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주: 죽기 살기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겉모습을 아는 사람이야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2018년 개봉한 독립영화 벌새에서 한문교실 김영지 선생이 칠판에 써준 내용이다. 명심보감 교우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영화계 뉴스로만 듣고 실제로 영화 벌새를 본 것은 재작년쯤 된다. 주인공 은희의 영상 이미지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인상 깊었다.
은희는 글씨를 왼손으로 쓴다. 엇? 우리 큰 딸도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데? 은희는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한다. 우리 큰 딸도 만화를 그리고 싶어 했지. 영상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지. (극심한 감정이입~!!)
2018년 개봉된 영화 ‘벌새’의 한문선생 김영지는 주인공 은희의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1994년의 서울, 중학교 2학년 은희가 다니는 한문교실 강사 김영지 선생은 서울대를 나오고 담배도 피운다. 왠지 지난 선생님들과는 많이 달랐다.
한문 시간에 노래를 불러준다.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서 소주 한 잔 마신 밤
덜컹덜컹 기계소리 귓가에 남아
하늘 바라보았네
잘린 손가락 묻고 오던 밤
시린 눈물 흘리던 밤
피 묻은 작업복에 지나간 내 청춘
이리도 서럽구나
하루하루 지쳐진 내 몸
쓴 소주에 달래며
고향 두고 떠나오던 날 어머니 생각하며
술에 취해 터벅
손 묻은 산을 헤매고 다녔다오.
터벅터벅 찬 소주에 취해 헤매어 다녔다오.
(영화 벌새 중에서 한문선생 김영지 노래)
뭔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불만이 많은 듯하다. 그런 김영지 선생에게 은희는 마음을 연다.
한문선생 김영지는 대사는 몇 안 되지만 은희의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선생님 역이다. 영화에서 김영지 선생은 오빠에게 맞고 사는 은희에게 앞으로는 맞지 말라고 한다. 어떻게든 맞서 싸우라고 한다.
김영지 선생이 학원을 그만둔 뒤, 선생이 보내준 소포에 적힌 주소를 보고 선생의 집으로 찾아간 은희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던 유일한 친구 김영지 선생이 성수대교 붕괴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알게 된다. 김영지 선생은 은희에게 소포를 보내고 성수대교에서 변을 당한다. 소포는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은희에게 도착한 것이다.
-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은희는 김영지 선생에게 묻는다. 답해 줄 김영지 선생은 세상에 없다.
지음(知音)은 마음이 서로 통하는 절친한 친구를 말한다. 나에게도 김영지 선생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 골드상사 대표 고(故) 최병철 사장님이시다.
사장님은 우리가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초록색 때수건으로 알고 있는 ‘이태리타올’의 상표 특허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요즘 시중에 비슷한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태리타올’이라는 로고는 함부로 새길 수 없다. 때수건에 #이태리타올 이라는 상표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신기해 했었다.
최병철 사장님은 내가 쌀가게를 열었을 때 바로 맞은편에서 이태리타올 공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내가 장사 일 년 만에 쌀가게를 말아먹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불법 무허가 헛간을 창고로 쓰면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벼랑에서 미끄러져 다시 기어오르느냐 그대로 곤두박질하느냐의 순간이었다. 나는 벼랑 끝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처절하게 용을 쓰고 있었다.
헛간에서 1년 여 개월을 보내던 어느 날, 밖에서 누가 불렀다.
- 하 군아!
- 하 군아, 이사 갔다더마는 어데 있노?
같은 동네에 계시는 골드상사 대표 최병철 사장님이었다.
최 사장님께서는 내가 쌀 점포를 날려먹고 인근 헛간으로 쫓겨 갔다는 것을 알고 찾아오신 것이다. 헛간은 출입문을 알루미늄 새시(sash)로 대충 달아놓아 출입문이 어딘지 얼핏 알아볼 수가 없었다. 최 사장님께서는 헛간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찾을 수 없어서 이리저리 출입문을 찾고 있었다.
- 하 군아!
- 아! 예.
내가 새시를 벌컥 열었다.
최 사장님은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헛간에 벽을 따라 한 줄로 쌓아놓은 쌀을 보고 기가 막혀했다. 아무 말 없이 담배를 물었다.
- 후~..
또 아무 말 없이
- 후~ 후~
담배 한 가치를 다 태우셨다.
천정이고 벽이고 한심한 모양을 이리저리 둘러보셨다. 그리고는 또 아무 말이 없으셨다.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최 사장님은 담배를 하루 두 갑 피우신다.
또 후~~!
사장님은 황당한 표정으로 연거푸 담배 두 대를 피우시고는 그냥 아무 말 없이 돌아가셨다.
다음날 최 사장님이 또 오셨다. 최 사장님은 또 아무 말 없이 담배를 꺼내 물고는
- 후~~ 후~~
말없이 손바닥만 한 헛간 이곳저곳 구석구석 천장이랑 벽을 이리저리 둘러보시고는 그냥 돌아가셨다.
며칠 있다가 최 사장님께서 또 찾아오셨다. 이번에는 담배는 꺼내지 않으시고 말했다.
-하 군, 니 말이다. 여기서는 절대로 다시 못 일어선다.
- 예.. 저도 제가 한심하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더.
- 우리 공장 뒤편에 쓸 만한 창고가 있으니까 우선은 거기로 짐을 옮기고, 거기서 다시 한번 일어나 봐라.
나는 사양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최 사장님의 공장 창고에서 만 5년을 지냈다.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푼의 월세도 받지 않으셨다.
사장님의 창고에 있는 동안 죽기 살기로 일했다. 그곳에서 한 숨을 돌리고 다시 일어설 기반을 마련했다. 내가 새로 사업장을 얻어 나갈 때 너무도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쌀집을 열었던 동래구 안락동을 떠나 좀 더 넓은 사업장을 찾아 몇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십오륙 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사장님 공장 옆을 지날 때는 반가운 마음에 ‘사장님~!’ 하고 불쑥 들려서 인사도 드리고 커피도 먹으면서 잠시 앉았다 왔다. 나보다 12살이 많으신 사장님은 늘 별말씀이 없이 다정하게 나를 맞았다.
도움을 준 사람이 ‘내가 너를 도왔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면 도움받은 이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최 사장님은 ‘내가 너를 도왔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로 오랜만에 인사를 드려도 아침에 보고 오후에 또 보는 사람처럼 그저 언제나 무심한 듯 맞아주셨다. 내가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내가 사업장을 넓은 곳으로 옮길 때마다 아주 좋아하셨다.
영화 벌새에서 은희는 김영지 선생이 보낸 소포에 적힌 주소를 보고 선생의 집으로 찾아간다.
김영지 선생의 어머니가 은희를 맞는다. 어머니는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 딸이 희생되었다고 전한다.
최 사장님은 안전사고로 너무도 허망하게 고인이 되셨다. 집 주변을 둘러보시다가 낙상을 입으시고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 2020년의 일이다.
지금의 나는 큰 탈 없이 마음을 비우고 밥 먹고 살만하다.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힘든 장사길에 혼자 애쓴 결과가 아니다. 혼자서는 결코 이겨낼 수 없는 고된 장사일을 거치면서 고마운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최병철 사장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이시다. 큰 형님 같은 마음으로 나를 감싸주시던 이태리타올 최병철 사장님은 마음을 알아주시던 분이었다. 최병철 사장님이 그립다.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영화 벌새. 한문선생 김영지 선생의 편지 중에서..)
장사 2년 만에 쫓겨갔던 헛간. 담벼락을 따라 지어져 있다. 벽 부분 패널은 원래 나무판자로 되어있었는데, 내가 고쳐 달았다. 건물이 재개발로 뜯기기 전에 기록사진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