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
필요하면 일단 먹어야 한다.
약물 이외에도 불안을 낮출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많은 연습이 필요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즉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말이고 그것을 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불안에 의한 여러 증상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불안장애의 종류와 관계없이 증상이 심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면 지금 당장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항불안제를 복용하는 것이다.
항불안제는 환자의 증상 유무 및 가감 정도에 따라 처방이 다르고 부작용 또한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불안장애에 먹는 약과 부작용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이는 전문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에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반드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 과정과 단약 (약을 끊는 것)에 대한 것이다.
정신과의 향정신성의약품은 다른 약과 달리 먹기 싫다고 하여 환자 맘대로 끊을 수 있는 약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약을 먹는 것에 주저하거나 아예 거부하기도 한다. 특히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 의존하는 것에 반감이 클수록 약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마음의 기반에는 마음의 병을 다른 질병과 달리 큰 병이라 생각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전문적인 도움을 받지 않고서 혼자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며 방치할수록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필요하면 먹어야 하고 대신 부작용이 적고 자신에게 잘 맞는 약을 찾아야 한다.
보통 병원에서 처방받는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는 먹는다고 해서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복용 후 최소 2주에서 4주가 지나야 하고 증세에 차도가 없다면 치료자의 판단하에 다른 약으로 변경한다. 약을 먹게 되면 대부분 부작용을 경험하는데 부작용의 양상은 환자마다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졸음, 구토, 현기증 및 일부 남성에게는 성기능 장애도 나타난다. 이런 부작용은 2주 정도 지나면 많이 완화되거나 없어진다. 하지만 약을 먹은 이후 평소와 다른 신체 증상이 있다면 병원 진료 시에 치료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다. 문제는 2주가 지났는데도 부작용이 줄어들지 않거나 복용 초기부터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속될 때이다. 이런 경우는 약이 맞지 않는 것이기에 치료자의 판단에 따라 다른 약으로 변경하게 된다.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많이 알려진 공황장애와 우울증 등 여러 정신 장애들이 정작 본인에게 나타났을 때는 그것이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신과를 방문하기에 앞서 여러 진료과를 거치며 검사를 받아 보지만 이렇다 할 원인을 찾지 못하기에 치료 시기를 놓치고 만다. 이렇게 불안과 우울에 무방비로 노출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신의 에너지가 소진되며 정신과를 찾아올 때쯤이면 이미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로 겨우 정신과에 왔는데 거기에서 또 약에 대한 부작용을 심하게 겪는다면 이젠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중도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방법이 없다. 지속되는 부작용을 견디지 못할 땐 맞는 약을 찾을 때까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른 약으로 바꿔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렇게 찾다 보면 부작용이 적거나 아예 없으면서 불안과 우울을 줄여줄 수 있는 약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약의 부작용 때문에 어렵게 시작한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단약에 대한 이야기이다.
증세가 호전되어 치료자의 지도하에 약을 줄이고 끊는 것보다 환자 임의대로 끊는 경우를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지만, 정신과 약은 자기 마음대로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추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로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 조치를 취하며 단계적으로 줄이는 게 아니면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병원을 4년 정도 다녔을 때 상담 진료와 약물 치료를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치료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약을 줄여주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이 말을 들으며 어쩌면 약의 볼모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독하게 맘먹고 치료자가 동의한 적 없는 정말 무식한 단약을 시도했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먹었던 약을 주말을 이용해 저녁부터 먹지 않았다. 그리고 이로 인한 금단 증상은 오래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체온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한여름에 오한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시간이 지나자 오한은 줄었으나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열이 발 쪽으로 집중되어 너무 뜨거웠다. 주말이 지나 출근해야 하는데 땀은 계속 쏟아졌고 구토까지 있어 결국 휴가를 냈다. 며칠 더 지나자 오한, 구토, 체온 조절 문제는 나아졌으나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통증이 시작됐다. 정상적으로 약을 먹을 때도 있던 부작용이다. 그런데 약을 끊자 정말 미친듯이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과장 없이 몇 초에 한 번꼴로 온종일 계속되며 2주 동안 이런 상태가 지속됐다. 정말 심했을 때는 머리 전체가 번개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약을 끊고 3주 정도를 버티자 여러 증상은 사라졌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약의 증상과 다시 심각해진 일상의 불안 때문에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통해 여전히 마음의 병이 낫지 않았고 아직은 약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새벽에 자꾸 깨는 일이 반복되어 트리티코정 50mg을 처방받은 적이 있다. 트라조돈염산염이 주성분으로 뇌 속의 세로토닌 재흡수를 막아 우울감을 개선하는 목적으로 처방되는 약이다. 세로토닌은 의지력, 활동 의욕, 기분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의 중요한 호르몬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 약은 우울 개선뿐 아니라 불면증에도 많이 처방된다.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한 뒤 견디기 힘든 부작용이 나타났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심한 구토와 두통, 소용돌이치며 나를 끌어 잡아당기는 듯한 졸음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오전 내내 잠을 자야 그나마 괜찮았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다른 약으로 바꾸면 또다시 그 약에 의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그게 미미하거나 없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심하다면 환자가 너무 힘들어진다. 결국 환자는 이전 약에 대한 부작용을 경험한 상태에서 또 다른 약에 의한 부작용까지 연속으로 참고 견뎌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결국은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먹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치료자와 상의하며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야 한다. 약을 찾았다면 일단 한고비는 넘긴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항불안제가 아니어도 불안을 낮추는 방법은 요가, 명상, 알아차림, 감사하기, 부정 편향의 개선, 호흡 훈련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한두 번 해서 극적인 변화가 있다면 불안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또한 처음에는 습관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꾸준히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일단은 약물 치료를 하며 모든 환자의 최종 목적인 상담 치료, 약물 치료 없이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추가적인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야 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바탕으로 불안을 낮추는 여러 방법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병원에 가지 않고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