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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윤 Jul 11. 2022

너는 사장님인데 나는 왜 아저씨야.

쌀 장사인 나도 사장님 식구입니다.

글쓴이 주: 죽기 살기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너는 사장님인데 나는 왜 아저씨야.

쌀 장사인 나도 사장님 식구입니다.


오후 해가 아직 남았는데 배달이 끝나버리는 때가 있다. 이럴 때 마음이 편안한 식당에 불쑥 들려서 잠시 앉아 있기도 한다. 장사를 한지 오래되고, 서로 거래한 지 오래되면 이런 점이 좋다. 아무 때고 불쑥 들려도 좋다. 


- 무슨 일이지?


하지 않는다. 오든지 가든지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신문을 보다 보면 사장님도 같이 앉는다.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늘 옛날이야기를 하게 된다. 힘들었던 장사 이야기, 아이들 공부시킬 때 이야기 등이 대부분이다. 지나간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해지는 줄 모른다. 사장님들도 지나간 청춘이 그리운 것이다.


나보고 물을 때가 있다. 처음 장사 시작하고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였냐는 것이다. 


- 그게 뭐였지? 음..?     


장사 처음 시작하고 며칠 안 되었을 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매출 증대나 원가분석 따위와 같은 장사꾼으로서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터무니없게도 장사꾼이라는 사회적 신분이 주는 자괴감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나의 신분이 스스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장사가 되고 안되고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쌀을 들고 식당에 갔을 때 식당 이모들은 으레 ‘아저씨!’ 하고 부른다.


- 아저씨?


아저씨라는 말은 지나가는 남자를 부르는 보통 말이거나 자기보다 아래로 생각되는 사람에게 그냥 하대(下待)로 부르는 말이 아닌가. 어떻게 들으면 ‘어이’나 ‘야’로 들린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무슨무슨 주임님, 과장님하고 서로 존칭을 하지 않는가. 하다못해 무슨무슨 씨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펑퍼짐한 자신들에게 공손하게 예의 바르게 “이모님”하고 대하는데 대놓고 아저씨라니! 그것도 불손하고 앙칼지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이다. 아저씨라는 세 음절로 된 낱말은 내가 일개 장사꾼으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섬뜩한 호칭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마음가짐과는 다르다. 손님들이 아저씨라 부르건 삼촌이라 부르건 불러주시면 좋다. 나의 본업은 쌀집 아저씨일 뿐이다.     


사업의 세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맺어진다. 보통 거래의 주도권을 쥔 사람이 ‘갑’이 된다. 식당에 납품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식당 대표들이 ‘갑’이다. 그런데 식당을 출입해 보면 ‘갑’의 입장인 식당 대표들이 ‘을’인 납품 업자를 대할 때 매우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있다.     


보통 식당 한 곳에는 수많은 납품 업자들이 얽혀 있다. 


가스 업체나 물수건처럼 단순 품목은 납품 업자 한 사람이 맡는 경우다. 쌈장, 간장 같은 식품이나 종이컵, 냅킨 비닐 등등 소모품 자재는 두세 군데 이상 납품업자와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고기 종류도 생선 같은 수산물이나 돼지고기 같은 축산물을 취급하는 사람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한 업체에서 어류와 육류를 같이 납품할 수는 없다. 서로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쌀의 경우에도 식자재 업체에서 일괄 주문하는 사장님들이 있는 반면에 꼭 나 같은 쌀 전문점에서 이용하는 사장님도 계신다. 


한 식당에서 수 십 군데 납품업체와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납품업체 중에는 사업의 규모에 따라 별도의 점포도 없이 장사하는 아주 영세한 업체도 더러 있다. 

식당 대표의 입장에서 볼 때 조족지혈의 규모와 같은 납품업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매사 예의 바르고 공손한 자세를 보이는 식당 사장님들은 상대의 사업규모를 따지지 않는다.      


거래처 대표들에게 늘 얌전한 목소리로 대한다. 상대방을 부를 때 늘 사장님하고 깍듯이 호칭한다. 그러면 나도 더 공손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상대를 높임으로써 내가 존중받는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다. 


이런 식당을 가보면 일하는 이모님들도 납품업체 대표들에게 예의 바르게 대한다. 사장님을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사장들이 공손하지 못하면 일하는 이모들도 공손하지 못하다. 거의 대부분 그렇다. 


요즘은 나이 젊은 사장님들이 많다. 기성세대들은 무턱대고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느니 고생을 모른다느니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도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고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불쑥 나타나는 사람도 젊은이보다는 노인들이 더 많다. 


젊은 사장들이 나이는 어리지만 시민의식이 몸에 배어있고 대인관계에서도 더 예의 바르다. 고생도 어른들만큼 하고 지냈다. 대학시절부터 각종 알바로 단련되어 있다. 오죽하면 나는 알바로 세상을 배웠다는 청년의 책도 있다. 이런 청년들에게는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다.


식당을 경영하든, 다른 자영업을 하든, 물건 납품하는 사람과는 한 가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건을 납품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일수록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독자 여러분들도 식당에 밥 먹으러 가서 홀에 서빙하는 직원들에게 대충

- 저기요~!  어이~! 

하지 마시라.      


서빙하는 분이 아르바이트 임시 직원으로 보이더라도,

- 사장님!

- 이모님!

하고 공손하게들 부르시라. 


뭐라도 하나 더 빨리, 더 많이 얻어 드신다.   

 



영화 친구 2에서 유오성이 김우빈에게 말한다 


유호성: 건달들한테 형님, 동생이 와 생기노?

김우빈: 예?

유오성: 같이 배고프고, 같이 도망 댕기고, 같이 죽을 뻔하고, 같이 엉엉 울어도 보고.. 

           그래야 형님, 동생, 식구가 되는 기라. 돈만 준다고 되는 게 아이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장님 식당이 잘 운영되도록 

비 오는 날 비 맞고, 

태풍 오는 날 바람 맞고,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허겁지겁 뛰어다니는데, 


우리도 사장님 식구인기라예.            





-by 하재윤-

글쓰기 프로젝트


가제: 쌀장사 20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에게..


들어가는 말


목차     


제1장. 인생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  

제2장. 장사는 힘들어.  


장사. 행복 끝, 불행 시작.

환경에 적응하라. 단군의 맛!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겸손은 어려워.

■현재 글☞☞  너는 사장님인데, 나는 왜 아저씨야.

최선의 정책은 신속한 반응이다. 허허실실 작전.

직원을 잘 모셔야.

앓느니 사장이 하면, 직원을 망친다.

먼저 인간이 돼라.

소통은 힘들어.     


제3장. 세상이 만든 질서에서 벗어나기.

제4장. 내 인생의 주인 되기.

제5장. 인생은 한 방향으로 버티는 힘이다.

제6장. 인생,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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