 듯 정년퇴임을 하고, 여유의 일부로 조금 멀리 나가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것도 가을에, 해남 평야 근처를 돌아보았는데 온 들판은 오랜만에 황금물결이 내 곁에 와있다. 그런데 놀란 것은 황금 벌판에 벼가 곱게도 익어 가는데 허수도 허수아비도 없고 참새들도 보이지 않았다. 농부와 참새 간의 엽총 전쟁을 끝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나 보다. 어떤 곳은 미사일이 날아다니는데 여기는 아주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지, 참새가 미사일에 얹혀 갔는지 아주 애매한 분위기다.


그간에 참새가 보이지 않는 건 허수와 허수 아비가 노력한 결과로 보아 주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사람도 어떤 사람을 업신여기게 되면 그 결과가 좋지 않듯이 참새가 허수와 그 아비를 얼마나 놀리며 재미있어 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허수의 부자가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을까, 이 가을엔 눈물도 많은 계절인데 허수 부자의 감동일지에 다시금 목 놓아 울어야 하나말아야 하나.


그런데 나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참새들이 왜 옴짝달싹 못 했는지 계산을 할 기회가 왔다.

옛날에 본 허수는 아비와 부자간만 논에 서 있었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허수도 개혁을 했더라. 부자간만 살아보니 맨날 우롱만 당하고, 참새들은 면전에서 오물을 퍼붓고 영 살 맛이 나지 않아서, 허수는 아비에게 민주주의적 태업을 하기로 한다. “아버지도 이제까지 혼지만 살아왔으니 온갖 수난을 다 겪고, 세상 사는 것처럼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꼰대같은 생각이십니까? 새 장가를 가서 가족을 더 만들고, 나도 장가가서 많은 가족을 만들면 참새가 아니라 참매가 와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우리 한번 해봅시다”라고 아비에게 아주 평화적으로으로 제안을 한다. 아비도 “자식,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너 지킨다고 내 인생 다 망가질 뻔했잖아.”하며 아주 반기는 것이었다. 역시 수컷이란 가족이 있어야 힘이 나고, 자식이 있어야 살맛이 나는 법이지.

그래서 허수의 자식들과 아비의 자식들이 새롭게 더 큰 가족을 만들어 논을 지키니 참새 놈들이 발붙일 자리가 어디 있겠어? 그래서 우리는 지금 허수와 같이 앞을 볼 수 있고, 허수 아비와 같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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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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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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