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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

by 꽃비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거나 아예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 타인의 고통을 포용하고 감내할 수 있는 각오가 새겨져 있지 않은 사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정신 건강과 관련된 일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금전적 보수 혹은 전문 자격에 대한 매력, 그에 따른 직업적 겉치레만으로는 절대 대변될 수 없는 분야임에도 실제로 부딪히는 현실에서는 어떤 사회적 냉대보다 더 가혹할 때가 많다. 놀랍게도 이런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이 아니라면 수면 밖으로 드러나지도 않기에 사람에 대한 이해는 언제나 허울 좋은 이름 속에 묻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없게 된다.


가장 흔한 예로 심리상담사는 별도의 응시 조건이 없다. 겨우 몇 주의 온라인 강의만을 듣고 시험에 합격하면 된다는 사실은 마음의 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전자 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가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하며 내담자에게 성적인 질문을 하고 강제 입맞춤을 하는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은 그 병이 생긴 고통의 근원은 다를지라도 그로 인해 자기 삶이 무너지고 있거나 이미 무너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태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또 다른 심리적 압박에 항상 시달린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찾아간 심리치료센터에서 심리적 공감과 위로는 고사하고 그 마음 상태를 악용한 성범죄자의 표적이 된 것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본 적이 있다.


“남편이 무슨 약을 몰래 먹는 것 같다. 뭔가를 부스럭대며 먹는 모습을 본 뒤 그 약을 확인해 보니 정신과 약이다.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 물어보지는 못하겠고 아이는 아직 어린데 너무 걱정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에는 여러 댓글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남편의 직업과 연봉 등 돈에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 많은 댓글 중에 아픈 남편이 너무 외롭지 않게 보듬어 주라는 글은 전혀 없었다.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정의 수입원이 오직 남편뿐이고 이제 커가는 아이들의 양육비, 교육비, 생활비를 생각한다면 정말 큰일이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문제로 아픈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를 모르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답답해 미칠 지경일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진정으로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무슨 약을 먹는 것이냐? 나에게 뭘 숨기고 있는 것이냐?”라는 물음이 아닌 “그동안 사는 게 많이 힘들었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심지어 내게 말도 못 하고 약을 먹으며 견디고 있는 것이냐?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라는 단순한 이 한마디 말이다. 이 말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희망은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만이 해줄 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공감의 이치가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정신과에서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짧게는 이십 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까지 함께하는 정신과 의사는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 주어진 전문가라는 자격이 정신과에서 꼭 필요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전문가”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지는 않는 것 같다.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의대에는 정재영과 피안성이라는 말이 있다. 정재영은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를 줄여 말하는 것으로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과 더불어 전공의 선택 시 가장 인기 있는 과들이다.


사람이 몰리고 인기가 있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현실이 투영된 그 이유에는 정신건강의학과의 특이성이 반영되거나 고려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는 것,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후천적인 교육과 노력으로 습득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정신과 환자에게 꼭 필요한 의사는 의대에서 가장 공부를 잘한 선생님이 아니라 지능지수와는 차원이 다른 EQ, 즉 감성 지능이 높은 선생님들이다.


그래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진료실에 앉아 있는 정신과 의사 중 일부는 당신의 상처와 감정에 관심이 없다. (모든 치료자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오해는 말자.)


벼랑 끝에 몰려 찾아간 병원일지라도 환자의 상처와 고통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치료자를(정신과 의사) 만날 가능성이 있다. 어느 가수의 죽음처럼 우울증을 당신의 성격 탓으로 치부하는 치료자를 만날 수도 있다. 또는 강한 감정적 전이를 이용하여 그루밍 성범죄를 일으키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소시오패스를 대면할 수도 있다. 몇 년을 고민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치료자의 의견을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다.


설령 그게 옳다고 해도 내담자가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치료자의 의견은 오히려 해를 끼치지, 내담자의 정신 건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빠져 죽을 듯이 허우적대다가, 저 멀리 호화로운 요트에 평화로이 앉아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겨우 헤엄쳐 마지막 손을 내밀어 보지만, 그 사람은 손을 잡고 끌어 올리기는커녕 되려 물속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이렇게...


그곳에서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들이 우리를 대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너무 많은 심적 의지와 기대를 가지지 말자. 그러면 최소한 그곳 때문에 죽거나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불안과 우울에 맞서는 방법이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자세히 관찰하다 그나마 평온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상이 깨지는 순간, 그 이유를 객관적인 시선과 감정으로 쫓아갈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우울에 의한 무기력이 내 몸을 집어삼키는 순간, 그 강렬한 유혹을 견디며 심리적 방어선을 치고 버텨내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 엄청난 유혹을 견디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포함한 모든 의욕이 사라질 때, 그 순간을 인지하고 심리적 방어선을 치며 버텨낸다는 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일이 그 순간을 버티며 억지로 음식을 욱여넣고 몸을 움직이면 조금씩 그런대로 그렇다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살 만하다.


반드시 그날을 이렇게 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시키는 대로 끌려 들어가기 시작하면 삶이 엉망이 되는 것을 떠나 위험하다. 그러니 많은 기대는 하지 말되 앞서 말한 두 가지 기술은 꼭 터득해 보자.


이 무기가 없으면 우리는 우울, 불안과 맞서 싸울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피해야 할 병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담 진료를 하지 않고 약만 처방하는 곳


둘째, 내담자의 고통을 귀담아듣지 않는 곳 (건성으로 대충 넘기거나 얼버무리는 곳)


셋째, 전이의 감정을 이용하거나 공격하는 곳


넷째, 먹고 있는 약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는 곳 (내담자의 성향상 모르는 게 도움이 될 경우 얘기하지 않을 수도 있음. 보통 약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경우임)


다섯째, 상담 진료 시 내담자의 감정 변화와 상태, 증상의 경감 여부를 관찰하지 않는 곳


여섯째, 내담자의 질문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곳


일곱째, 우울 장애나 불안 장애의 원인을 내담자의 성격 또는 의지의 문제로 비난하는 곳


치료자는 내담자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상담 진료를 하는 동안 내담자의 심리 상태를 비춰 내담자 스스로가 자기 내면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치료자도 사람이다. 다년간 수련하고 많은 진료 경험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담 진료를 하다 보면 실수를 할 수 있다. 그것이 내담자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말실수이거나 역전이로 인한 감정의 얽힘일 수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후의 행동이다. 내담자에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정 어린 사과와 위로를 건네는 치료자가 있다.


반드시 이런 치료자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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