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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Aug 11. 2022

인동초와 김대중 대통령 /인동초 꽃말과 전설

가야의 꽃 이야기 /


인동초 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떠오른다. 인동초(忍冬草)로 상징되던 김대중 대통령의 삶이 모진 겨울의 추위에도 그 가녀린 푸른 잎을 떨구지 않고 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 예쁜 꽃을 피우는 인동초와 너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 필자는 당산동에서 종로 2가까지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버스가 동교동을 지날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 사저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던 전경차를 보아야 했다. 서교동 하면 김대중 집이 있는 곳이 연상될 만큼 당시 뉴스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바로 동교동 김대중 대통령 집이었다.

그때 인동초가 어떤 식물인 지 알지 못했었다.


공교롭게도 동생이 운영하던 신촌 가게가 도로 확장으로 철거돼 무렵 김대중은 15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고, 인동초로 상징된 그의 인생이 재 조명되면서 인동초라는 이름이 내 뇌리에 각인되었다.


당시만 해도 인동초는 귀한 식물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산책하는 인왕산 곳곳에 있는 인동초를 보면서 DJ를 생각했었다.


내가 DJ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가 아마 1970년대 초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우리 학교가 있는 전주지방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정치를 알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공화당 사무차장이었던 모 국회의원 사무실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때가 1980년대 초로 전두환 대통령의 서슬이 시퍼럴 때였는데, 당시 내 상사였던 모 전직 국회의원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정치 구금 상태에 있던 때였다.


이런 이유로 우리 사무실에는 정치활동 규제자로 남아있던 전직 공화당 국회의원들이 모여 저녁 밥값 내기 화투를 치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었다. 물론 나중에 해금이 되어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해졌지만,


인왕산에서 인동초를 볼 때마다 고난의 DJ를 생각했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도 늘 DJ를 생각하면 인동초가 먼저 연상되었다.

그 인동초를 기르고 싶어 노란색과 분홍 인동초 묘목 두 그루를 화단에 심었었다.


인동초가 그렇게 잘 자라는 식물인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고향이 목포인 114호 언니의 부탁으로 114호 베란다 창 옆 화단에 바싹 붙여서 심었다. 봄이 되자 인동초 덩굴은 발코니를 따라 올라갔고 인동초 꽃이 피었을 때 114호 언니와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기뻐했다.

114호 언니 말에 의하면 밤이면

더욱 그윽해지는 인동초 향 때문에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다.


꽃이 피는 시간은 114호 언니도 나도 아파트 주민 모두가 행복했다.


그런데 꽃이 지고 가을이 되자 인동초 덩굴은 창문을 닫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 창문을 닫기 힘들 정도가 되자 114호 언니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이 인동초 좀 다른 곳으로 옮겨심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론 언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나는 속이 상했다. 그러나 어쩌랴 인동초 줄기 때문에 창문도 제대로 닫지 못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화단 어느 곳에 옮기더라도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 분명했다.


경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인동초 뿌리를 캐어 아파트 초입 높은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는 덩굴장미 옆에 인동초 두 그루를 옮겨 심었다. 철조망을 타고 인동초 덩굴이 무성해질 것을 상상하면서.


우리의 이런 처사가 서운했을까?


이듬해 봄 아무리 기다려도 새싹이 나지 않았다. 꽤 큰 인동초 두 그루는 그렇게 모두 죽고 말았다.


무리한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유기 동물이 있는 것처럼 식물에도 유기 식물이 있으며


예쁘다고 무작정 구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사실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만약 어떤 식물을 식구로 맞아들였으면 식물이 필요한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 세심히 살펴야 하며,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인동-초( 忍冬-草)


인동-초( 忍冬草)는 쌍떡잎식물 꼭두서니목 인동과의 반상록 덩굴식물로, 학명은 Lonicera japonica이다.


전국의 산야에 자생하는 반상록 활엽의 덩굴성 관목이다. 산과 숲 가장자리에서 잘 자라는데 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편으로 내공 해성도 강하다. 중부지방에서는 잎이 진다고 했지만,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서울 인왕산 인동초도 겨울에 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부 지방에서는 잎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겨울을 난다.


길이 약 5m 정도이며, 줄기는 오른쪽으로 길게 벋어 다른 물체를 감으면서 자라는 인동초는 위 사진에서처럼 붉은 갈색 가지의 속이 비어 있으며, 잎은 마주 달리고 긴 타원형이거나 넓은 바소꼴이다. 가장자리가 밋밋하지만 어린 대에 달린 잎은 깃처럼 갈라진다.

꽃은 5∼6월에 피고 연한 붉은색을 띤 흰색이지만 나중에 노란색으로 변하며, 2개씩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은은한 향기가 있다. 화관은 입술 모양이고 길이 3∼4cm이다. 화관 통은 끝에서 5개로 갈라져 뒤로 젖혀지고 겉에 털이 빽빽이 난다. 꽃 밑에는 잎처럼 생긴 포가 마주난다. 포는 타원 모양이거나 달걀 모양이고 길이 1∼2cm이다. 수술 5개, 암술 1개이다. 열매는 장과로서 둥글며 10∼11월에 검게 익는다.


추운 겨울이 와도 잎이 떨어지지 않아 겨울을 견딘다는 뜻으로 인동(忍冬)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인동초는 꽃에 꿀이 많아 밀원식물로 인기가 좋으며 한방에서는 잎과 줄기를 인동이라고 부르고, 꽃이 처음에 흰색으로 피었다가 노란색으로 변해 ‘금은화(金銀花)’라고 한다. 한국·일본·중국에 분포한다.

인동초 효능


인동초 꽃인 금은화는 해열과 해독은 물론 항균과 항바이러스 항진균, 항염증, 수렴, 이뇨작용을 하며 백혈구의 탐식 작용을 촉진시킨다. 인동초의 줄기와 잎을 말린 인동 등(忍冬藤) 은 소장의 경련을 풀어주고 고초간균, 포도상 구균의 생장을 억제시킨다. 꽃 차를 만들거나 술의 원료로 사용한다.


인동초 꽃 차를 만들려면 꽃봉오리 상부가 부풀어 오르고 꽃이 피기 전에 따는 것이 좋다.

인동초 번식

인동초 번식은 종자 번식과 휘묻이, 삽목 또는 뿌리 나누기로 한다.


씨앗 파종 시기는 3~4월 상순이 좋으며, 휘묻이는 봄이나 여름에 1년생 가지를 땅에 묻어주고 뿌리가 나면 1년 정도 길러 모주에서 분리해서 옮겨심으면 된다. 삽목(꺾꽂이) 방법은 6~8월 사이에 1~2년생 가지를 30cm 정도 잘라 밑부분 잎을 따내고 1~1.5m 두둑을 만들어서 30cm 간격으로 꺾꽂이를 하여 1~2년 후 본밭에 옮겨 심는다.

재배방법


인동초는 덩굴성 식물이므로 50cm 이상 자라면 감고 올라갈 울타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따듯하면서 건조하고 토심이 깊은 비옥한 사양토에서 잘 자라는 인동초에 거름을 줄 때는 퇴비와 계분을 2:1의 비율로 겉흙과 잘 섞어 주면 좋다. 이듬해 꽃을 많이 보기 위해서 늦가을이나 이른 봄 혹은 7월 하순 꽃이 진 직후나 9월 상순에 가지치기를 해주면 좋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인동 (국립 중앙과학관 - 식물 정보, 신재성, 유난희, 신현탁, 네이버 포토갤러리, 한국화훼농협)


[네이버 지식백과] 인동덩굴 [忍冬-] (두산백과 두피 디아, 두산백과)

인동초 전설


옛날 어느 마을에 사이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부는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다. 부부는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천지신명 님께 빌었고 그 기도가 효험이 있었는지 딸 쌍둥이를 낳게 되었다.


부부는 어렵게 얻은 이 보석 같은 귀한 딸이 금과 은처럼 예쁘다는 의미로 언니는 금화(金花)라고 불렀고, 동생을 은화(銀花)라고 불렀다. 금화와 은화는 착하고 아름답게 자랐고 우애도 각별했다.


세월이 흘러 금화와 은화는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서로 헤어지기 싫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하여 부부는 걱정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인 금화가 갑자기 열이 심하게 나더니 얼굴과 몸 전체가 검붉게 변하는 게 아닌가!


놀란 부부가 급히 의원을 불렀다. 그러나 의원은 금화의 열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마치고 가버렸다. 동생 은화가 언니 금화를 밤낮으로 간호했지만 안타깝게도 금화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금화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안 되어 동생 은화도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등진 금화와 똑같은 증세로 앓아눕고 말았다.


은화까지 잃을 줄 모른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한 부부를 보고 은화가 말했다.


“저희들은 비록 이렇게 죽지만 죽어서라도 열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가 되겠습니다”


은화는 그 말을 남기고 언니인 금화를 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듬해 봄이 되자 금화와 은화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새싹이 자라났다.

신기하게 이 식물에서 여름이 되자 노란색 꽃과 흰색 꽃이 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음 필 때는 분명히 흰색이었는데 점차 노란색으로 변했다. 얼마 뒤 마을에 열병이 돌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은화가 죽기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그 꽃을 달여 먹자 열병이 낫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 금화와 은화의 이름을 따서 그 꽃 이름을 ‘금은화’(金銀花)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동초 꽃의 꽃말은 '사랑의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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