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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Dec 05. 2022

과도한 불안을 경계하는 법 (2)

조건문은 인과관계만 나타낼까 (2)

※이 글을 읽고 나면...
1. 'A면 B다' 라는 말이 나오는 기사를 읽고 나서,  "나 A인데 어떡하지?" 같이 과도한 불안이 담긴 댓글도 남기지 않게 될 수 있다



(지난 글에 이어서)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분명 조건문의 용법이 맞다. 그러나 ‘A면 B다’라는 조건문을 무조건 A가 B를 유발한다/야기한다는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건 잘못됐다. 조건문은 ‘직설법적 조건문’에서처럼 단순히 A 성질/현상이 관찰되는 대상에서 B 성질/현상도 '함께 관찰된다'고 주장할 때도 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면...다'라는 표현은 상관관계를 전달할 때도 쓰인다. '~면...다'를 헤드라인에 달고 있는 연구 보도 기사가 참고한 논문 대부분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노란색)를 다루고 있다. 어떤 것이 무엇의 원인이라고 밝혀내는 건 아주 어려운 작업이고, 단순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것보다 더 대단하다. 인과관계를 밝히는 논문보다 상관관계를 다루는 논문의 수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많은 연구자가 논문의 결론(conclusion) 부분에서 이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일 수 있단 여지를 남기려고 한다. 연구자 본인이 A와 B 사이를 매개하는 나름의 인과적인 가설을 제시하거나, 이미 제시돼 있는 인과적 가설을 몇가지 언급하는 식이다. 그러나 속된 말로 입만 좀 잘 털면 A가 B를 유발한다는 그럴듯한 인과적 고리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인과가 일어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있다고 해서 그 논문이 인과관계를 입증했다고 볼 순 없다. 


물론, '~면...다'를 이용해 상관관계를 전달하는 문장이 조건문에 주로 쓰이는 언어적 형식(~면...다)만 차용한 것인지, 엄밀한 의미에서의 조건문에 해당하기까지 하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로 나아갈 필요조차 없이, '~면...다'가 쓰였다고 해서 무조건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문장이 아니라는 건 이미 명백하다. '~면...다'라는 조건문의 형식이 상관관계를 전달하는 데 관습적으로 쓰인지 오래여서다. 이를 간과해 상관관계를 전달하는 문장을 인과관계를 전달하는 조건문으로 오해하게 되면, 문장을 쓴 사람이 의도했던 바와 문장을 읽은 사람이 이해한 바가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엄연히 다르다. 무게에 빗대자면 상관관계보다 인과관계가 더 ‘무겁다’. A 있는 데 B가 있고, A가 변화할 때마다 B도 변화하는 게 관찰된다면 A와 B가 어떻게든 관련있다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때 A와 B사이에 성립하는 관계를 상관관계라 한다. 그러나 A와 B가 인과관계에 있다고 하려면 A와 B가 상관관계에 있는 걸 넘어 A가 B를 유발한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과관계에 있는 대상들은 상관관계를 충족하지만, 상관관계에 있는 모든 대상들이 인과관계에 있진 않다. 


악몽 빈도와 치매 발생 위험 사이가 대표적이다. 영국 버밍엄대학 연구팀은 매주 악몽을 꾸는 노인 집단을 그렇지 않은 노인 집단과 비교했을 때, 전자에서 치매 발생 비율이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는 “악몽 잦으면 치매 위험↑” “악몽 자주 꾸면 치매 위험 높아진다”와 같은 제목을 달고 보도됐다. 모두 조건문 형태다. 


‘악몽 잦으면 치매 발생 위험이 높다’는 조건문을 ‘악몽을 자주 꾸는 것이 치매를 유발한다’ 또는 ‘악몽을 자주 꿔서 치매 위험이 높아졌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이 연구 결과는 악몽을 많이 꾸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치매 발생률이 높았다는 사실로부터 ‘잦은 악몽’이 치매를 조기 발견하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의를 도출한다(빨간줄). 치매가 생기지 않으려면 악몽을 꾸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 

논문 discussion의 맨 마지막 문단


정리

1) 의학 또는 과학 기사를 보도할 때 사용하는 '~면...다' 라는 말은 대부분 상관관계를 전달한다. 이는 인과관계를 밝히는 게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보다 어려워서 대부분의 연구 논문이 상관관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2) 뉴스 헤드라인이나 본문에서 '~면...다'를 봤다면 ~가 ...의 원인이라 해석(인과관계)하지 말고, 일단은 ~와 ... 사이에 어떤 비례 관계나 반비례 관계가 있단 말(상관관계)이구나...라고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게 안전하다.

3) 결론적으로 '~면...다'가 상관관계인지, 인과관계인지는 기사 본문을 읽어봐야 알 수 있다. (간혹 인과관계인지 상관관계인지 본문에 명시돼있지 않다면 논문 원문을 찾아봐야 알 수 있다)

4) 이를 지키지 않아서 '악몽 자주 꾸면 치매 발생 위험 높아진다'를 '잦은 악몽이 치매 원인'이라 해석하게 되면,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악몽을 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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