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릐 Mar 20. 2024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을 지키는 일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96일 차, 20200621

잠을 그렇게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더니 밤늦게까지 이야기하고 일어난 일요일 아침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건강한 대화는 마음의 양약이라 했던가. 잠에 허덕이는 몸을 가벼운 마음이 일으켜 세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독일에 강하게 휘몰아치던 시절 화면을 통해서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친구들이 있었다.

한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가 연락이 두절되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얼굴을 보고 지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한 규제가 조금 완화된 이후 조심스럽게 방문을 계획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봤지만 영상으로 봐왔기에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느낌도 들었지만 반가움을 가눌 바 몰랐다.

외롭고 힘들었던 마음 서로 조금씩 비추어내며 기댈 수 있는 소망을 함께 바라보며 지내온 지난 몇 달이 생각난다.


잊고 지냈던 가치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곤 한다.

만남의 중요성. 사람 간의 거리. 소통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을 지키는 일.


친구 동네 주변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내가 살던 동네와 비슷한 공원 같으면서도 그 공원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 차있다.

그 공원이 더욱이나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기운으로 내 눈앞에 필터를 씌웠기 때문일 것이다.


약 2년 전 그 도시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마음속에 문제가 한가득 했던 그 시절.

당시 밝게 내리쬐는 아침 해가 깨우는 나날들은 명치 한가운데 씹지 않고 삼킨 닭가슴살이 밤새 내려가지 않고 얹혀 있는 느낌으로 시작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도시가 나에게 주는 인상은 잔인함. 시궁창을 향해 떨어지는 나의 삶에 비해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도시가 꼴 보기 싫을 정도로 얄밉더라.

내 마음 모르고 아름답게 부서지는 햇살과 햇살 아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이를 둘러싼 아름다운 시냇물.

그 가운데 광대처럼 태연한 척하고 있는 나의 모습.


아름다운 공원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서 다행이다. 나도 어찌할 바 모르는 내 마음,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 마음을 바꿔치기라도 한 듯,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참 다행이다.

아직 북쪽 하늘 한 편이 밝게 빛나는 저녁 시간. 천천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 금빛 불빛 이끌림 따라서.

매거진의 이전글 언젠가 똥으로 빠져나가기 마련이기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