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를 보면 내 발밑에도 수없는 사람들이 있다.
글쓴이 주: 죽기 살기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아래를 보면 내 발밑에도 수없는 사람들이 있다.
올 4월에 강원도 일원에 산불이 크게 났다. 이번 봄에는 가뭄이 심해 땅속까지 바싹 말라있어서 진화작업이 너무 힘들었다. 군인들까지 동원돼서 불 끄기에 나섰지만 보름이나 걸려서 겨우 진화됐다. 많은 산림이 타고 이재민이 생겼다.
이런 때는 배달 일을 하는 우리들은 불편하겠지만 때맞춰서 비라도 왕창 내려주면 좋겠다. 그런데 올봄에는 가뭄이 심해서 비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다. 시커멓게 탄 산림들이 뉴스에 나온다. 안타깝다.
기상이변의 영향인가. 어떤 때는 너무 많은 비가 와서 사람들을 곤란하게 한다. 옛날 할머니들 말씀대로 하늘이 하는 일이라 우리 인간이 어쩔 도리가 없으니 난감하다. 기상정보는 배달 일을 하는 우리들이 민감하게 살피는 일이다.
요즘에는 시내를 돌다 보면 동래구 쪽에서는 구름이 잔뜩 끼고 폭우가 쏟아지는데 동아대학이 있는 하단이나 사하구 쪽에서는 햇빛이 쨍쨍한 경우도 있다. 좁은 지역에서 갑자기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경우인데 기상청 용어로 국지성 호우라 한다. 호우주의보는 3시간 강우량이 60㎜ 또는 12시간 강우량이 110㎜ 이상 예상될 때 발효된다. 우산을 써도 제대로 비를 피하기 어려운 정도다.
한여름 태풍이나 장마철에는 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내릴 때가 있다. 몇 년 전 여름에 부산 초량동의 지하차도에 물이 잠겨 사고가 나서 안타까운 인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올 때는 식당에 전화를 걸어 쌀 재고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다. 요즘 식당들은 워낙 배달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서 대량의 재고를 두지 않는다. 식당 매출은 날씨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도 기상 날씨에 둔감한 사장님들이 의외로 많다. 비를 무릅쓰고라도 배달을 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2020년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새벽 2시쯤에 부산을 통과했을 때도 아침에 일을 나갈 수 있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태풍이 저녁 8시쯤에 목포쯤에 도착한다면 나의 경우는 크게 다행이다. 태풍의 속도로 보면 부산 도착 시각이 자정쯤 된다. 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오전 3시 15분에는 이미 동해안 지역 어디쯤 있을 것이다.
-태풍 뒤 바람의 영향은 있겠지만 배달에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새벽녘에 태풍이 지나간 도심의 도로를 트럭이 달린다. 신호등이 넘어지고 나무가 부러져 있다. 나는 웬만한 비에는 트럭을 몰고 나가는 편이다. 비옷으로 무장을 하고 쌀이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씌운다. 트럭을 식당 가게 문 앞에 최대한 바짝 붙인다. 조심스럽게 트럭 문을 열고 쌀을 안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시간당 3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질 때는 거의 불가능하다. 트럭 짐칸 문을 여는 순간, 트럭 지붕에 떨어진 비가 트럭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수가 있다. 나는 울고 만다.
예전에 '스마일' 식당 할머니가 생각난다.
당시 나는 아들을 중증장애인 시설인 김천 성요셉 마을로 보내고 난 뒤 세상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아들을 거두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겼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느 날 비가 세차게 내렸다. 내 마음은 저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스마일 식당 할머니가 쌀을 주문했다. 스마일 식당은 할머니가 혼자 운영하신다. 할머니는 내가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부터 우리 쌀을 써주시는 분이다. 빗속을 뚫고 배달을 갔다.
-아이고 이 비를 맞고 왔나? 쌀이 좀 남아있는데 비라도 좀 그치면 오지 그랬어.
할머니는 강원도 사람이다. 내 귀에는 표준말로 들린다.
마음이 힘들었던 나는 ‘괜찮심 미더.’ 하고 너스레를 떨 조그만 여유 초차도 없었다. 쌀포대를 내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몇 년을 거래하는 동안 할머니는 내가 몸이 아픈 아들을 두고 있고 장사일을 하면서 참 힘들어한다는 사정을 알고 있다. 아들을 장애인 시설로 보냈다는 것도 알고 계신다.
- 힘들지? 아들은 잘 지내나?
할머니가 나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그런데 할머니 말이 끝나자마자 굵은 눈물이 왕창 쏟아졌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참을 새도 없이 주르륵 하염없이 쏟아졌다. 할머니가 나를 위로하는 말에 가득 차 있던 슬픔이 풍선 터지듯 터져 나온 것이다. 그냥 느닷없이 주룩주룩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나는 소리 없이 한참이나 울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은 아직 해결될 기미가 없고, 아들을 복지시설에 두고 온 무능력한 아버지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힘들지? 하고 물어보시는 할머니 말씀이 울고 싶은 내 마음을 건드린 것이다.
할머니 앞에서 실컷 눈물을 쏟고 나니 좀 후련해지는 듯했다.
- 비 맞고 다니다 보니까 사는 기 고마 쓸쓸하고 처량하고 그러네요.
괜히 쑥스러워졌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뒤늦은 너스레를 떨었다.
할머니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툭 던졌다.
- 비 맞는 것이 무슨 큰일이 가? 물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할머니가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물밑에서 일하는 사람?
새벽부터 비가 구질구질 올 때가 있다. 배달 일을 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비가 오면 일하기 힘들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물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는 할머니 말이 생각난다.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는 말이다.
물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by 하재윤-
글쓰기 프로젝트
가제: 쌀장사 20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에게..
들어가는 말
목차
1. 인생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
순전히 내 탓이다.
인생은 느닷없이 오고..
세상의 중심은 나.
적당히 하고 살아요.
아들 성요셉마을로 가다.
일기 아빠의 사과문 2009년 3월 29일.
천직(天職), 아름다운 마무리.
-물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2. 장사는 힘들어
3. 세상이 만든 질서에서 벗어나기
4. 내 인생의 주인 되기
5. 인생은 한 방향으로 버티는 힘이다.
6. 인생,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