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우울과 함께 살아가기>
그날도 여느 때처럼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 속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발 한발 천천히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잔상을 느끼고 있을 때, 대부분의 생각이 긍정적이지 못하고 어둡고 침울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즐겁고 밝은 생각이 떠오르는 게 아니듯 부정적인 생각도 아무 이유 없이 자연스레 솟아나기에 내가 왜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이런 감정의 알아차림이 시작되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며 내 안을 채우고 있던 부정적 감정의 끄트머리를 잡고 마음 밖으로 끄집어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이킬 수 없는 생각의 굴레를 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번 구르기 시작한 부정성은 그 크기를 더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최악을 상상하며 나를 불안의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 던져버리고 만다.
아주 오래전에 사랑하는 연인과 잠시 연락이 닿지 않은 적이 있다. 크게 싸운 것은 아니었으나 마지막 통화가 그리 유쾌하지 않았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도 받지 않고 남겨둔 문자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까칠까칠하던 마음속의 불편함이 불안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화 많이 났나? 어떻게 풀어주지?’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걱정이 연락이 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떨림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마음의 떨림에 부정확한 가정을 덧붙이기 시작하면 머릿속의 공상은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
‘이젠 내가 싫어진 건가? 헤어지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자기 없으면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어느덧 이런 생각으로 꽉 찬 머리는 더 이상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했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무조건 그녀를 만나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 엄청난 조급함에 모든 일에 허둥대며 내 삶을 송두리째 넘겨버리고 말았다.
불안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최악의 상상을 바탕으로 독버섯처럼 빠르게 자라나 마음속을 잠식한다.
근거 없는 생각의 확신과 비논리적인 상황의 유추 그리고 그것이 연결된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자양분으로 삼아 그 세를 늘리고 악화된다.
잠시 연락이 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핸드폰 충전을 깜빡해서 배터리가 방전됐거나, 하던 일에 집중한 나머지 연락 온지 몰랐을 수도 있으며, 혹은 일찍 잠들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연인의 마음 상태와는 상관없는 긍정적인 이유가 널려 있는데도 내 마음은 그런 가능성을 하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상에서 넘쳐나는 불안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최악으로 치닫고 싶어 하는 생각의 연결고리를 끊고 아무런 근거가 없거나 가능성이 적은 나쁜 일보다 현실적이고 더 나은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머릿속의 생각은 현실이 아니다. 생각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현상일 뿐 사실이 아님에도 실제로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함으로써 극심한 불안을 탄생시킨다. 특히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의 물레는 허구이며 허상이다.
사람의 뇌는 유소년기를 거쳐 25세가 되면 발달이 완료되어 모든 사람이 같은 신경 회로와 뇌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뉴런이 연결되는 방식과 신경 회로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일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신경 회로가 어떻게 조율되어 있는지에 따라 감정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지는데, 여기에는 그 사람의 기질과 유소년기의 경험, 현재의 스트레스 그리고 인간관계의 질이 영향을 끼친다.
이 말의 뜻은 뇌가 성숙하지 못한 시기에 분리와 불안, 좌절, 공포, 폭력 등 주변 환경에 강한 부정성이 존재한다면, 뇌의 신경회로도 그것에 맞게 발달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질적으로 불안 민감도가 높고 임신 기간을 포함한 유소년기에 많은 감정적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현재의 작은 스트레스에도 불안과 우울로 연결될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감정 정보를 처리하는 뇌가 부정적인 상황을 쉽게 처리하지 못하고 자꾸 그것에 끌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같은 상황이 주어졌을 때 긍정적인 정서가 많은 사람은 부정성을 쉽게 컨트롤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것에 휘둘려 일어나지 않는 최악의 상상으로 자신을 끌고 간다. 일련의 사건에 통제할 수 없는 반복적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그 연결 고리를 끊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다른 긍정적인 생각이 현실과 일치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생각의 연결 고리를 끊지 못하고 최악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여 자책할 필요는 없다. 원래 잘 안 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는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기보다 부정적인 일에 더 강렬히 반응한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왜곡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뇌의 이런 처리 방식이 불안 장애나 우울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뇌는 25세 이후에 변할 수 없게 고정된 게 아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경험은 뇌를 변화시키고 뇌는 그 변화를 간직한다.
반복되는 불안으로 삶이 흔들릴 때마다 긍정적인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뇌는 느리더라도 그에 맞춰 발전할 것이다.
그러면 사는 게 지금보다는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