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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피는 난초, 한란(寒蘭)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 겨울에 피는 난초, 한란(寒蘭)


꽃이 가장 귀해지는 계절, 많은 식물들이 숨을 낮추고 겨울잠에 들 무렵에도 조용히 꽃대를 올리는 난초가 있습니다. 바로 한란(寒蘭)입니다.


이름 그대로 찬 기운 속에서도 피어나는 난초, 그래서 더 깊고 더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 꽃입니다. 화려함 대신 침묵에 가까운 품격, 한란은 오래전부터 선비의 마음을 닮은 꽃으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 한란(寒蘭)의 기본 정보와 향기의 성격


한란은 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로, 학명은 Cymbidium kanran Makino (심비디움 칸란 마키노)입니다. 잎은 가늘고 길며 질기고 단정한 선을 이루고, 꽃대는 한겨울 중심부에서 조심스럽게 솟아오릅니다.


꽃빛은 연두, 갈황색, 자주빛 등 절제된 색조를 띠며, 무엇보다 향이 맑고 깊습니다. 다른 난초보다 은은하면서도 지속력이 긴 향이 특징인데, 이 향기 때문에 한란은 ‘향으로 먼저 피는 꽃’이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개화 시기는 대체로 12월에서 이듬해 2월 사이, 가장 차가운 계절에 가장 고요한 꽃을 보여줍니다.


❖ 제주 한란(寒蘭)의 자생지와 살아 있는 숲


한란이 집중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은 서귀포시 상효동 일대와 영천천(돈내코) 계곡 일부입니다. 제주 남쪽 산허리 약 700m 부근인 시오름과 선돌 사이 상록수림, 그리고 돈내코 계곡 입구 일대는 한란이 자생할 수 있는 분한계(分限界) 지대로, 한대와 난대 식생이 교차하는 매우 특수한 환경입니다. 이곳에 한란을 보존하는 일은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채취와 겨울 먹이를 구하러 내려온 야생동물로 인해 개체 수가 크게 줄었으나, 최근에는 ‘동자묘’라 불리는 어린 개체가 간혹 발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목초지·감귤원 조성 등 인위적 개발로 인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자생 한란은 극히 드문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한란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I급, 철책 보호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료 출처 / 제주한란이야기 - 제주특별자치도

한란은 한라산 남쪽 사면에서만 확인되는 매우 희귀한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종(種)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돈내코 한란 자생지는 온대기후대의 표식종이자 관상 가치가 매우 큰 희귀 식물 보호 지역이며, 깊은 골짜기와 폭포, 울창한 난대 상록수림이 어우러진 경관 가치 또한 매우 뛰어난 장소입니다.


특히 인근 계곡 한가운데 자리한 원앙폭포는 높이 약 5m의 폭포로,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날이면 제주 여인들이 여름철 물맞이를 하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자연환경 전체가 곧 한란을 키워낸 생태 무대인 셈입니다.

자료 출처 / 제주한란이야기 - 제주특별자치도


우리나라에서 한란은 특히 제주도를 대표하는 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 한란은 해발 300~800m 안팎의 곶자왈 숲과 오름 숲 가장자리, 바람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 습윤한 암반 지대에서 자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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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제주한란이야기- 제주특별자치도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고, 겨울에는 바람이 거칠지만 뿌리는 늘 촉촉한 곳, 그래서 제주 한란은 척박함과 풍요로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환경에서 더욱 단단한 생명력을 키워 왔습니다. 오늘날에는 무분별한 채취와 서식지 훼손으로 인해 보호종으로 관리되며, 야생 자생 한란은 쉽게 만날 수 없는 희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자료 출처 / 제주한란이야기 - 제주특별자치도

❖ 제주 한란(寒蘭)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


제주 한란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겨울 숲 깊은 곳에서 은은한 향이 바람을 타고 새어 나오면, 그것은 꽃이 아니라 ‘숲이 숨 쉬는 냄새’라고 여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 바다에 나간 연인을 기다리다 끝내 돌아오지 않자, 그 마음이 향기만 남기고 숲속 난초로 변했다는 슬픈 전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란은 기다림과 절개, 그리고 말없는 사랑의 상징으로 불려 왔습니다.('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한란이야기'에 이 내용이 기록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전설은 누군가의 창작일 지도 모릅니다. 참고 하시라 모셔왔다는 점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예술 속의 한란, 군자의 향기

예술 속에서 한란은 늘 매화·난초·국화·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한 축을 이루어 왔습니다. 특히 난초는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고, 그중에서도 겨울에 피는 한란은 절개와 고독의 완성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조선 후기의 대표적 문인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 역시 난초를 즐겨 그린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의 난초 그림에는 잎보다 향기가 먼저 떠오르는 듯한 여백이 살아 있으며, 형상보다 기품이 먼저 전해지는 선비의 꽃으로서 난초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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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제주한란이야기- 제주특별자치도

❖ 전해 내려오는 말 없는 덕목, 한란의 상징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서 한란은 늘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움’의 표본입니다. 향을 자랑하지 않고, 색으로 흥청거리지 않으며, 다만 제때에 자기 자리에 피어나는 꽃. 그래서 옛사람들은 한란을 두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향기를 내는 사람”에 비유했습니다. 말보다 인격이 먼저 전해지고, 성취보다 태도가 먼저 전해지는 삶, 그 모습이 한란의 생김새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 한란(寒蘭) 키우는 방법과 겨울 관리 요령

오늘날 한란은 실내에서도 비교적 관리가 가능한 난초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난초보다 저온을 좋아하고, 공기 순환과 습도를 동시에 요구하는 섬세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햇빛은 직사광선을 피해 밝은 반그늘이 좋고, 물은 겉흙이 마른 뒤 흠뻑 주되 과습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겨울철에는 실내 온도 10~18도 정도가 가장 안전하며, 난방기 바로 옆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통풍이 잘되면서도 찬바람이 직접 닿지 않는 창가 공간이 이상적인 자리입니다. 무엇보다 한란은 비료보다 바람과 빛, 그리고 주인의 기다림을 먼저 배우는 식물입니다. 서두르지 않아야 꽃을 보여주는 난초이기 때문입니다.


❖ 가장 조용한 계절에 가장 깊은 향기를 피우는 꽃

한란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겨울의 숲처럼, 눈 덮인 오름처럼, 숨소리조차 낮춘 계절의 결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는 오히려 봄꽃보다 더 오래 사람의 마음에 남습니다. 세상이 가장 조용할 때 가장 깊은 향기를 내는 꽃, 그래서 한란(寒蘭)은 지금도 여전히 ‘말 없는 위로’처럼 피어 있습니다.

정보 요약
· 한란(寒蘭)은 겨울에 피는 난초로 절개와 고요의 상징입니다.
· 제주도 곶자왈과 오름 숲이 대표적인 자생지입니다.
· 사군자(四君子) 예술 전통 속에서 군자의 덕을 상징해 왔습니다.
· 키울 때는 저온·통풍·과습 주의가 가장 중요합니다.


https://youtu.be/B5X33aSPsT4?si=fpp0vklOmDTdtg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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