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에 대한 오해 (2)
※이 글을 읽고 나면...
1. 'A면 B다' 라는 말이 나오는 기사를 읽고 나서, "나는 A 했는데 왜 B 안 하냐? 기사가 엉터리네" 라는 공격적 댓글을 달지 않게 될 수 있다
(저번 글에 이어서)
인과관계(causality)를 어떻게 해석할지, 달리 말해, 어떤 경우에 두 현상 간 관계가 단순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이는 크게 '결정론적(deterministic) 관점'과 '확률론적(probablistic) 관점'이란 두개의 큰 갈래로 나뉜다.
결정론적 관점은 'A가 B를 유발한다(A causes B)' 라는 문장을 엄격하게 해석한다. A가 발생할 때마다 B가 반드시, 필연적으로(necessarily) 발생하고, A가 일어나지 않을 땐 B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즉, B의 발생이 A의 발생에 종속돼있어야 A가 B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단 것이다.
한편, 우린 'A가 B의 원인이란 말을 더 헐거운 의미로도 사용한다. 가령 휴대전화를 몇 달에 걸쳐 바닥에 반복적으로 떨어뜨렸더니 액정이 깨졌다고 하자. 휴대전화 주인에게 "그러니까 휴대전화를 떨어뜨리지 말았어야지!" 라고 잔소리하는 게 이상하진 않다. 휴대전화를 떨어뜨린 행위가 원인이 돼 액정이 깨지는 결과가 초래됐단 인과관계를 상정하는 데 무리가 없단 뜻이다. 그러나 이 경우 휴대전화를 떨어뜨린 '개별 행위'가 곧바로 액정을 부수는 결과를 일으키진 않았다. 여러 번 떨어뜨린 휴대전화 액정이 비로소 깨져버리기까지, 무수히 많은 '떨어뜨림'에도 액정은 깨지지 않은 채로 유지됐다. 결정론적 관점에서 인과관계의 조건으로 말하는 '필연성(necessity)'이 이 사례에선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는데도 액정이 깨지지 않은 날이 있었다는 건, 원인이 일어났는데 결과가 곧바로 일어나지 않은 날이 있었단 말이기 때문이다.
결정론적 관점에서는 '인과관계'라고 하기 어려운 것도 확률론적 관점에서는 인과관계가 된다. 확률론적 관점은 'A가 B의 원인이다'는 말을' (A가 일어나면 B가 일어날 확률)이 (A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 B가 일어날 확률)보다 크다고 해석한다. 휴대전화를 떨어뜨렸을 때 액정이 깨질 가능성이 휴대전화를 떨어뜨리지 않았을 때 액정이 깨질 가능성보다 크다면 휴대전화를 떨어뜨리는 게 액정이 깨지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엔 한 번의 실행으로 결과가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원인이라 할 만한 사건이 누적되고 누적돼, 어떤 역치(threshold)를 넘고 말았을 때에야 결과로서의 사건이 발생하는 일이 더 흔하다. '예견된 참사/사고'라는 단어로 보도되는 사건 대부분이 그러하다. 부실한 관리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고 방치하다보면 언젠가는 큰 사고가 터진다. 시스템 하에서 사고가 매번 터지지 않았다고 해서 '진짜 문제는 그 시스템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에모리대 심리학과 교수 필립 울프(Phillip Wolff)는 '인과적 다원주의와 힘의 역학(Causal Pluralism and Force Dynamic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인과적 관계는 최종 결과로서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causal relation can hold even when the final result does not occ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