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바뀐 새벽을 여는 사람들

삶의 단상 /

by 가야

습관적으로 이른 새벽이면 일어난다.

말복이 지나고 아침저녁에는 제법 선선하다. 귀뚜라미 소리로 가득한 새벽은 숙연한 느낌이 든다.


새벽에 산책하는 일을 즐겨하지 않지만 모처럼 카디건을 하나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추분이 지났음인가

며칠 전 같았으면 밝았을 하늘이 하늘은 어둑어둑하다.


가을이 이렇게 오고 있는 것이다.

막 현관문을 열고 화분대 옆 신문을 집안에 던 지 놓고 계단을 내려간다.


그때 주차장에 트럭이 멈추더니 운전석에서 훌쩍 뛰어내린 청년이 탑차 뒷문을 열고 물건을 꺼내더니 손에 들고 쏜살같이 내 곁을 스쳐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을 올라간다.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하고 손에 작은 물건을 든 그 젊은 남자가 누구인 줄 묻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새벽 배송을 하는 택배사 직원이라는 걸...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 조금 전 계단을 뛰어올라갔던 그 젊은이가 뛰어 내려와 재빨리 택배 트럭 운전석 문을 열고 올라타더니 이내 차의 시동이 걸리고 사라져 버렸다.


아주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아마 배달할 문건이 2층이었나 보다.


화단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조금 전 택배기사의 일사불란했던 행동이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새로운 소식을 알기 위해 신문을 봐야 했다. 1970년대 텔레비전 보급률이 80%를 넘어섰지만 대부분 새벽에 배달되는 신문의 지면을 통해서 뉴스를 보았다. 신문마다 전하는 뉘앙스가 달라 여러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여러 신문을 본다는 것은 그만큼 부유하며 유식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신문배달이 필요했고, 지금 청소년들이 용돈을 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듯 당시 청소년들은 자신의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배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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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오빠와 남동생들도 신문배달을 하였다. 이른 새벽 동도 트기 전에 집을 나서던 그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지금은 뉴스를 신문을 통해 보는 사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 거의 없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필자도 조간과 석간을 보고 있지만 뉴스를 보지는 않는다. 신문에 나오는 기사는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침에 신문을 훑어봐야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제대로 된 것같이 편안 지는 것은 오래된 습관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사는 동에서 신문을 보는 가구는 몇 가구 되지 않는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신문을 보는 집도 많았다. 우리 집이 있는 3층에서도 50% 이상 신문을 구독했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점차 그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우리 동 전체를 통틀어 세 집 밖에 신문을 보지 않는다.


신문 배달하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에게 물어봤더니 한 사람이 조간신문 대부분을 배달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신문 구독자가 많지 않으니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고 돈도 되지 않아 힘들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신문 배달하는 분에게 미안해서 그만 보는 게 도움이 되는가를 물어보니 화들짝 놀라시며 그건 아니란다.


시대가 변하고 모든 것이 발달하다 보니 일상이 바뀌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새벽을 여는 사람이 신문을 배달하던 중고생들이었다면 지금은 30~40대 택배기사로 바뀌었다. 신문을 보면서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하던 시대에서 택배기사가 전해주는 생활필수품으로 아침을 여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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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세월은 또 어떻게 변할까 사뭇 궁금해지면서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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