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우울과 함께 살아가기>
너저분한 일상의 감정이 살 속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삶을 헤집어 놓을 때까지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거나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내 삶은 즐거운 일도, 행복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얕은 어둠 속에 갇힌 시간의 되돌림이었기에 가슴 밑바닥에 짙은 슬픔을 깔고 사는 것이 남들의 평온한 삶과 같았다.
이렇게 언제나 진한 흑빛 속에 갇혀 있었기에 과도한 불안과 우울의 감정이 몰려와 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하면, 그것에 짓눌려 내 삶은 더욱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그래도 이때는 살만했다. 인생 자체가 어둡고 그늘져 있어 웃고 살지는 못했지만, 가슴 두근거림을 제외한 다른 신체 증상은 없었고, 지금처럼 불안에 찌들어 소중한 인생을 고통과 악몽으로 날려버리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흔을 넘어서며 누적된 불안이 폭발했을 때 공황발작과 불면, 모든 일의 의욕 상실이 시작됐다. 안절부절못하는 초조함과 그에 따른 집중력 저하, 이유도 모른 채 몇 달 동안 계속된 어지러움은 숨 쉬는 일조차 지옥으로 만들었다.
불안은 혼자 찾아오지 않는다.
반드시 전신의 긴장과 가슴 두근거림, 초조함, 집중력 저하를 동반하고 때에 따라서는 심인성 어지러움과 공황발작 또는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도 함께 온다. 이렇게 예전에 없던 신체 증상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각각의 신체 반응에서 하나로 연결된 유사성을 찾을 수가 없기에 이것이 불안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또한 우리 대부분은 이걸 알아차릴 정도로 본인의 감정을 돌보지도 않는다.
우리의 중추신경계, 즉 뇌는 크게 두 가지 신경회로에 의해 활동성을 조절한다. 글루타메이트 수용체가 신호를 받아 신경 활동을 증진시켜 뇌를 활성화하는 글루타메이트성 신경 전달과 가바 수용체가 개입하여 뇌를 안정시키는 가바성 신경 전달이 그것이다. 불안 장애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약물이 벤조디아제핀인데, 벤조의 주 표적이 바로 이 억제성 가바 뉴런이다.
벤조가 졸음과 진정 효과, 근육 이완, 항경련 효과를 나타내는 가바 수용체에 붙어 수용체가 활성화되면 관련 뉴런이 흥분하게 되고 가바 뉴런이 흥분한다는 것은 신경이 안정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벤조는 불안 장애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다. 그러나 이 약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향정신성의약품 중 약의 특성에 따라 종종 나타나는 현상인데 벤조는 오래 사용하면 약에 대한 의존성과 내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불안장애에 매우 효과적임에도 오랜 기간 복용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감정의 알아차림을 말하기 전에 벤조를 언급한 이유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먹고 있는 약으로는 내가 다시 건강해질 수가 없다는 것, 바로 이 사실이다. 많은 현대인이 겪는 우울과 불안, 공황 장애 등은 치열한 경쟁 속의 강한 심리적 압박과 그에 따른 긴장 또는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된 몸이 그것에 맞게 적응한 것이다. 따라서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불균형이 생기고 자율 신경계의 균형이 깨져 생기는 병이다. 정신과에서 처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여 엉망이 된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조절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신체 증상을 줄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 먹는 약은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받지 않게끔 인위적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조절해주는 것뿐이지 균형이 깨져버린 뇌를 아프기 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약을 먹는다고 해서 뇌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기에 약을 끊으면 계속해서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약이 해줄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접근, 이것을 찾아야만 지금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사람의 감정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이성의 영역을 활성화해 불안의 감정을 많이 진정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감정의 알아차림은 불안과 우울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내게 A 부장님은 매우 특별한 분이었다. 이직하고 회사에 출근했을 때 아는 것도, 아는 사람도 없던 나는 바다와 같은 광활한 사무실에 홀로 떠 있는 섬과 같았다. 뭔 그리 대단한 꿈을 품었다고 해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같은 직종도 아닌 전혀 새로운 분야로 전직을 한 상태였다. 업무 환경만 변하더라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데 새 회사에 중간 관리자로 입사하여 일을 전혀 할 줄 몰랐기에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는 커져만 갔다.
온종일 커피 한 잔, 점심 한끼 함께 먹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의 모욕적인 멸시의 눈빛은 참기가 힘들었다. 이 최악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고 침이 마르도록 입으로 뛰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모르는 게 있으면 까마득히 낮은 연차의 직원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래도 안 되면 새벽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집에 가지 않았다. 계절이 변하고 연도가 바뀔수록 몸은 가루가 되어갔지만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이렇게 밑바닥에서 박박 기고 있을 때 A 부장님이 나타났다. 몇 년 전 조직 변경으로 다른 부서에 있다가 다시 돌아온 참이었다. 처음엔 많이 어색해 하셨다. 사업부가 바뀌니 적응이 쉽지 않다고 했다. 분명 나와는 다른 상황이었기에 동병상련은 아닐진대 A 부장님 그리고 그 팀원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몸과 마음은 여전히 바짝 마른 수세미처럼 거칠기 그지없었지만, 같이 점심 먹을 사람이 생겼고 퇴근 후엔 치맥 한잔할 호기로움도 생겼다. 그렇게 이 시간들이 있어 기나긴 고난의 터널을 건너올 수 있었고 회사에서도 점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로 전국에서 몇 천 명대의 확진자가 나오자 그동안 잠잠했던 사무실에서도 직원들이 확진됐다. 코로나 초기부터 순환 재택근무를 시행했던 본사와는 달리 내가 파견 나와 있던 팀에서는 업무 일정을 고려하여 전 직원이 정상 근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한두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PCR 전수 검사를 하자 확진자 수가 급증했고 그제서야 부랴부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그렇게 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A 부장님에게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꽃 차장, 파견 팀에서 확진자 나왔다며? 상황이 어때?”
“아유, 난리도 아닙니다. 처음에 한 명 확진 되더니 연달아 계속 나오네요.”
“그래서 지금 재택근무 중인 거야?”
“네, 당분간은 재택근무로 전환하라고 해서 집에서 일하는 중입니다.”
“같이 점심이나 한 끼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래서 취소해야 할 것 같아. 그러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말아.”
예전처럼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연말이 되면 신년회를 겸한 송년회를 했었다. 그렇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얘기했었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니 해마다 했던 연말 송년회를 취소하자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A 부장님의 조기 은퇴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건너 들었다.
“부장님, 너무 하신 거 아니세요? 오늘 들었습니다.”
“들었구나. 개인적인 사안이라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
“그래도 그냥 가시면 안 되죠. 조촐하게 점심이라도 같이하시죠.”
그렇게 퇴사 전날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못 본 사이에 얼굴의 주름과 흰머리가 더 늘은 것 같았다. 언제나 이맘때면 마음이 어지러워지기에 복잡한 마음이 연말 때문인지 아니면 부장님의 퇴사 탓인지 혼란스러웠다. 마지막 점심 식사를 같이하며 이젠 직장 상사가 아닌 형님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형님이시네요. 하하”
“시이이~ 삼십일일까지.”
“네? 시월 삼십 일요?”
“십이월 삼십일 일까지!”
이 말을 하며 표정이 굳어 있었다. 농담하는 것이 아니었다. 퇴사 기준이 12월 31일이라고 말하며 정확히 선을 긋고 정색하는 얼굴을 보자 가슴에 뭔가 훅하고 꽂히는 것을 느꼈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얼른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렇게 부장님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메일을 확인하는데 퇴직 인사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그 메일을 읽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리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가 퇴사한다면 서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의 감정은 일정 선을 넘은 것으로 분명 내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주일을 고민했으나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 감정의 비밀을 풀지 못한 채 그 주 토요일 진료가 있어 병원으로 향했다. 상담 진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최근의 감정 변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의 이유를 찾고 그 안에 내포된 또 다른 나를 찾아내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상담 치료를 받는 주된 까닭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번에 있었던 일을 치료자에게 얘기하다가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사랑과는 다른 형태의 감정 거절을 당한 것이다.
이직을 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심적 의지가 됐던 사람에 대한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된 거절의 상처가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나는…
감정의 거절에 매우 큰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다. 상대가 내 마음을 거절했을 때 유독 다른 사람보다 이런 거절에 크나큰 상처를 받는다. 아마도 이 고통의 근원은 어린 시절의 경험 및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적으로 실패했던 이성에 대한 사랑의 상처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치료자가(정신과 의사)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무조건적으로 나눠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 마음을 줄 수 있는 곳이 많아 여러 곳으로 작게 분산될 수 있다면 한두 군데에서 관계가 틀어진다고 해도 그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아요. 하지만 꽃비 님처럼 나눠줄 마음은 엄청 큰데 줄 수 있는 곳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면, 한 번에 몰려간 이타적인 감정이 상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자신을 집어삼키는 커다란 상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감정을 빨리 거둬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감정과 그에 따른 상처는 나를 집어삼키는 괴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