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으면... 1. 헤드라인엔 기사의 내용이 왜곡돼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깨닫고, 헤드라인만 읽은 사람끼리 댓글창에서 사소한 말다툼을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2. 내가 맞다고 해서, 나랑 싸우는 상대방이 틀리진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때론 정반대인 것 같아 보이는 말들이 동시에 맞을 때가 있다.
내가 오래 산 편은 아니지만, 세상일이 '아니다' '그렇다'는 말로 단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한 분야를 깊이 아는 전문가일수록 확답을 잘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보다는 '~할 가능성이 있다' '~한 편이다' '~할 수 있다'는 말을 사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지저분해 보인다. '~다'는 어미가 한 글자지만, '~할 수 있다'는 4글자, '~할 가능성이 있다'는 7글자다. 어미 길이가 긴데다, 무엇이든 확실한 걸 선호하는 인간 특성에도 맞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다'라고 표현된 확실한 정보지, '~할 가능성이 있다'는 애매한 정보가 아니다.
그래서 '정확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전달하길 표방하는 미디어에선 '~할 가능성이 있다' '~한 편이다' '~할 수 있다' '~는 경향이 있다'는 말 대신 '~다'는 말을 선호한다.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다. 표현이 바뀌면서 소실되는 의미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단정한 말은 경향성의 진짜 의미를 지운다
미디어에서 '~다'라는 말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된다. 하나는 (1)OX를 명확히 따질 수 있는 사실을 전달할 때, 다른 하나는 (2)앞에 '대개' '보통' '대부분'이란 말이 생략된 형태다. 거시적 경향성이나 상관관계를 포착한 실험·통계 결과를 일반화해 전달할 때 사용된다.
하이브가 새 걸그룹을 론칭한다 (하입비스트)
하이브가 새로운 걸그룹을 론칭한다. 새로운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이자, 아이돌 연습생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R U NEXT?>(이하 <아 유 넥스트?>)의 촬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엔하이픈을 배출한 <아이랜드>에 이은 하이브의 두 번째 자체 제작 아이돌 서바이벌 예능인 셈이다.
이렇게 O, X로 명확히 구분되는 사실을 전달할 땐 '~다'를 쓰는 게 맞다. 론칭했거나 안 했거나 둘 중 하나지, 론칭했으면서 론칭하지 않은 상황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적,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전달할 땐 말이 달라진다.
“연금도 못 받고 죽다니”...독신남이 독신녀보다 빨리 죽는 이유 [한중일 톺아보기] (매일경제)
독신, 혼자인 것도 서러운데 빨리 죽는다…왜? (아시아경제)
첫 번째 기사는 일본 통계자료를 보도하는 기사다. 각 집단의 절반이 죽는 나잇값을 여러 집단끼리 비교했더니, 미혼 남성의 절반이 죽는 나잇값이 다른 집단(기혼 남녀, 미혼 여성)의 절반이 죽는 나잇값보다 작았단 것이다. 미혼 남성이 다른 인구 집단보다 일찍 죽는 경향성이 있단 뜻이다. 아래는 본문 일부.
최근 일본에서 미혼 남성의 수명만 기혼 남녀는 물론 미혼 여성 등 다른 집단들보다 유독 짧다는 통계가 나와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혼 남성의 사망연령 중앙값(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해당하는 값)은 67.2세였습니다. 사망연령 중앙값은 그 연령에서 표본의 50%가 사망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미혼 남성의 경우 절반이 67세면 죽었다는 뜻이죠.
두 번째 기사는 미국 학자의 연구 결과를 보도하고 있다. 독신 남성이 다른 인구 집단보다 사고, 질병 등으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았다는 내용이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독신 남성이 단명하는 경향성을 전달하는 기사다. 아래는 본문 일부.
그 결과 독신 남성의 경우 사고나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을 확률이 결혼한 남성에 비해 32%, 독신 여성은 결혼한 여성에 비해 23%가 높았으며 독신 남성은 기혼자보다 8~17년, 독신 여성은 7~15년가량 수명이 단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를 전달할 때 '~다'를 사용하는 건 위험하다.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 내용을 대충 읽는 경우가 많은데, 제목만 봐선 혼자 살면 빨리 죽는 게 무슨 법칙처럼 여겨진다. 오래 살려면 결혼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첫 번째 기사엔 67세 이후에도 살아남은 절반의 미혼 남성이, 두 번째 기사에선 사고나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지 않은 독신 남성들이 숨어 있다. 게다가 이들 중 일부는 대부분 기혼남녀나 미혼 여성보다 오래 살 수도 있다.
'~다' 라고 전달된 내용은 예외 없는 법칙처럼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사실 경향성은 이보다 느슨한 개념이다. 거시적으로는 미혼남성이 단명하는 경향성이 있대도, 미혼남성 개개인의 삶으로 들어가 보면 오래도록 살아남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서다. 경향성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하는 때가 많다'와 같은 말로 전달하면 이런 예외가 언어적으로 잘 보존된다.'~할 가능성이 크다'는 건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는 뜻을, '~하는 때가 많다'는 건 '~하지 않을 때도 (그 수가 비교적 적을지언정) 있긴 하다'는 뜻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경향성을 '~다'로 표기한 기사엔 보통 '나도 이런데ㅠㅠ 어떡하지?' 류의 걱정하는 댓글이 달린다. 진심으로 걱정돼서 댓글을 단 건지, 아니면 농담조로 우는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할 필요 없는 걱정이다. 당신이 바로 그 '예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장을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물론 경향성을 전달할 때 '~다'를 사용하는 게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미혼 남성이 단명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말을 '미혼 남성은 단명한다' '미혼 남성은 단명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로 줄여야 한다면 당연히 '미혼 남성은 단명한다' 쪽이 원래 문장과 의미상 훨씬 가깝다. 이 경우 '미혼남성은 단명한다'는 말을 아주 엄격하게 해석해서 '미혼남성은 100이면 100 단명한다'고 받아들이지 말고, '미혼 남성의 단명 가능성이 다른 집단에 비해 크단 것을 약간의 강조하는, 다소 문학적인 말'로 인식하면 된다. '(조금 비약해서 말하자면) 미혼 남성은 단명한다' 정도가 적당하다.
틀린 표현이 아니라면 경향성을 '~다'로 전달해도 문제없는 거 아닌가? 사람들이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려 노력하는 세계에선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다. '독신, 혼자인 것도 서러운데 빨리 죽는다…왜?' 라는 헤드라인만 보고 '나 독신인데 빨리 죽겠네' 같은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다.
게다가 개인의 결혼을 장려하는 주장의 근거로 '독신 남성은 빨리 죽는다'라는 문장이 언급되면...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이런 글엔 으레 '내 지인 중 독신 남성이 있는데 오히려 건강하게 더 잘 산다. 반면에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은 배우자 스트레스 때문에 골골거린다'며 주장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둘의 주장은 일견 정반대지만, 주장을 뒷받침하려 각자가 제시한 근거는 양립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둘 다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란 뜻이다. 싸움에 참여한 이들은 '상대방이 틀렸고 내가 맞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말이다. 이는 (앞서 계속 말했듯) 독신 남성이 빨리 죽는 경향성을 파헤쳐보면, 그 와중에도 삶의 질이 무척 높은 독신 남성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개인의 삶의 방향이 꼭 거시적 경향성에 따라 결정되진 않는다. 위험 부담이 있을지언정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택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