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우울과 함께 살아가기>
직업 특성상 해외 출장이 잦다.
일에 따라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까지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어떻게 보면 내 직업이 가진 특권이라 생각하면서도 낯선 나라에서 익숙하지 않은 음식과 편치 않은 호텔 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만약 그곳이 수시로 모래 폭풍이 부는 열사의 땅 중동이거나 사회 기반 시설이 열악한 아프리카라면 집에 대한 그리움은 고국에 대한 간절함이 된다. 간혹가다 수지맞는 경우도 있다. 함께 일하는 해외 파트너사가 유럽에 있다면 두말할 것 없이 유럽 출장이 된다.
2017년 연말이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연말이 되면 주변이 어수선해지며 내 마음도 요동을 친다. 그 마음의 파고가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대한 설렘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해가 지날수록 진해지는 외로움과 고독의 끝이었다. 행복하진 않아도 불행하지 않게 마음이 덜 아픈 곳으로 차분히 내려앉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염원과 달리 평소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이 몰려오곤 했다.
이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청소를 하거나 괜히 가구 위치를 바꾸며 주변 환경에 변화를 주는 일이다. 비록 몸은 고될지라도 아프고 쓰린 마음엔 피곤한 몸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또다시 다가오는 연말을 준비하고 있을 때 예정에 없던 스페인 출장이 생겼다. 다른 사람이라면 가족과 함께할 연말에 뭔 출장이냐며 투덜대겠지만 이럴 때 혼자 있느니 차라리 낯선 환경에서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이코노미에 열 시간 넘게 갇혀 있다가 스페인에 도착했다.
연말의 마드리드는 여기저기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고 끊임없이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길을 걷던 사람들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자 그런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들뜬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낯선 환경에서 일하고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스페인의 골목길을 산책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일이기도 했다.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는 샹그리아는 최고급 와인보다 달콤했고 너무 생소하고 비리기만 했던 하몽은 멜론과 함께 먹을 때 그 진가를 발휘했다. 처음엔 너무 비리고 짜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안에 숨겨진 본연의 맛을 알지 못했다.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달고 짭조름한 멜론과 하몽을 보며 내 인생이 멜론 없는 하몽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너무 쓰고 아프기만 했기에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내 삶의 작은 달콤함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른 환경에 있으니 예전처럼 아프지는 않았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향긋한 엔젤링이 퍼지는 스페인 맥주를 마시며 낯선 사람들을 구경하고 주어진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귀국일이 다가왔다. 그렇게 계획했던 모든 일을 잘 마무리하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다소 시간이 남아 뭘 할까 고민하다가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세고비아에 가기로 했다. 남은 시간을 감안하면 거리상 세고비아가 적당하기도 했고 그곳에 있을 로마 수도교가 보고 싶었다.
보통 유럽은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연말 휴가가 시작된다. 그 때문에 세고비아로 향하는 버스는 고향 가는 사람들로 만석이었고 추운 날씨 탓인지 아니면 고향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사람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그들의 설렘에 무임승차하여 출장자가 아닌 여행자로서 그들과 함께했다.
얼추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정류장에 마중 나온 가족들과 서로 얼싸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도시 중심지로 걸어 들어가니 수도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고대 역사와 건축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실물로 처음 보는 수도교의 감동과 알카사르에서 봤던 드넓은 평원의 석양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비록 시간에 쫓기고 손가락이 곱아 가는 추운 날씨였지만 사람처럼 사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가슴 깊이 새겨진 순간이었다.
쳇바퀴 도는 무력한 일상, 아무런 흥미도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웃음기 없는 인생이 아닌 음식의 맛과 새로움에 호기심을 느끼며 살아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마드리드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그렇게 야속하고 아쉬울 수가 없었다. 이 시간이 지나 다시 인천공항에 두 발을 딛게 되면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목석같은 인간으로 돌아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막차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빨리 저녁을 먹어야 했다. 스페인에서 마지막 한 끼였기에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렇게 레스토랑을 찾아 광장으로 향하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뭔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행자의 호기심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거북이처럼 최대한 목을 내밀어보니 야외 공연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한참을 구경하다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뒤돌아섰다.
그 순간, 중저음의 음색이 가늘게 퍼지며 내 가슴을 뚫었다. 그 소리에 넋이 나가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육중한 몸으로 연주자의 품에 안겨 있던 첼로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나를 향했던 첼로의 음색, 처음 듣는 첼로 소리에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자 시린 마음이 가시며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입안에서 퍼진 향긋한 음식의 풍미와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귀에 꽂히듯 날아온 첼로의 음색이 단지 주변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느껴진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지 않았다. 그곳이 어디든 장소와 관계없이 맛있는 음식이 있고 흥미롭고 다채로운 일은 일어나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한 것은 나 자신일 뿐이었다.
삶의 의욕을 잃어버려 사는 게 지긋지긋하더라도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다 보면 찰나의 순간, 마음속에 들어오는 작은 일이 있다.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작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음속에 켜켜이 쟁여 두면 그것이 모여 불안과 우울에 맞서 싸우는 힘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