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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토아부지 Jun 05. 2024

당신이라고 이들과 달랐을까…'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너선 글레이저


"그이는 내가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아내 헤트비히가 엄마에게 자랑하며) / "우리 이름을 딴 작전명을 꼭 들려주고 싶었어."(남편 루돌프가 새벽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하며)


인류사 최악의 비극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 맞은편엔 수용소 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살았습니다. 남편 루돌프(크리스티안 프리델)는 가족에게 한없이 자상한 아빠에요. 주말엔 물놀이가고, 밤마다 자녀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줍니다. 동시에 그는 유대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자나 깨나 고민하는 나치의 성실한 일꾼입니다.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는 아름답게 정원을 가꾸며 아이들을 키우는 살림꾼입니다. 동시에 그녀는 못마땅한 유대인 하녀에게 "너 같은 건 재도 못 남아"라고 윽박지르죠. 



5일 개봉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감독 조너선 글레이저)는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비극을 다루지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우슈비츠와 담 하나 사이로 부부가 일궈낸 ‘낙원’과 이들의 일상을 ‘관찰’합니다. 흡사 ‘이 부부가 사는 법’이란 리얼리티쇼 같아요. 결국 나치의 최대한 악랄하고 나쁜 모습, 유태인의 최대한 불쌍한 모습을 보여주고야 마는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들과 결정적 차이 입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악인의 악행을 ‘목격’시키죠. 그런데 감독은 집 곳곳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고정 배치하고 ‘관찰’했습니다. 배우들은 카메라의 위치를 모른 채 연기했고, 곳곳의 카메라가 동시에 이를 찍었어요. 헤트비히가 모피를 입고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습니다. 관찰 예능이었다면 "왜 저래, 깔깔"이란 반응이 자연스러운 장면이지만, 실은 끔찍한 순간입니다. 그 모피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어떤 유대인 여성이 입던 옷이었을 테니까요.



이 영화에서 관객을 섬뜩하게 하는 건 이미지가 아닌 사운드 입니다. 2분 남짓 검은 화면만 나왔던 오프닝이나 하얗고, 빨갛고, 검은 화면에 비명과 절규 소리만 들리는 인터미션에선 귀를 막고 싶어져요. 그렇지만 절규의 공간으로의 초대이자 역사적 비극에 숙고할 기회입니다. 2022년 파리 폭동의 비명·고함, 기차·총소리 등 1년간 전 세계에서 수집한 고통의 소리를 활용했다고 합니다.


가해자인 회스 가족을 건조하게 관찰한 이유는 뭘까요. 남편에게 전출 명령이 떨어지자, 아내는 "당신만 가. 여기가 우리 보금자리야"라고 합니다. 자녀 교육 때문에 생이별하는 기러기 가족이 떠오르지 않나요. 보통의 사람이 할 법한 행동들을 보여주며 같은 상황이라면 관객 너희도 이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비로소 밀려드는 아픔과 괴로움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의무이자 관객으로서 최선의 반응이에요. 너무 일방적으로 윤리적 반응을 강요하는 듯 하지만, 그것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완벽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이먹을수록 다양한 심상을 주는 영화가 더 좋더라고요. 날 선 깔끔함보다. 그렇다고 제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얘긴 아니에요. 조숙해서 그래요.)



깜깜한 밤 어떤 여자가 수용소 유대인들을 위해 사과를 숨겨두는 장면을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장면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루돌프가 아이들에게 자기 전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과 병치시키며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를 강조합니다. 아이러니한 건 밝은 실내 장면에 냉혹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어두컴컴한 네거티브 장면에 인간의 따스한 온기를 담았단 사실입니다. 실제 아우슈비츠에서 은밀하게 저항 활동을 했던 폴란드인 알렉산드라가 모델입니다. 유태인이 남겼을 법한 악보를 주워와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대목은 너무 아름답고, 그래서 더 아픕니다.


루돌프가 연회장을 빠져나오며 텅 빈 복도를 응시할 때, 현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모습으로 전환됐다가 다시 돌아오는 대목은 영화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과거와 현재는 연결돼 있다는 거죠. 현재의 관객 역시 과거의 순간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된다는 겁니다. 이 장면 직전에 루돌프는 구역질을 합니다. 연회장에서 많이 먹어서 체한 게 아닙니다. 현재로부터 밀려 들어오는 거부할 수 없는 구역질입니다. 한 개인의 구토가 아니라 시대의 구토라고나 할까요.



남편 루돌프가 아내에게 자랑한 ‘회스 작전’이란 무엇일까요. 빠른 시간에 많이 유대인을 죽인 성과를 인정받아 아우슈비츠로 돌아온 루돌프는 ‘회스 작전’을 실시해 43만 명의 헝가리 출신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냈고, 한동안 매일 1만 명의 유대인이 가스실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잠든 아내를 깨워가며 자랑했던 일은 구역질 나도록 소름끼치는 일이었습니다. 


<결론은요> ‘감’(80%)

순수재미 3.0

영상미학 5.0

관람후뿌듯함 5.0

종합점수 4.0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021/000264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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