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호초 Dec 04. 2022

과도한 불안을 경계하는 법 (1)

조건문은 인과관계만 나타낼까 (1)

※이 글을 읽고 나면...
1. 'A면 B다' 라는 말이 나오는 기사를 읽고 나서, "나 A인데 어떡하지?" 같이 과도한 불안이 담긴 댓글도 남기지 않게 될 수 있다



뉴스를 읽다 보면 ‘A면 B다’라는 문구가 자주 보인다. 특히 새로운 연구 결과를 보도하는 뉴스라면 빠짐없이 이 표현이 등장한다. 영어로는 ‘If(만약)…then(그렇다면)…’이라 번역할 수 있는 이 표현을 ‘조건문(Conditional)’이라 한다. ‘담뱃값이 오르면 흡연율이 낮아진다’ ‘담배를 피면 폐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 등이 그 예시다.



조건문이 사용된 기사엔 늘 이런 류의 댓글이 달린다. 첫째는 A가 B의 원인이라고 해석한 댓글이다. 다음과 같은 댓글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담배 덜 피우게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


‘담뱃값이 오르면 흡연율이 낮아진다’는 문장의 뜻이 ‘높은 담뱃값이 흡연율을 낮추는 원인’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둘째는 A와 B가 사실 별 상관 없단 댓글이다. ‘내가 아는 아무개는 한평생을 골초로 살았는데 폐암이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던 다른 아무개가 폐암 환자가 됐다. 흡연 여부와 관계없이 폐암이 생길 사람은 생기고 안 생길 사람은 안 생긴다’. 담배를 피워도 폐암이 생기지 않는 ‘반례’가 있으니 ‘담배를 피면 폐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말은 거짓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둘 다 조건문이 어떤 경우에 쓰이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오해다. 사람들은 ‘A면 B다’ 라는 말을 인과관계로 해석할 때가 많지만, 사실 조건문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모두를 나타내는 데 쓰일 수 있다. 또한, A여도 B가 아닌 반례가 존재하면 ‘A면 B’다 라는 명제가 거짓이 될 것 같지만, 조건문을 ‘A면 B가 일어날 경향성이 높아진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관점에선 반례 몇 개의 존재만으로 조건문이 거짓이라 할 수 없다. 인간에겐 슬프면 눈물을 흘리는 경향이 있으나, 슬퍼도 울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수학이나 철학에서의 형식논리라면 몰라도 과학엔 100%가 없다. 과학적 실험 결과를 나타낸 조건문이라면 경향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해석하는 게 맞다. 



조건문의 네 가지 쓰임


‘A면 B다’라는 언어적 형식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 용법으로 쓰일 수 있다. 첫째가 직설법적 조건문(indicative conditional)이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보통은 A가 참이라면 B도 덤으로 참이라는 주장을 전달한다. 가령 '어떤 도형이 파란색이면 그 도형은 네모다'라고 말함으로써 임의의 도형의 색이 파랑일 경우, 그 도형은 네모이며 세모나 동그라미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여러 도형을 두고 봤을 때 '파란색'과 '네모'라는 특성이 항상 함께 관찰된단 것이다. 


둘째는 가정법적 조건문(subjunctive conditional)이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상황이 일어났을 때 어떤 결과가 뒤따를지 제시하는 문장이다. 네가 만약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오후 세시부터 행복하기 시작할 거야(If you came at four o'clock in the afternoon, then at three o'clock I shall begin to be happy) 라는 어린왕자 속 대사가 여기 해당한다. 이때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과 반대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할 경우, 이는 ‘반사실적 조건문(Counterfactual Conditional)’이라고 따로 부르는 용어가 있다. 가령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지 않았더라면 조선이 건국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문장이 반사실적 조건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정몽주는 선죽교를 지나다 이방원의 부하에게 피살됐기 때문이다. 


셋째는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말(causation statement)이다. ‘늦잠자면 지각한다’가 그 예다. 늦잠을 잔 것이 지각이란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하는 문장이다. 마지막으로, ‘A면 B다’의 B부분에 부정의 표현이 올 경우, A인 것이 B이지 못하게 하는(prevent) 한 요인이라는 뜻을 조건문을 통해 나타낼 수 있다. 가령, ‘키가 크면 밖에 나갈 수 없다’는 문장은 키가 큰 것이 밖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라는 내용을 전달한다. 이 분류를 참고한 논문(Interpretations of Conditional and Causal Statements) 에는 ‘Prevention Statement’라고 되어 있다. 영어사전만 보고 대충 번역해보자면 ‘방지/예방을 선언하는 말’ 정도 될 것 같다. 


(이어짐)

이전 06화 '상식이 안 통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