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의 높이가 내 키만 한데 앵두나무는 그보다 훨씬 큰 걸로 보아 수령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파트로 개발이 되고 계획에서 빠진 몇몇의 집들이 오 도가니 남아있다. 집은 낡고 마치 폐가 같다.
이 골목길을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나는 이 앵두나무를 보지 못했다 지난봄에 앵두꽃이 엄청 많이 피었을 텐데. 그때는 왜 보지 못했는지 아쉬움이 크다.
가지로 보아 앵두가 꽤 많이 열렸을 테지만 길가 가까운 곳의 나뭇가지의 앵두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누군가가 따간 것이다. 그대로 두었더라도 얼마나 좋았을까? 이 골목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을 텐데.
붉은 앵두 사진을 찍으려고 나는 까치발을 짚고 한참을 실랑이를 해야 했다.
잘 익은 과일을 보는 일은 흐뭇하고 행복한 일이다. 비록 내가 가꾸는 내 과일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좁은 마당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앵두나무 그 옆의 대문을 열고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만 같다.
나는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 온전한 앵두나무를 보고 싶은 욕심으로,
한참을 기다렸지만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다. 아쉬운 발길을 돌리면서 내 상상은 앵두나무가 이곳에 심어진 때를 상상한다. 가족들의 환호를 받으며 마당 한편에 심어진 앵두나무 첫 꽃이 피었을 때 온 가족은 앵두꽃보다 더 큰 미소로 반겼으리라, 그리고 붉게 익어가는 앵두를 보면서 느꼈을 즐거움과 한 알씩 입에 넣고 수확의 기쁨을 감격스러워했을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들은 이제 모두 흩어졌다.
세월이 흘렀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장년이었던 집주인은 노년이 되었고, 앵두나무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의 관심도 사랑도 받지 못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 요깃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다 맞은편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주인이 앵두나무 집 앞에서 한참을 서있던 나를 본 모양으로 묻는다.
"앵두가 예쁘게 익었지요?"
나는 그 집에 사람이 사는지에 대해 물었다.
지난겨울까지만 해도 어르신 두 분이 사셨어요. 지금은 모두 요양병원으로 가셨지만..."
카페 주인은 그 동네 토박이여서 그 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카페는 4층 건물 1층에 있다. 원래 이곳이 카페 주인이 어렸을 때부터 살던 집터였다고 한다. 맞은편 앵두나무 집처럼, 그 낡은 집을 헐고 몇 년 전 4층 건물을 짓고 1층에 카페를 4층에는 살림집을 3층에는 공방을 운영한다고 했다.
"저 앵두나무 집에는 식구가 많았나요?"
"우리 집처럼 5 식구가 살았어요. 지금 요양원에 계신 두 분과 내 또래였던 아들 두 명과 그 아래로 아주 귀엽고 예쁜 아이 가요."
카페에 손님이 들어와 우리의 대화는 잠시 끊어졌다.
카페 주인은 익숙한 몸짓으로 커피를 주문받고 커피를 내린다. 그 모습을 아름답다.
오래전 나는 커피숖을 운영한 적이 있다. 당시는 지금처럼 커피전문점이 없었고 다방이나 커피와 다과와 술을 파는 카페가 있을 때였다.
인사동 초입 골목길 끝에 '티롤'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연예인보다 미인인 친구와 그 카페에 자주 들렀다. 친구의 꿈은 티롤처럼 작고 예쁜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카페 여주인으로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티롤 주인에 의하면 천상병 시인의 아내인 목순옥 여사가 이곳에서 근무하며 일을 배워 '귀천'을 차렸다고 했다. '티롤'의 분위기는 음침했고 그 분위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와 반대로 친구는 그 분위기를 좋아해 우리는 카페에 종종 들러 커피와 차를 마셨다.
그리고 몇 년 뒤, 거짓말처럼 나는 카페 운영자가 되었다.
카페 티롤이 오스트리아 휴양도시의 이름을 빌렸다는 데 착안해서 몇 날 며칠 고심한 끝에 '다보스'라고 카페 이름을 지었다.
다보스[ Davos ]는 스위스 그라우뷘덴 주의 최대 도시로 알프스 산맥의 해발 1,560m의 플레수르산과 알불라산 사이의 란드바서 강변에 위치해 있는 유서 깊은 관광휴양도시다. 이곳에서는 매년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회의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데, 특히 스위스 최대의 스키장 중 하나와 유럽 최대의 자연 빙상장이 있는 동계 스포츠의 명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