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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윤 Jun 28. 2022

적당히 하고 살아요.

너무 깨끗하게 쓸고 닦으면 복 나갑니다.

글쓴이 주: 죽기 살기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적당히 하고 살아요.

너무 깨끗하게 쓸고 닦으면 복 나갑니다.


되는 재래시장에서 쌀을 파는 방식이다. 되는 잡곡 따위를 부피로 계량하는 단위다. 열 되는 한 말이 된다. 열 말은 한 섬이다. 계량하는 사람에 따라 부피가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      


어릴 때 재래시장 싸전에 가보면 되를 잡는 사람의 손이 신기와 같았다. 쌀을 받을 때는 되를 톡톡 쳐가면서 천천히 받아 잰다. 그러나 쌀을 팔아넘길 때는 어찌나 날렵한지 되를 재는 손이 보이지가 않을 정도다. 쌀이 잠시라도 머물면 쌀이 밑으로 쳐져서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1964년 미터법이 도입되었다. 한 자는 3.3cm로 환산되었다. 한 근은  600g이다. 예에서 보는 것처럼 길이의 단위끼리 자를 센티미터(cm)로, 무게의 단위끼리 근을 그램(g)으로 환산하는 작업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쌀, 보리, 콩 같은 농산물은 홉, 되, 말 등 부피 단위로 유통되어 왔다. 그래서 부피를 그램(g), 키로그램(kg)처럼 무게 단위로 환산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런데 전국에서 통용되는 농산물 한가마의 무게가 지방에 따라 다 달랐다. 한가마는 50되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보리쌀은 서울에서는 가마당 76·5kg이지만, 대구·부산은 80kg, 대전은 72kg으로 다 다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지방별로 제각각 유통되는 농산물의  도량형을 조사했다. 부피로 계량하던 것을 무게로 환산하도록 조정한 것이다. 


쌀 한 되는 1.6kg으로 공시되었다. 한 말은 16kg 이고, 한 섬은 160kg 이다. 옛날부터 쌀 한 ‘가마’는 ‘되’로는 50되이다. 그래서 쌀 한가마는 80kg 이다. 같이 장사하는 쌀 유통상들도 ‘가마’를 ‘섬’과 착각하는데, 이는 오류다. 한 가마는 ‘반’ 섬이다.


쌀처럼 한 되를 1.6kg으로 하는 것은 쌀, 팥. 좁쌀. 쌀보리 등이다. 곡식 중에서는 무게가 많이 나간다.


1.4kg이 한 되가 되는 것은 속청, 메주콩 등 콩 종류이다. 보리 중에서는 늘보리가 1.4kg이다. 늘보리는 쌀보리 보다 무게가 덜 나간다는 뜻이다. 


수수, 율무는 1.5kg. 메밀은 특히 가벼워서 1.2kg이면 한 되가 된다. 


깨는 참깨와 들깨의 무게가 다르다. 참깨는 1.2kg, 들깨는 900g이 한 되다. 들깨도 참깨보다 많이 가볍다는 뜻이다.          


그래도 아직 전통시장에서는 되로 사는 것이 제 맛이다. 

- 쌀 한 되 주세요.

하면 깔끔할 것을,

- 쌀 1.6 킬로그램 주세요.

영 어색하지 않은가?      

요즘 우리 사업장에서는 쌀을 한 되나 10kg씩 소량으로 저울에 달아서 팔지는 않는다. 점포에 방문하는 가정집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나 식당 등 대량 소비처를 대상으로 사업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개업 초기에는 넓은 플라스틱 함지에다 쌀을 부어놓고 저울로 달아 팔기도 했다. 쌀을 조금씩 사서 드시는 것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고, 혼자 사는 총각들은 한 되씩 사 가기도 했다. 또 제사나 가족 생일상에 쓰기 위해서 특별히 새로 쌀을 준비하시는 분도 많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큰 통에 늘보리, 쌀보리, 현미, 찹쌀, 율무, 속청 등을 담아놓고 주문한 만큼 저울에 달아 팔았다. 그러다 보면  낱알들이 떨어져서 주변이 지저분해지기도 하고 함지 주변에 먼지가 덜러 붙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눈에 거슬려서 매일 함지를 비우고 물걸레로 깨끗이 닦았다. 가게 앞에 함지를 쭉 늘어서 엎어놓고 말리기도 자주 했다.      


가게 부근 충렬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시는 분에 계셨다. 장사 경험이 많으셔서 늘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셨다. 그날도 내가 함지를 엎어놓고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지나가시면서 한마디 툭 하셨다. 


- 너무 깨끗하게 쓸고 닦으모 복 나간다.     


내가 너무 수선을 떠는 양을 보고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씀인 줄로 알고 별 느낌 없이 지내왔다. 그런데 장사를 한 이십 년 넘게 해 오는 동안 이제는 내가 그 말을 자주 써먹는다.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주변이 정리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왠지 뭔가 불확실한 것이 마음을 조여서 안절부절못할 때가 많았다. 볼펜이나 호치키스, 지우개 등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옆자리 직원들이 급한 마음에 집어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내 지우개를 찾아 내 자리로 가지고 와야 직성이 풀렸다.     


장사꾼이 되고서도 늘 쓸고 닦는 것이 습관이 되어 한겨울에도 물걸레로 트럭 번호판을 닦기도 하는 것이다. 늘 쓸고 닦는 습관은 어느새 강박이 되었다. 쓸고 닦여져 있지 않으면 왠지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앞선다. 


이 불안감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쓸고 닦여져 있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 가끔 주변이 어수선해도 눈감아지고 옷에 뭐가 묻었어도 아무렇지 않게 부산시내를 쏘다닌다. 죽기 살기로 살았어도 내 주재는 아무것도 아닌 장사꾼인데 뭐가 좀 묻어있으면 또 어떤가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일을 하다 묻은 때는 일을 열심히 했다는 표시가 아닌가.


58년 개띠인 영풍상회 사장님이 젊었던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장님이 총각시절에 부산 깡통시장에서 점원으로 일 했었다고 한다. 그때 주인 할머니는 손끝이 날래고 사람 부리는 일이 야무지기가 이를 데 없는 분이셨다. 할머니는 분수에 사치스럽고 입는 것에 돈 쓰기 좋아하는 직원들을 보면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더란다. 

- 장사꾼 옷은 좋은 거 필요 없고, 땀내 안 나도록 자주 빨아서 입으모 된다.     


주변이 어수선한 것을 못 참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일이 조금이라도 뜻대로 안 되면 영 못 참는 사람들이 있다. 고백건대 예전의 나 역시 오랜만의 가족 외출에서 분단위로 일정표를 짜 놓고는 차가 좀 막혀서 정해진 시각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 또 색다른 경험을 하느라 맛집에 들렀는데 길게 줄이 선 경우, 이럴 때는 시간이 아깝다는 마음이 들어 영 안절부절 세상이 끝난 것처럼 조급하게 군적이 있다.      


좀 기다리면 어떤가? 평소에 그다지 열심히 산 것도 아니면서 가족들을 위해서 잠시 기다리는 시간에는 왜 그렇게 유별나게 안절부절못하는가. 어디 세상 모든 일이 내가 계획 세운대로만 돌아가던가? 모름지기 세상일은 숨 쉬는 것 말고는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안 지금에는 이미 많은 세월이 흘러 있었다.     

반여동에 도시락집을 하는 깔끔한 아주머니가 있다. 말할 수 없이 사근사근하고 붙임성이 있는 분이었다. 오래도록 거래를 하면서 느낀 인상도 손님들에게 쉽게 다가가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털털한 성격이다. 그런데 털파리 성격과 달리 매장에는 먼지 한 톨 없다. 


도시락 가게에는 아주 이르다 할 아침 6시쯤에 도착할 때가 많은데 친정어머니가 나오셔서 일을 도와주고 계신다. 내가 씩 웃으면서 물었다.      


-사장님이 우리 어머니 꽤나 괴롭히시겠는데요?

-잉?

그때서야 어머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 는 표정으로 

-아이고 저기 겉은 털털해 비도(보여도) 일이 좀 잘못 되모(되면) 식당 사람들을 몬 살게 안구나. 우찌케나(어떻게나) 까탈스럽게 하던지..     

깔끔을 떠는 사장님을 만나면 늘 한 소리해준다. 

-너무 깨끗하게 해 놓으면 복 나갑니다.     

본인도 알고 있단다. 그런데 포장 시간을 못 맞춰서 손님이 오래 기다리거나, 포장이 엉성하거나 한 것을 보면 손님에게 완벽한 서비스를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랬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장사를 하다 보면 유쾌하지 못한 일로 거래처를 방문해야 할 때가 있다. 쌀이 안 좋다. 대금 회수가 잘 안 된다. 이런저런 많은 일이 생긴다. 내일 다시 그 식당을 방문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이면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식당에 가야 할 일이 생각나면서 저절로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심장 뛰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귀밑에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 느낌이 아주 기분 나쁘다.      


마흔이 채 되기 전의 일이다. 한의원을 간 적이 있다. 쌀을 둘러메고 다니다 보니 근육이 뭉치는 일이 잦았다. 식당 사장님들이 침을 맞아보라고 해서다. 노상 도마에 칼질을 해야 하는 사장님들도 늘 어깨 근육이 뭉치는 일이 잦다고 하였다. 시큰둥한 마음으로 반여동에 있는 한의원을 갔다. 나는 왠지 한의원이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주사도 주지 않고 약도 발라주지 않고 손목을 잡아 보는 게 다가 아닌가. 거기다 한약은 보통 한 달 정도는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럴 새가 어디 있나?


한의사가 맥을 짚어보고는 지금 나에게는 근육통이 문제가 아니고 스스로 마음을 너무 조급하게 먹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마음에 큰 병이 있다는 것이다.  


-어?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맥을 짚어보고 그런 걸 알 수가 있지? 


모든 병이 마음에서 온다며 새벽에 혼자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을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하루하루 밥 먹고 사는 것도 해결이 안 된 주제에 그렇게 천천히 걷는 연습 하다가는 내가 먼저 심장 터져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의사가 명의였던지 몇 년 뒤 마흔이 넘자마자 나는 탈이 나기 시작했다. 혈압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혈압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윽~~!! 혈압 오를 일이 너무 많긴 했지.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나는 스스로에게 너는 완벽하지 않다고 세뇌시킨다. 나는 다른 사람을 터무니없이 오해해서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고, 거꾸로 사람들이 나를 돈밖에 모르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장사꾼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아, 정녕 모름지기 세상일은 숨 쉬는 것 말고는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도 편하고 내 주위에 같이 일하는 동료나 가족들도 편하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 것이 있던가.     

 

인생은 항상 열어놓고 살아야 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렇게 정해놓고 살면 마음만 괴로울 뿐이다.



-by 하재윤-


글쓰기 프로젝트

가제: 쌀장사 20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에게


들어가는 말


목차     

1. 인생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  


순전히 내 탓이다.

인생은 느닷없이 오고..

세상의 중심은 나

  -적당히 하고 살아요.

아들 성요셉마을로 가다

일기 아빠의 사과문 2009년 3월 29일 

천직

선택은 나의 몫. 아들 탓하지 마라

물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인생은 불공정하다.      

 

2. 장사는 힘들어  

3. 세상이 만든 질서에서 벗어나기 

4. 내 인생의 주인 되기 

5. 인생은 한 방향으로 버티는 힘이다. 

6. 인생,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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