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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와 명상

<불안, 우울과 함께 살아가기>

by 꽃비

처음부터 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불안과 우울로 고통받으면서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인정하고 난 뒤엔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으면 금세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원 이외의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달리 나는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았다. 약을 먹으니 잠은 잘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불안을 줄이며 살 수는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바짝 마른 나뭇잎이 실바람 한 번에 나가떨어지듯, 미약한 내 정신도 삶의 작은 충격 한 번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게다가 불안 장애 환자 중 10퍼센트에 해당한다는 평생 유병률, 즉 죽을 때까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10퍼센트의 사람들 속에 내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병원 이외의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절박한 문제가 됐다. 처음 생각한 건 명상이었다. 잠깐이라도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한 마음을 쉬게 하고 싶었고 명상을 하면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다. 하지만 몇 군데 되지도 않는 명상 센터들은 돈이 목적이거나 뭔가 다른 이유를 숨긴 채 회원을 모집하는 듯한 강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선택의 벽에 부딪히고 있을 때 해결의 실마리는 학교 후배에게서 나왔다.


“준아, 형 명상을 배우고 싶은데 혹시 아는 곳 있니?”


“명상이라..., 있긴 하겠지만 제대로 된 곳이 있을까요? 괜히 잘못하면 이상한 데 걸려들 것 같은데. 차라리 그러지 말고 요가를 해보는 게 어때요? 원래 요가의 진수가 호흡과 명상이거든요.”


그렇게 후배의 말을 듣고 요가원을 수소문해 지금까지 하타요가를 수련하고 있다. 여러 가지 요가 중에서 하타요가를 선택한 이유는 질병의 원인을 육체의 불균형과 기혈 순환의 장애에 있다고 보는 하타요가의 관점에 있다. 하타요가에서는 이 두 원인에 대한 치유법을 몸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체위 법과 호흡을 조절하는 호흡법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하타요가에서의 이 두 가지 치유법이 변연계에 의한 불안을 완화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사람의 몸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하면 근육이 경직된다. 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의 발생 빈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근육의 경직이 심하다. 흥미롭게도 근육은 스스로 수축과 이완을 하며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신경계를 통한 뇌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기에 근육이 긴장한다는 것은 뇌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이렇게 긴장한 뇌를 이완시키는 방법은 근육이 움직이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면 된다. 즉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켜주면 뇌와 신경계 전체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하타요가의 체위 법은 (전신 체위, 뱀 체위, 활 체위, 물구나무서기 등) 비틀린 몸의 균형을 바로 잡고 몸을 거꾸로 하여 전신의 순환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근육의 긴장을 이완시켜 불안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


또한 하타요가의 호흡 수련은 복식 호흡, 복식 호흡을 빠르게 하는 정뇌 호흡, 정뇌 호흡을 하다가 숨을 가득 마시고 참는 풀무 호흡, 한 손가락으로 좌우 코를 교대로 막아가면서 하는 교호 호흡으로 구성된다. 호흡, 즉 숨을 쉬는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임에도 불안을 야기하는 변연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호흡이 불안을 낮출 수 있는 이유는 미주신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미주신경은 12쌍의 뇌 신경 중 열 번째에 해당하는 뇌 신경으로 심장, 폐, 소화관 등의 무의식적인 운동을 조절하는 자율 신경계의 부교감 신경이다. 뇌 신경 중 가장 길고 복잡하며 분포 범위가 넓기 때문에 미주신경으로 불린다. 흔히 화가 나면 심호흡하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화가 난 것은 뇌의 활동으로 인한 감정의 결과이지만 호흡이라는 몸의 활동을 통해 뇌에서 일어난 감정의 척도를 낮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실제로 천천히 깊게 심호흡을 하면 미주신경에서 뇌간으로 신호가 올라가는데, 이때 휴식과 이완을 담당하는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교감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때문에 마음이 차분해지게 된다. 또한 서로 다른 유형의 호흡들, 즉 느리게 호흡하는 것, 빠르게 호흡하는 것, 이보다 더 빠르게 호흡하는 것을 번갈아 가며 하는 호흡은 낙천적인 감정을 증가시키고 전반적인 스트레스를 크게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타요가에서 수련하는 호흡 유형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명상은 현재 일어나는 일에만 집중하는 훈련이다.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통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에 집중함으로써 과거의 사건이나 미래에 다가올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훈련은 뇌의 집중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이것이 일반화되면 미래의 불안은 현재에 일어나지 않은 허상이 된다. 하지만 훈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잘 안 된다.


명상한다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면 다리는 저리고 온갖 잡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잡생각이 끼어들면 그냥 흘려보내면 된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는 명상을 훈련하고 이것에 익숙해질수록 불안의 알고리즘과 왜곡된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부위가 강화된다.


요가가 불안과 우울에 좋은 이유는 아주 명쾌하다. 뇌가 우리 몸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도 뇌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뇌의 활동은 몸이 하는 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요가 매트를 깔자. 굳이 하타요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떤 요가라도 내가 재미있고 마음만 편하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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