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릐 Mar 13. 2024

치유하는 태양 광선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90일 차, 20200615

독일엔 아직도 코로나 확진자가 100명을 넘고 있는데 분위기는 이미 많이 일반화된 듯하다. 특히나 외출 시 내 마음자세가 그러하다. 예전만큼 주의를 깊게 기울이지 않고 마스크도 조금 허술하게 하며 길을 걷거나 외부에서 활동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도 진행되는 재택근무 때문인지 가슴 한편 답답한 마음은 아직도 자리한다.


친한 독일 친구 한 명이 도시 근교에 작은 정원을 갖고 있다.

독일 사람들은 도시 근처 혹은 안에 작은 정원 군락을 형성하여 지내는 문화가 있는 듯한데, 내 친구도 그러한 정원 단지의 일부를 분양받았다.

왠지 모를 답답한 마음 달래고자 오늘은 도시 외곽으로 나가 친구의 정원에 방문하러 간다.

친구가 한국식 배추를 심어놨는데 배추가 많이 자라서 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사실 이 친구는 나보다 한국 음식을 잘하고 많이 해봤다.

혼자 이런저런 한국음식, 예를 들어 닭갈비, 불고기, 나물 종류뿐만 아니라 김치, 백김치, 심지어는 떡볶이용 떡도 직접 뽑아서 먹는 친구다.

그렇게 한국음식을 만들 때면 나를 초대해서 본인이 만든 음식이 실제 한국 음식 맛이랑 비슷한지 확인한다.

농장 일을 조금 돕는다. 딸기를 수확하고, 나무도 썰고, 흙도 퍼다 나르고.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피부를 위해 과감하게 웃통을 벗고 정원에서 햇빛도 쬔다. 태양빛에 달궈진 몸이 누워만 있어도 땀을 낸다. 일광욕이다.

그간 많이 창백해진 피부가, 남들이 보면 아직도 검어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보이는 한없이 창백하고 맥없는 피부가 오랜만에 빛을 받는다.


치유하는 태양 광선이 없애지 못하는 바이러스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북경에서는 이미 코로나 변종으로 2차 감염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몇 달 후면 머지않아 한국땅에도, 그리고 이 독일 땅에도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게 될까.


매년 여름이면 당연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 태양 빛이, 작년에는 하루 종일 사무실 안에 박혀있느라 너무나도 귀했고,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또 다른 의미로 귀하게 느껴진다.

언제 만끽할 수 있는 정원에서의 여유가 될지 모르기에, 잡생각 다 널려놓고 태양빛에 말려버린다.


독일 밭에서 재배한 배추로 만든 김치 한 통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기차 창가에 비췬 내 얼굴이 거무스르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죄인, 당신에게 오늘 하루의 삶을 선고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