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
초롱꽃은 오래전부터 만약 내가 꽃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키우고 싶었던 최상위 목록에 자리해있었다. 초롱과 꼭 닮은 다소곳한 모습과 이름까지도 정겨운 1980년 초 여름휴가차 떠났던 설악산 초입에서 만난 그 꽃을 말이다.
초롱꽃은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꽃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 초롱꽃을 2007년 봄 드디어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지인에게 부탁한 10여 가지 우리 꽃에 초롱꽃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화단 앞쪽에 심은 초롱꽃 잎은 흡사 취나물처럼 햇빛에 반짝이며 윤기가 흘렀고 사람들도 나물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던 초롱꽃이 첫 꽃을 피웠을 때,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초롱을 닮은 보랏빛이 감도는 어여쁜 그 꽃을 보고 또 보면서도 신비롭기만 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그 이듬해 생각지도 않게 초롱꽃 새싹이 화단 곳곳에 돋아났기 때문이었다. 여름이 되자 화단의 대부분을 초롱꽃이 점령했고 다른 꽃들은 초롱꽃의 기세에 눌려 자라지를 못했다. 하는 수없이 뽑아내야만 했다. 뽑아낸 초롱꽃 새싹은 평소 그 꽃을 탐내던 지인들에게 넘겨졌다. 우리 화단에는 한 포기만 남겨놓았다.
그런데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한 포기의 뿌리가 점점 옆의 땅을 점령해 군락을 이룬 것이다. 그때부터 나와 초롱꽃 전쟁이 시작되었다. 새 순이 돋아나는 대로 뽑고 또 뽑아도 작은 뿌리만 남아있어도 그 자리에서 새순이 돋는다. 나는 초롱꽃의 왕성한 번식력에 눈물을 머금고 화단에서 퇴출시켰다. 화단에 있는 초롱꽃을 모두 뽑아 지인에게 준 것이다. 서운한 마음도 없었다.
화단은 늘 새로운 꽃으로 넘쳐났고, 번식력이 왕성한 꽃들은 곧 화단에서 밀려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크고 번식이 잘 되는 식물이 환영받아야 마땅한데 그런 꽃을 사람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발 너만 자라줘, 다른 식구들을 감당하기에 내 꽃밭은 너무 작단다."
나는 초롱꽃과 접시꽃 금계국 등을 뽑을 때마다 그렇게 속으로 간절하게 빌었지만, 그들은 그 이듬해 더 많은 식솔을 대동해 나를 분노케 했다.
그렇게 우리 화단에서 초롱꽃은 사라졌고 몇 년이 지났다.
어제 오후, 점심을 먹고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초롱꽃을 만났다. 꽃도 깨끗하고 어여쁜 초롱꽃을 말이다. 참고로 우리 아파트 초롱꽃은 모두 우리 화단에 있던 한 포기에서 퍼져나간 것이다. 감격스럽고 미안하다.
초롱꽃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에 자생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양지 혹은 반그늘의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자란다. 다 자랐을 때 키는 40~100㎝이다. 위 사진에서처럼 흰색 또는 연 보라색의 꽃이 차례로 줄기 끝에 종 모양의 꽃이 아래로 향해 핀다. 어린순은 식용이라고 하는데 한 번도 먹어보지는 않았다.
번식은 가을에 포기나누기를 하거나, 9월에 채취한 씨앗을 화분이나 화단에 뿌린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아도 번식은 저절로 잘 된다. 자연 발아도 잘하고 뿌리가 옆으로 뻗어 새 순이 난다. 물관리도 필요 없고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 키우기 편해 오히려 천대받는 꽃이기도 하다.
초롱꽃의 꽃말은 '충실'과 '정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