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나면... 1. 'A면 B다' 라는 말이 나오는 기사를 읽고 나서, "나는 A 했는데 왜 B 안 하냐? 기사가 엉터리네" 라는 공격적 댓글을 달지 않게 될 수 있다
(지난 글에 이어서)
'조건문 제대로 읽기 (1)'이라는 제목을 붙인 글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는 말이 기사에 언급되면, 꼭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린다.
'내가 아는 아무개는 한평생을 골초로 살았는데 폐암이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던 다른 아무개가 폐암 환자가 됐다. 고로 흡연 여부와 관계없이 폐암이 생길 사람은 생기고, 안 생길 사람은 안 생긴다'
사람은 자신이 관찰한 현상을 토대로 믿음을 형성한다.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믿음에 정확히 들어맞는 관찰 사례가 있으면 믿음이 더 공고해지는 것이고, 믿음과 반대되는 관찰 결과가 계속 누적되면 어느 순간 그 믿음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댓글을 단 사람은 (1)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폐암이 생긴 아무개 (2)평생 골초였지만 폐암이 생기지 않고 건강한 아무개를 관찰한 결과를 가지고 '담배를 피우면 폐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는 명제를 반박하고 있다.
앞서 '~면...다'라는 언어적 형식은 인과관계뿐 아니라 상관관계도 전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댓글이 일리있는지 따지기 전에, '담배를 피우면 폐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 또는 '담배를 피우면 폐암이 생긴다'는 문장이 흡연-폐암 간의 상관관계를 전달하는 것인지, 더 나아가 인과관계를 전달하는 것인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흡연-폐암 간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게 현재 의학계 중론이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담배가 폐암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분홍색)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2015년 대한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 담배와 폐암 소송 관련 특별위원회가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에 대한 <대한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 담배와 폐암 소송 관련 특별위원회>의 의견'이라는 문서에 "의학계에서는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은 확립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라는 말을 명시하기도 했다.
(좌)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 홈페이지 (우)대한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 문서
흡연의 폐암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면, 그것도 가장 큰 원인이라면, 모든 또는 거의 모든 폐암 환자가 흡연자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1)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폐암이 생긴 아무개와 (2)평생 골초였지만 폐암이 생기지 않고 건강한 아무개의 사례가 있지 않나. 그리고 이런 사례가 내 주변뿐 아니라 의외로 여기저기 많지 않나. 그렇다면 이들은 흡연-담배 사이에 성립한다는 인과법칙을 깨부수는 반례가 아닐까? 저 댓글을 단 사람이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러나 상관관계든 인과관계든 여기 들어맞지 않는 사례가 몇가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관계 자체가 부정되진 않는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경향성과 확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관점에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