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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Jul 03. 2023

'상식이 안 통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는 기사

※이 글을 읽고 나면...
1. 보편적 상식과 다른 결론이 나온 연구 결과 하나만 보고, '지금까지 알던 게 다 틀렸다'고 주장하는 비상식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앞서 많은 뉴스 기사에서 경향성('~할 가능성이 크다)을 사실('~다')처럼 보도한다는 말을 했다. 사실 기사에서 뭉개는 게 '독신 남성은 단명할 가능성이 다른 집단에 비해 큰 편이다' 같이 한 집단의 성질을 나타내는 경향성만은 아니다. 보도의 희생양이 된 또다른 경향성이 하나 있다. 이번엔 좀더 거시적인 경향성, 바로 연구 결과의 경향성이다.


하나의 소재에 대해 하나의 연구 결과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결이 전혀 다른 연구 결과들이 뒤섞여 존재하기도 한다. 그중엔 결과가 상반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예컨대, 나트륨 섭취량과 사망률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 결과는 많다. 이중엔 나트륨 섭취량과 사망률 간 양의 상관관계 (나트륨 섭취량이 많을수록 사망률도 높다)가 성립한다는 결론을 내놓은 논문이 있는가 하면, 둘 사이에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논문도 있다. '프론티어스 인 뉴트리션(Frontiers in Nutrition)'이란 저널에 실린 논문이 대표적이다. 

파란표시: 나트륨(sodium) 섭취량이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률(all-cause mortality)과 관련 없다(unassociated)


여기서 해야 하는 생각은 크게 세 가지다. '그럼 둘 중에 뭘 믿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첫째. '단일 연구 결과를 보도하는 내용은 그리 믿음직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둘째.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보도가 많이 보인다'는 자각이 셋째다. 




새로운 게 꼭 진실일까?


뉴스는 무엇이든 새로운 걸 보도한다. 그래서 기존 연구 결과들과 상반되는 연구 결과는 좋은 보도거리가 된다. 특히 우리의 보편적 상식과 결을 달리하는 연구 결과라면 더더욱. '나트륨 섭취량과 사망률이 관련 없다' '세로토닌 부족과 우울증이 관련 없다' '대장내시경을 받아도 대장암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낮아지지 않는다' 같은 연구 결과들이 그 예다.

짜게 먹으면 빨리 죽는다?…“사망에 끼치는 영향 없다”(농민신문)
낮은 세로토닌-우울증 상관성 없어…항우울제 신뢰도↓ (메디컬타임즈)
대장내시경의 '배신'...암 조기선별 위한 검사, 효과 '글쎄' (동아사이언스)


우리는 짜게 먹으면 사망 위험이 커지는, 세로토닌 부족이 우울증의 원인인, 대장내시경이 대장암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수단인 세상에서 살아왔다. 진짜 사실관계가 어떻든 간에 대중의 의식엔 이런 사실들이 새겨져 있었다. 뉴스가 보도하는 내용이 진짜라면 우리가 알던 세상은 뒤집어진다. 그래서 이런 기사의 댓글란엔 어김없이 이런 사람들이 있다. '짜게 먹어도 안 죽는다고?' '세로토닌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고?' '대장내시경이 별 소용 없다고?'  더 나아가 이런 얼리어답터들도 있다. '짜게 먹어도 되겠네'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안 먹어도 되겠네' '대장내시경 받을 필요 없겠네' 


문제는 연구 결과 하나만 보고 믿음을 바꾸는 게 본인에게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말 맘대로 짜게 먹어도 괜찮은 걸까? 나트륨 섭취량과 사망률이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나트륨 과다 섭취가 고혈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세로토닌 부족과 우울증이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도 여전히 많다. 국내 유수의 의학 전문가들은 여전히 대장암 예방을 위해 대장내시경을 받으라고 권한다. 학계의 거시적 흐름에서 이탈해있는 연구 결과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통계 분석에 어떤 데이터를 활용했느냐에 따라 분석 결과가 판이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트륨 섭취량이 사망률과 관련 없다는 논문의 경우, 논문에서 분석에 활용한 데이터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국인은 짜게 먹는 편(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 3289mg)이다. 그러나 논문에서 분석한 사람들은 한국인 치고 덜 짜게 먹는 사람들(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 2.5g)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일일 나트륨 섭취 권고량 2g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나트륨 섭취량이 그리 많지 않은 집단을 분석에 활용했으니, 나트륨 섭취량이 사망률과 갖는 상관관계가 잘 관찰되지 않을 수밖에 없단 것이다.


 



개별 논문 < 학계의 합의


개별 연구 결과보다 중요한 건,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에 학계가 도달한 '컨센서스(잠정적 합의)'다. 하나의 주제에 관해 여러 논문이 쏟아지다 보면 유독 결이 다른 논문이 몇개씩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던 세상이 연구 결과 하나에 뒤엎어지는 경우는 확률적으로 극히 드물다. 상반된 연구 결과가 있는지, 현재로서 학계 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한 결론은 무엇인지, 유독 '튀는' 연구 결과가 분석에 사용한 데이터가 편향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런 과정 없이 믿음에 반하는 단일 연구 결과 하나만으로 믿음 체계를 바꾸는 건 모험이다. 연구 결과 하나에 갈대같이 흔들리는 건 본인에게도, 사회에도 좋을 게 없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우울증-세로토닌 연구가 보도된 후, 몇몇 언론사에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기사를 내보냈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포함한 항우울제의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해석하는 건 비약이다' '이번 연구 결과 하나로 SSRI의 신뢰도가 떨어지진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우울증: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에 대한 연구 논란...항우울제 효과 없다? (BBC 코리아)
우울증, 약에만 기대선 안 되는 이유 (헬스조선)


기사에 거짓말이 없어도 읽는 사람은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다. 이런 류의 기사 대부분은 '~이런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말로 시작해, 연구 방식을 요약해 전달하는 태도를 취한다. 간혹 본문 끝에 ▲연구의 한계점(ex. 이번 연구 결과는 표본수가 충분히 크지 않아, 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오길 두고봐야 한다) ▲상반되는 다른 연구 결과의 존재 등을 언급하는 기사도 있긴 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런 '바깥 정보' 대신 그 논문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만 나열된다. 그럼 읽는 사람 입장에선 상반된 결과가 나온 다른 실험 논문이 있다든가, 학계에서 전문가 대부분이 받아들이는 정설이 해당 논문의 주장과 다를 수 있단 생각을 하기 어렵다. 


여기서부턴 개인적인 생각이다. 새로 발표되는 논문들 중 특이하고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을 골라 단발성으로 보도하는 게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읽고 나서 남는 게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학계 정설과 맞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에 논문 내용을 삶에 적용하는 건 섣부르다. 재미는 있어도 교훈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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