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야 한다.
글쓴이 주: 죽기 살기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20년 전이다. 장사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을 때다. 온천천 뒷길에 새로 거래하게 된 식당이 있었다. 온천천(溫泉川)은 부산 금정산에서 발원하여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를 거쳐 수영강과 합류하는 조그만 하천이다. 부산의 핵심 상권이면서 오래된 주거지역을 관통하는 곳이기도 하고, 봄에는 하천을 따라 심어진 오래된 벚나무들이 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는 곳이라 부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새 거래처는 온천천 뒷길에 모여 있는 단독주택들을 상대로 장사하고 있는 조그만 식당이었다. 식당에는 테이블이 세 개 밖에 없었다. 그나마 구석에 주방과 붙어있는 한 개는 그릇이나 행주 같은 물건들이 난잡하게 올려져 있었다. 때로는 사장님이 급하게 벗어놓은 장갑이나 헬멧 같은 것들이 놓여 있기도 했다. 또 사장님이 배달을 다녀와서 잠시 쉬는 장소이기도 했고, 내외분의 식사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세 개 중에 한 개는 손님을 받을 수가 없었다. 식당은 애초에 내방 손님을 받는 것은 계획하지 않았고 순전히 배달에 의존하는 것 같았다.
아빠에게 살갑게 구는 고등학생 딸이 하나 있었다. 인사성이 밝았다. 가족은 그런대로 행복하게 보였다. 그러나 사장님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항상 어두웠다. 알 수 없는 고단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깊은 수심이 가득 찬 듯 보였다. 우스갯소리를 해도 소리 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쉰이 넘어 보이는 사장님은 어린 나이에 쌀장사를 시작한 내가 안 되어 보였는지 이것저것 물어왔다. 조곤조곤한 말투였다. 또 자신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사장님은 부산 동아대학교 건축학과를 나왔다고 했다. 건설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직접 건설회사 대표가 되어 한동안 잘 나갔다고 했다. 사업상의 부침 끝에 많은 빚을 안고 친구들과 인연도 끊고 숨어 살다시피 하고 있노라고 했다.
식당일에 뜻이 없으니 사는 것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쌀 배달을 하다가 식당이 있는 골목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사장님의 식당은 문이 닫혀 있고 식당 앞에 상중(喪中)이라는 표시가 붙어있었다. 사모님께 전화를 해보니 사장님께서 갑자기 쓰러져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자세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문상을 갔다. 병원은 안락동 봉생병원이었다. 사장님은 형들이 많고 그중에 막내라고 들었다. 그런데 상갓집 분위기가 무척 황량했다. 저녁이라 제법 붐빌 텐데 문상객이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다음날이 발인이다. 그런데도 부인과 딸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쓸쓸한 죽음이었다.
며칠 후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식당은 문을 닫기로 했단다. 남아있는 쌀값은 며칠 있다가 정리해서 보내 준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 우찌 된 깁니꺼?
- 삼촌아, 자세히 할 말은 아이다. 그동안 고마웠다, 삼촌아. 잘 살아라. 삼촌아.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 쌀값도 오지 않았다. 나도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 거라 생각할 뿐이다. 내가 쉰이 넘었으니 그 사모님도 칠순이 넘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장님은 아마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듯하다.
장사일을 하면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같은 장사꾼끼리 부대끼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우여곡절을 소문으로 자주 듣는다.
아버지 때부터 쌀 도매업을 해오면서 지금도 여전히 쌀 도매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사람도 있고, 수입김치가 처음 국내 시장에서 보급되던 초기에 일찍 그 분야에 진출해서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재래시장에서 고추방앗간을 하다가 우연히 옛날 과자 만드는 기계를 보고 업종을 전환해서 지금은 제법 그럴듯한 과자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도 있다.
반면에 부산 강서구 어디에 큰 건물을 짓고 유통센터를 마련했다가 크게 잘못되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도 있다. 첫머리에 이야기했던 온천천 식당 사장님처럼 스스로 생을 마감한 분도 계신다. 산다는 것이 다 그렇지만 보잘것없는 영세 자영업자의 앞날은 특히 알 수가 없다.
성격이 아주 유쾌하고 호방한 Y사장이 계신다. 알고 지낸 지가 12,3 년이 된다. 나와는 동갑이라 말은 존대하지만 스스럼없이 지낸다. 원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화장품 회사에서 영업본부장을 하면서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초등학교 친구가 식자재 유통업이 전망이 밝으니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하더란다. 2억 원을 투자했다. 전체적인 운영은 친구가 맡고 Y사장은 자금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웬걸? Y사장은 친구에게 속아 2억 원이 넘는 돈을 날렸다.
Y사장은 사는게 싫어져서 한동안 방황했다고 한다. 그러다 회사를 사직하고 자영업의 세계로 들어왔다.
Y사장은 껍데기만 남은 유통업체를 혼자 운영하면서 그런대로 튼튼한 가게로 만들어놓았다. 그동안의 사연이 억울할 만한데도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는다.
Y사장의 어머님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내가 처음 Y사장을 만날 때부터 계셨으니 10년은 넘었다. 고충이 심할 텐데도 Y사장은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하면서도 늘 즐겁다.
Y사장의 차 드렁크에는 늘 낚싯대가 실려 있다. 배송 나갔다가도 퇴근길이 막히면 아무 데나 차를 대고 낚싯대를 드리운다. 부산은 어디를 가든 바다가 있다. Y사장은 그렇게 제일 쉬운 방법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내가 오늘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고 Y사장에게 넋두리를 할 때가 있다. Y사장은 ‘허허’ 너털너털 웃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준다. 그런 Y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오히려 용기가 난다. Y사장에게서 힘을 얻는 것이다.
내가 여러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자영업자의 삶이 이렇게 고달프다는 자영업자끼리의 위안이다. 자영업자의 삶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오늘 조금 잘 된다고 내일도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
오늘 좀 잘 된다고 자만하지도 말고, 좀 안 된다고 낙담할 일도 아니다. 이 고통 이 괴로움, 자영업자만이 알 리.
아무리 힘들어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너털너털 웃으며 어깨동무하고 같이 살아가 보자.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 -보조국사 지눌-
-by 하재윤-
글쓰기 프로젝트
가제: 쌀장사 20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에게..
들어가는 말
목차
제1장. 인생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
제2장. 장사는 힘들어.
제3장. 세상이 만든 질서에서 벗어나기.
가다가 지치면 쉬면 된다.
인생은 로드무비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더글라스 대프트. 코카콜라 회장의 신년사
버틀란트 러셀에 의하면
제4장. 내 인생의 주인 되기.
제5장. 인생은 한 방향으로 버티는 힘이다.
제6장. 인생,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에필로그,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