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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윤 Jul 03. 2022

천직(天職), 아름다운 마무리.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는 것.

글쓴이 주: 죽기 살기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천직, 아름다운 마무리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는 것.


애초에 계획에 없던 장사꾼의 삶,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크나큰 괴로움이었다. 신혼 때 가지고 있었던 조그만 아파트를 날려먹고,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없이 푸른 청춘을 허비하고 살아온 내가 한심했다.      


왜 장사를 시작했지? 그때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 아들의 치료를 병행했더라면 헛된 고생에 청춘을 허비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아파트라도 한 채 가지고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는 때가 있었다. 그런대로 편안하게 시작한 신용협동조합에서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팔자에 없는 쌀장사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 탓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랬더라면..


그러나 인생에는 가정이 없다. 사람은 두 번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법정. 아름다운 마무리. 22쪽     


사람들은 책 속에서 읽은 글귀나 영화의 명대사들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또 그것에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을 담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험난한 인생을 살아간다.    


나는 20년 넘는 세월을 장사꾼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업으로 하고 있는 쌀장사 일이 힘들고 괴로워서 다른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아들만 아니었으면 하얀 셔츠에 넥타이 매고서 직장인으로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흔히 말하는 운명의 장난으로 어쩔 수 없이 장사를 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나오는 이 문구를 중얼중얼해본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마무리’란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내가 하는 일이 하찮고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대오각성하게 되었다.     


그 사연은 이렇다. 


집안에 최고 어른이셨던 작은 할머니께서 운명하셔서 친척들이 다 모였다. 할머니 상중에 나를 특별히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애정을 주시던 5촌 당숙께서 오셨다. 아제께서 나를 보시고는 문득 생각난 듯 조용히 말씀하셨다.      


- 윤아, 이제 니 나이도 50인데, 지금 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라.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내 가슴속에서 천둥이 쳤다. 과연 나는 쌀장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가?      

영세 장사꾼의 삶이란 것이 ‘오늘 하루 장사는 어떨까?’, ‘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하고 늘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좀 더 편안한 일을 찾게 되고 나보다 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과연 나는 나의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는가. 지금 이것은 나의 참모습인가? 다른 어딘가에 나를 알아줄 세상이 있을 거라는 허황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음을 받아들였는가. 내가 책에서 문장으로만 읽고 아무 생각 없이 중얼중얼 대던 이 말씀을 여든을 바라보시는 당숙 아제께서 당질의 고달픈 삶과 마음에 녹아 있는 시련과 번민을 꽤 뚫어보시고 천직이라는 두 단어로 풀어내셨던 것이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쌀장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과정에는 분명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막다른 심정이 작용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들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과 내가 장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전혀 별개의 과정이다. 아들이 태어난 이후 선택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당숙 아제의 말씀을 듣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버는 돈이 얼마가 되었던 자영업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진실로 재미나게 일하기가 어렵다. 일이 재미나게 느껴질 때 그때가 장사꾼으로 성공한 것이다. 내가 쌀장사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고맙고, 보낸 시간들이 나의 성숙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쌀장사의 길이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다른 길은 없었음을 깨닫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by 하재윤-


글쓰기 프로젝트


가제: 쌀장사 20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에게..


들어가는 말


목차     

1. 인생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  


순전히 내 탓이다.

인생은 느닷없이 오고..

세상의 중심은 나.

적당히 하고 살아요.

아들 성요셉마을로 가다.

일기 아빠의 사과문 2009년 3월 29일.

   -천직(天職), 아름다운 마무리.

물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2. 장사는 힘들어  

3. 세상이 만든 질서에서 벗어나기 

4. 내 인생의 주인 되기 

5. 인생은 한 방향으로 버티는 힘이다. 

6. 인생,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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