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창덕궁에 다녀온 뒤, 창덕궁 후원을 못 보고 온 것이 마냥 아쉬웠다.
임금이 소풍과 산책을 했던 후원으로 울창한 숲 곳곳 은밀하게 자리 잡은 운치 있는 정자와 연못, 경치가 너무 아름답고 신비로워 비원(祕苑)으로 불렸던 우리나라 궁궐 중 최대의 궁중 정원(宮苑)인 창덕궁 후원.
오래전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날 지인과 관람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창덕원 후원은 예약이 쉽지 않다. 가고 싶은 날을 클릭하면 모두 매진. 매진 어쩌다 좌석이 남아있다 싶으면 시간이 어정쩡하여 망설이다 보면 순식간에 매진이 되어버렸다.
벼르고 벼르다 현장에서 표를 구해 창덕궁 후원의 단풍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에 10월 27일 일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현장에서 표를 구매한 관람객들에 의하면 아침 일찍 가야 한다고 했는데, 꾸물대다 조금 늦었다.
지하철로 양천구청 역에서 종로 3가까지 1시간가량 걸린다. 종로3가역에서 창덕궁 매표소까지 10여 분 소요. 10시 창덕궁 매표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줄이 너무 길다. ㅠ
표를 구하는 방법은 두 종류가 있다. 내국인 만 24세 이상 64세 이하는 무인 발권기에서 직접 표를 구매할 수 있고, 외국인과 만 24세 이하, 만 65세 이상, 한복 착용자는 줄을 서서 매표소에서 구매해야 한다.
필자도 만 65세가 넘어 줄을 서야만 했다. 현장 매표 보조원들도 안내를 그렇게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내국인을 나이와 한복 착용자로 구분하는 것은 창덕궁 관람료 때문인 듯하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하는 사람은 창덕궁 무료 관람자와 외국인이다.
그러나 이 방법에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내국인 중 무료 관람객에 해당하는 사람은 창덕궁에 들어갈 때 입장권을 구매할 필요가 없고 신분증만 제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줄을 서지 않았더라면 12시 표를 예약할 수 있었을 텐데, 시니어라서 줄을 섰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오후 2시 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나중에 후회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만약 창경원 후원 현장에서 표를 구매하시려는 무료 관람자분들은 줄을 서지 말고 자동발매기를 이용해서 구매하기 바란다.
표를 구매한 시간 10시 22분 창경궁 후원 관람시간까지 3시간 30분이나 남았다. 북촌을 한 바퀴 둘러볼까 했지만, 오후에 후원을 관람하려면 다리를 아껴야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창덕궁 관람하시는 분들은 잊지 말고 창덕궁 매표소 옆에 있는 이 아름다운 은행나무도 꼭 둘러보기 바란다.
가까운 공원에서 쉬면서 간단한 점심과 차를 마시고 12시 30분 창덕궁으로 향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창덕궁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는 일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돈화문에서 후원 입구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1시 예약을 한 사람들이 해설사에게 주의사항을 듣고 있다.
직원에게 다가가 예약 시간이 2시인데 들어갈 수 없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혼자냐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니 들어가란다.
오호~ 너무 고마웠다.
창덕궁 해설사가 관람객들에게 관람 일정과 주의 사항을 말하고 있다. 해설사 해설을 듣지 않고 자유관람을 할 사람은 자유관람을 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성큼 후원 안으로 들어선다.
창덕궁 후원 관람은 위와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창덕궁은 우리에게 익숙한 부용지와 애련지 그리고 관람지와 옥류천 일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태종이 창덕궁을 창건할 당시 조성한 후원은 세조 대에 확장하였고, 성종 대에 건립된 창경궁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고 한다. 후원 권역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1610년(광해군 2)에 다시 조성되었다. 이후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 여러 왕들이 개수하고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창덕궁 후원의 특징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정자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4개의 골짜기에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영역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창덕궁 후원은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깊숙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북한산 자락 응봉으로 이어진다.
창덕궁 후원은 왕가의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곳이지만,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자연 풍광과 마주하며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였으며, 활쏘기 행사, 연못에서 낚시를 하거나 배를 띄워 꽃구경을 하고,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도 하였다. 또 왕실 어른인 대비나 종친, 신하를 위로하는 임금이 주관하는 잔치도 자주 열렸던 곳이다. 또한 왕은 이곳에 곡식을 심어 농사를 직접 체험하고, 왕비는 양잠을 직접 시행하는 친잠례(親蠶禮)를 열었다.
부용지(芙蓉池) 일원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중심 정원이다. 왕의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공개된 장소로, 300평(약 1000㎡)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주합루를 비롯한 여러 건물이 있다.
부용정(芙蓉亭)은 부용지 남쪽에 있는 정자로, ‘부용’은 ‘연꽃’을 의미한다. 원래는 1707년(숙종 33) 택수재(澤水齋)라는 이름의 건물을 지었는데, 1793년(정조 17)에 건물을 고쳐 짓고 이름을 부용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2012년 보물로 지정된 부용정 지붕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열십(十) 자 모양이다. 고요하면서 평화로워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주합루(宙合樓)는 부용지 북쪽에 1776년(정조 즉위)에 지은 2층 건물이다. 1층은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이고, 2층이 주합루이다. 주합루는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주합루가 창덕궁 후원 건물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주합루 정문인 어수문(魚水門). 물과 물고기, 즉 왕과 신하의 관계를 뜻하며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어수문은 왕의 출입문이고, 신하들은 어수문 옆 협문으로 출입하였다.
부용지 동쪽에 있는 영화당(暎花堂)은 왕이 직접 참관하여 과거시험을 행하였던 곳이다.
영화당의 ‘영화’는 ‘꽃과 어우러진다’라는 뜻으로, 현재 영화당 현판은 영조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영화당 건물 앞쪽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해 시계가 있다. 창덕궁 후원 부용지 부용정
창덕궁 후원 부용지 부용정
창덕궁 후원 부용정 일대
부용정 일대를 둘러보고 애련지로 걸음을 옮기려는 데,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사람들이 부용정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일도 유익하겠지만, 자유관람하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애련지(愛蓮池) 일대는 창덕궁 후원의 두 번째 정원이다. 연꽃을 사랑했던 숙종이 정자 이름을 애련정(愛蓮亭)이라 불러 연못 이름이 애련지가 되었단다.
사진으로 보면 연못이 크게 보이지만 연못은 아담하다. 기록에 의하면 1692년(숙종 18) 숙종이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섬과 정자는 흔적이 없고 지금은 연못 북쪽 끝에 정자만 남아있다.
원 창덕궁 후원 애련지
애련지 입구 불로문(不老門)을 지나면 왼편에 의두합(倚斗閤)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1827년(순조 27) 추존 문조(효명세자)가 애련지 부근에 의두합을 비롯하여 몇 개의 건물을 짓고
애련지와 구분하여 담장을 쌓았다고 한다.
현재 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의두합과 운경거 두 건물만 남아있다.
두 건물은 단청이 없고 규모도 작은 소박한 건물이지만, 석축으로 쌓은 화단이 매우 아름답다.
관람 순서에 의하면 애련지에서 관람지로 향해야 하지만 곧바로 애련지 옆에 있는 연경당으로 향했다.
연경당 앞 느티나무와 목련나무
연경당(演慶堂)은 효명 세자가 아버지 순조의 공덕을 칭송하는 의례를 위해 1827년(순조 27) 경에 창건한 건물이다.
사대부 살림집과 유사하게 사랑채 건물 앞에 설치된 단은 창덕궁 달빛기행을 위한 무대라고 한다.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 있다.
연경당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물이 바로 이 건물이다. 독특한 지붕과 회랑식 건축형태 때문이다.
집에 와서 이 글을 정리하면서 보니 바로 서재였다.
선향재(善香齋)는 벽돌로 측면 벽을 쌓았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했다고 한다.
연경당은 고종 때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연경당은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연경당 후문을 나서면 관람지로 이어지는 길이다. 아무도 없는 창덕궁 후원 숲 길을 홀로 걷는다. 마치 왕비나 공주가 된 듯한 기분이다.
관람지에서 처음 만나는 전각이다.
관람지(觀纜池) 일원은 창덕궁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 이 일대에 네모나 반달 모양의 둥글고 작은 연못들이 5개가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이후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을 보면서 5개의 연못을 상상해 본다.
존덕정(尊德亭)은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이다.
독특한 형태가 낯설어서인지 우리나라 정자 같지 않다. 존덕정은 이곳에 있는 정자 중 가장 오래된 건물(1644년/인조 22)이라고 한다.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纜亭)은 관람지 가장 아래쪽 연못가에 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연경당 후문에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이 건물이 관람지 서쪽 언덕에 있는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砭愚榭)이다.
폄우사는 원래 부속 채가 딸린 ‘ㄱ’ 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 채가 없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폄우사(砭愚榭) 현판의 위치다. 다른 전각과 달리 현판이 오른쪽에 달려있다.
관람지 정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승재정은 숲 속에 있어 가파른 숲길을 올라가야 한다.
승재정(勝在亭) 사모 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승재정(勝在亭)에서 내려다본 폄우사(砭愚榭)
창덕궁 후원 관람지 존덕정
시원스러운 물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이곳이 옥류천인가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니다.
창덕궁 후원 관람지 일대
옥류천(玉流川)을 보고 싶었으나 관람 목록에 빠져있다. 창덕궁 후원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는 옥류천.
인조의 친필로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글자도 직접 보고 싶고, 소요정(逍遙亭)과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청의정(淸漪亭) 등 정자도 보고 싶었지만 옥류천 일대는 비공개 장소인 것 같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는 데, 구절초와 산초 열매가 해맑은 웃음을 준다.
참 아기자기 아름답고 즐길 거리도 많은 곳이다. 초등학생 어머니가 한 말이 귓가에 생생하다.
"세상에 옛날 왕들은 정말 좋았겠다. 이렇게 좋은 곳을 만들어 놓고 혼자 즐겼다니..."
그러나 오늘 나는 그런 왕이 부럽지 않다. 자유관람을 한 탓에 호젓한 후궁 정원을 혼자 맘껏 누렸으니 말이다. 후원
창덕궁 후원의 가을
아쉬움에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관람지 일대,
해설사와 함께 관람하는 사람들이 관람지로 들어서고 있다.
소란스러운 그들을 뒤로하고
텅 빈 창덕궁 후원 길을 홀로 걷는다. 신선이 따로 없다^^
한참 걷다 커다란 고목을 마주한다. 가까이 다가가 안내 표지판을 보니 뽕 나무란다. 뽕나무가 이렇게까지 고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뽕나무 수령이 무려 400여 년이란다. 이 뽕나무는 높이 12m에 가슴 높이 줄기 둘레는 239.5㎝로 창덕궁 내에 있는 뽕나무 중 가장 크다고 한다. 200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뽕나무 정말 멋있다. 한참을 서서 보고 또 본다.
애련지를 지나다 단풍을 보니 조금 전 보다 더 짙어진 듯 아름답다.
혼자 천천히 걷다 보니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창덕궁 후원에는 고목들이 정말 많다. 이 회양목도 그중 하나다.
부용지도 다시 보고, 작은 편의점과 화장실에도 들린다.
부용정 앞 넓은 공간에 큰 고목들 주위를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바로 이 나무 때문이다. 처음에는 향나무인 줄 알았다.
주목(朱木)이다. 이렇게 살아있는 큰 주목을 본 적이 없다.
창덕궁 후원에는 고목들이 정말 많이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 숲을 둘러보길 바란다. 느티나무, 가운데 있는 나무는 이름을 모르겠다. 말채나무 등
필자는 해설사의 동선대로 관람을 하지 않아 향나무를 보지 못하였지만, 창덕궁에는 천연기념물인 향나무가 있다.
부용정과 주합루 건물도 다시 한번 둘러본다.
여유롭게 후원을 둘러보고 나서는 길, 외국인 노부부도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아빠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엄마의 발걸음도 가볍다.
창덕궁 후원 2시 예약한 관람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창덕궁에서 음식물 섭취는 금지, 이를 위반하면 벌금 15만 원이라는 말이 귀에 와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