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가을 햇살 아래 황금빛 왕관처럼 반짝이는 꽃. 붉은 망토 위에 금빛 왕관을 올린 듯한 금관화는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강렬한 색을 가졌습니다. 그 화려함뿐 아니라, 나비를 부르고 생태를 살리는 힘까지 가진 꽃. 꽃이 끝난 뒤에도 이야기를 남기는 금관화의 삶을 따라가 봅니다.
저는 붉은 왕관을 쓴 금관화와, 흰 왕관을 단 금관화를 둘 다 길러본 적이 있습니다. 화단 한쪽에서는 붉은 화관 위에 금빛 왕관이 불꽃처럼 피어올랐고, 또 다른 곳에서는 같은 구조를 지닌 꽃이지만 조용한 흰 왕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빛만 다를 뿐 같은 왕관의 형상인데도, 붉+노랑 금관화는 열정과 에너지를 품은 듯했고, 흰 금관화는 한 걸음 물러선 왕의 침묵처럼 고귀하고 차분했습니다.
정확한 학명은 Asclepias curassavica.
영명은 Blood Flower, Tropical Milkweed라 부르며 협죽도과(Apocynaceae)에 속합니다. 북미 남부에서 카리브해, 남아메리카 열대 지역에 걸쳐 분포하는 식물로 따뜻한 바람이 스치는 곳이라면 어디든 왕관을 얹고 피어날 준비를 마칩니다.
금관화라는 이름은 꽃 자체의 형태에서 나옵니다.
붉거나 주황빛 화관이 바깥으로 젖혀지고, 그 위에는 노란 부화관이 톡 솟아 있습니다. 마치 붉은 어깨 위에 금관(金冠)이 얹힌 임금처럼 보입니다. 속명 Asclepias는 그리스 신화 속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니, 왕관과 치유의 이미지가 한 꽃에 담긴 셈입니다.
꽃말은 ‘화려한 추억’, ‘나를 떠나지 마세요’.
유액에는 심장 글리코사이드 독성이 있어 섭취 시 구토나 어지러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독성은 바로 생존의 방패이며, 제왕나비 애벌레에게는 생명의 끈입니다.
금관화는 Monarch Butterfly의 기주식물, 즉 애벌레의 먹이입니다. 이 꽃 한 포트만으로도 정원에 나비가 날아드는 작은 생태의 문이 열립니다.
따뜻한 온도를 좋아하며(15~25℃), 풍부한 햇빛 아래서 꽃빛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성장기에는 흙이 마르기 전에 물을 충분히 주는 것이 좋습니다. 단, 해충 관리가 필수입니다. 특히 박주가리진딧물(Aphis nerii)의 공격이 잦아 잎 뒷면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19세기 남미 식물 도감과 보태니컬 아트에서 금관화는 종종 색 대비가 강한 도상으로 등장했습니다. 작은 꽃임에도 중심부의 금빛 구조가 뚜렷하여, 그림 속에서 화면의 중심을 자연스럽게 잡아냈습니다.
작으면서도 강렬한 형태. 한 송이로도 정물화의 균형을 완성할 수 있는 꽃이 바로 금관화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금관화 꽃이 모두 진 화분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씨앗 주머니가 익고 갈라지며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 저는 조심스레 그것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얇은 흰 깃털이 달린 씨앗들이 차가운 겨울 바람에 올라탔습니다.
하나, 둘, 셋…
아직 미련을 남긴 듯, 그러나 결국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처럼 씨앗은 가볍게 떠올라 멀리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눈앞에서 흩어지는 그 장면을 기록하기 위해 아침부터 카메라를 들고 3시간 넘게 씨앗을 따라다니며 헤맸습니다. 날아가 버린 생명의 조각들을, 겨울바람 끝에서 오래도록 바라보며 한 송이 꽃이 남기는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다시 배웠습니다.
✦ 요약
‣ 금관화 Asclepias curassavica는 붉은 화관 위에 금빛 왕관을 얹은 꽃
‣ 제왕나비의 기주식물, 생태적 가치가 높음
‣ 독성 유액 존재, 진딧물 방제 필요
‣ 씨앗은 겨울바람에 깃털처럼 날아 확산됨
‣ 꽃이 진 뒤에도 아름다움은 계속된다
https://youtu.be/KfB8RNqczJQ?si=ix6PO4D4P8Cb0g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