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세 피요르드로 잇는 북유럽 방랑자들의 도시, 스타방에르
트롬쇠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스타방에르로 가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보는 북극의 땅이니까 새벽에 내려다보는 광경이 보고 싶었다. 다시 또 전망대로 향했다.
가는 길에 다음 주에 입대한다는 사촌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군대를 가야만 하지만, 가고 나면 혼자 남겨진 외할머니가 걱정된다. 이 추운 북극까지 뭣하러 왔냐는 할머니의 말투가 어머니와 똑 닮으셨다. 나는 그에 답해 당신의 손자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힘 껏 자랑해 드렸다.
전망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20분 내지 영상 통화로 북극의 눈 밭을 보여드렸다. 내심 이 네모난 창 안에서 비춰야만 하는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 전화를 마치고 전망대로 향하는 약간의 경사진 길은 먼저 떠난 삼촌을 더욱 그립게 만들었다.
추운 곳에서 눈물 흘리면 더 춥게만 느껴진다. 다행히 새벽이라 훔친 눈물을 들킬 일이 없었다. 그렇게 올라가는 동안 이곳의 사람들은 피도 눈물도 흘리기에는 사무치게 추워서 못 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더럽게 춥다. 안 추우려면 뛰어 올라가는 게 좋다.
농사도 지을 수 없고 풀도 자라날 수 없는 이런 극한의 환경인 이곳에서 계속 사는 이유는 이들에게 수입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뭣만 하면 기본 1회 20~30만 원짜리 액티비티들이다 보니 저들의 할로겐 등들이 사뭇 탐욕의 등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혼자 저런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아등바등해서 즐길거리 찾을 수 있는다 하더라도 이들도 먹고살아야지...
사실 오로라 투어는 딱 1번만 하고 혼자 등산 올라가서 체이싱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거의 ktx 값에 가까운데 이곳 경사를 보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원래 이렇게 케이블로 된 코스들이 트레킹 코스라고 하지 않나.
그러나 그나마 할인을 위해 꼭 국제 학생증을 지참하자. 2번 타는 동안 밤에는 확인 안 했지만, 아침이라 확실히 확인한 것 같다.
이 북극 탐험가들의 관문이라 불리는 트롬쇠는 421m의 큰 산이 떡 하니 시내와 마주 보고 있다.
다른 눈산들도 좀 보이는데, 이 산이 돋보적이다.
바로 이게 만년설의 깊이인가? 사람 하나 파 묻혀도 모를 그런 수준으로 발이 푹푹 들어가니 오싹해졌다.
이곳에서 죽으면 그 누구도 나를 구제해주지 않는다.
이곳을 트레킹 하려면 설피는 필수인 것 같다.
이래서 사람들이 우울증에 오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한 1년 정도는 살아볼 만한 것 같다.
쾰른에서 오셨다고 그러셨다. 벨린에서 왔다니까 거기서 뭐 하냐, 왜 여기까지 왔는가. 당신의 국적은 어디인가 호구조사를 해주셨다.
추운 게 좋아요라고 대답하는 나의 말에 그럼 벨린이 잘 맞겠다고 하셨다.
(베를린은 4월에도 눈이 오는 행복의 도시이다)
나의 꿈과 미래,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걱정이 덜 하기를 바라는 듬직한 아들의 자세로서 연구 논문과 끊임없는 지식에 대한 열정과 같은 것들을 다 들어달라고 하면 너무 욕심 많은 거겠지?
그냥 건강한 게 최고다.
햇볕이 드는 곳이라 그런지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한 질척이는 장소였다. 만년설의 원리가 그런 거 아닌가.
이게 바로 양지인가? 눈 산에도 양지바른 곳이 있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라며 해가 뜨는 광경을 느꼈다.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어 기쁘다. 나는 이곳에 도달했다.
트리인데, 전선과 철사로 만들어진 트리는 어느 나라 트리인가.
이제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자 다시 오슬로로 향해서 야간 기차를 타야 한다.
이 성당은 노르웨이에서 유일하게 목재로 만들어진 고딕 건축양식의 대성당이라고 한다.
세계의 가장 북쪽에 있는 성당들 중에 하나임은 분명 하나, 이 시내 한가운데 가로막고 있는 게 신기해서 들어가 보려 했었는데, 운영을 안 했다. 안에 들어가면 부활이라는 그림과 오르간이 있다고 한다.
세계의 끝에서 이렇게 신성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이곳은 대체 우리도 모르게 지구의 문화 환경과 인간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한 고찰은 다음에 하고 커피나 마시러 가자.
이 집이 진짜 맛있다기보다는 이 시간에 연 제일 큰 빵집이라서 인기 있는 것 같다.
점원들이 많이 친절하고, 많은 종류의 빵들이 있다.
커피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놀랐다. 여기에 김연아 화이트 골드 가져다 놓으면 1등 할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트롬쇠에서 오슬로로 3시간 정도 비행기를 탔다.
진짜 아무것도 없다. 물개가 가끔 들른다는데, 뭐 먹을 게 있어야지 들르지.
이 추운 바람을 맞으며 갖은 생각에 빠진다. 인류가 물과 산과 함께 문명을 이루고 살아왔으며, 인터넷의 유통으로 과학의 발전과 덩달아 이곳에 발전도 함께 가야 되는데 대체 왜 LED를 쓰지 않는 것인가라는 고찰.
오슬로 공항에 도착하니 출출한 배를 해결해야 했다.
공항 내부에 음식점 몇몇이 있지만 가장 경악한 곳은 아시아 레스토랑이었다.
일본식 누들이나 불고기 관련 메뉴를 판매했었는데, 기본이 25유로부터 시작했다.
1개에 5유로짜리 나무 톱밥 복합재 같은 샌드위치를 먹을 것인가, 아님 그나마 가격이 괜찮은 붤거킹을 먹을 것인가.
감자튀김은 진짜 이야 이건 너무 성의 없이 튀겼다 싶을 정도로 기름을 안 갈았다. 베를린 쿠담에 가면 파이브가이즈라는 패스트푸드점이 있는데, 거기도 이렇게는 안 판다.
과연 내가 장사꾼의 자식이라 까다로운 것인가, 아니면 이 마치 봉황이라도 갈아 넣어 만든 듯한 치킨버거를 파는 인간들에 대한 합당한 비난인가.
유행 다 지난 탑건 행세를 해보는 강 씨. 오후의 파일럿은 새벽에 기관사로 변신할 예정.
스타방에르로 가는 이유는 프레이케스톨렌(Preikestolen)이라는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코스를 가기 때문인데, 방랑자들의 도시에 빗대어 자연 광경을 보는 것에 아주 기대감이 차 있었다.
이 지역의 피요르드는 뤼세피요르드라고 불리는데, 뤼세피요르드(Lywefjord)는 빛나는 혹은 밝은 이란 뜻의 뤼세(Lywe)와 빙하가 만든 북유럽 특수 지형 명칭인 피요르드(fjord)가 합쳐진 말이다.
이제 오후에 야간열차를 타고 오슬로- 크리스티안산-스타방에르로 향한다.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경험이었기도 했고는 사실 야간기차 타임랩스를 찍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비행기 값을 내고 빨리 도착해서 일정 치르는 것보다 좀 쉬엄쉬엄 가자는 취지가 더 컸다는 건 핑계고
숙박비 + 교통비를 한 번에 해결한다는 것에 초점 맞추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fAKpoyKoQw
스타방에르 가기 전에 노래를 관련된 노래를 듣고 싶었다.
그곳의 문화도 같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한국은 주제가 온통 사랑뿐인데, 독일은 arbeit 인 것처럼 나 라별로 특색이 있는 것 같다. 근데 노르웨이의 이 노래 주제는 경치와 시간에 대한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주제인 듯하다.
그러다가 노래 하나를 찾았는데, 굉장히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음이었다.
위의 유튜브 링크는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태생 가수 한스 페테르 한센이 부른 스타방에르란 노래다. 솔직히 가사보다는 음으로 듣는 게 더 크다. 내가 어찌 알아
Eg e' på vei hjem t Stavanger
나는 스타방에르로 집에 가는 중이야
Itte mange lange år
길지 않은 세월
Eg har sitt verden som en vandringsmann
나에게는 방랑자로서 나만의 세계가 있다
Slik en eventyrar får
모험가가 얻는 대로
Eg ville se meg om i verden
세상을 둘러보고 싶었어
Lera andres liv og kår
다른 사람들의 삶과 상황에 대해 알아보기
Å eg har sitt å eg har lert så mangt
오,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Men det e' nå at eg forstår
하지만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트리를 한 번씩 쳐다봤다.
나도 언젠가 함께 오는 날이 있겠지 ^-^
몰랐었는데, 스타방에르 출신 가수 중에 오로라라는 사람이 있다.
갑자기 오로라 공주 만나러 가는 길이 되어버렸는데, 진짜 만났다가는 사지 분리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객실 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좀 빙빙 돌았는데, 어찌어찌 물어보다 보니 다행히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야간열차 키를 받아야 하므로 열차 내부의 관리 칸에 가서 받아야 했다. 관리 칸이 없다면 식당 칸으로 가자.
(막상 온라인으로만 예약해놓고 어디서 키를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생각보다 넓었다. 2층 침대 뒤편으로 짐을 넣는 공간이 있었다.
메텔과 철이가 모험을 떠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마땅히 씻을 곳도 없었지만, 전기 콘센트이나 화장실은 시설이 나름 괜찮았었다.
사실 그렇게 잘 나온 건 아닌 것 같다.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정신없는 속도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노르웨이의 다섯 번째 밤이 저물었다.
이제 곧 내릴 때가 되어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자 나왔다.
전자레인지가 안된다고 했었나, 도넛이 꽁꽁 얼어붙었었다. 그러나 맛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칼로리다. 행복을 주는 이 따듯한 커피로 입 안에서 녹여주면 된다.
눈 비가 왔었는지 되게 질척거리는 길바닥이었지만, 이곳에 왔다는 것이 좋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멀리 출장 갔다가 오면 이런 느낌을 항상 느끼고 있겠다.
날씨가 그렇게 추운 것은 아니지만, 그 바람이 얼굴을 치는 것이 거슬렸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트레킹 코스를 향해 이동했다. 여긴 죄다 건물이 고딕 양식의 성당뿐이다.
한국식 복합 건물 양식을 저기에 씌워보고 싶은 생각도 났었는데 그렇게 되면 유럽이 아니게 되겠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원래 가고자 했던 프레이케스톨렌 트레킹 코스가 전날 비가 와서 입산 금지령이 나온 것이었다.
더 웃긴 건 이 12월 겨울 시즌이 휴무 기간이라 교통편 없다. 스타방에르에서 페리 타고 타우로 가서 거기서 또 버스 타고 트랙킹 코스에 근접하는 게 일정이었는데, 진짜 뭐 이런 변수가 생겼나.
해저 터미널을 가긴 했었는데, 아무도 거기까지 데려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스 내부는 굉장히 넓고 편했다.
정처 없이 떠도는데 소변이 급해서 아무 데나 내려서 볼 일 보고 싶었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건가 어쩐지 오로라랑 고래 떼부터 시작해서 너무 일이 잘 풀린다 했어.
도착하고 보니 주변에는 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하니까 부동산에 들어가서 조언을 구했다.
친절히 택시 번호를 알려주셨는데, 그 기사님도 오늘은 위험하니 추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 뜻이 있었겠지. 가지 말라는.
솔직히 글씨 알아먹는 게 내 것보다 힘들었다.
트럭킹은 다음 기회에 여름철에 맞추어 오면 되는 거고, 가만히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우니 근처 버스를 타고 가고자 마을 방문을 하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좀 걸었는데, 시간이 살짝 남아서 근처 조류 샛기들을 구경했다.
도넛, 초콜릿빵, 공갈빵 닥치는 대로 다 먹어치운다.
빵집 운영하시는 듯한 노부부께서 오셔서 빵을 뿌리셨는데, 몰려드는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
영상, 사진 자료들이 생각보다 많이 날아갔었다. 그래도 추억은 내 마음속에 남아있긴 무슨 너무 아깝다 아까워.
계획이 틀어지니까 갖은 생각과 불안한 마음과 진심으로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이런 상황이 제일 싫다.
그것 하나만 보고 오게 된 도시인데, 갑작스럽게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데에는 무언가 다른 인연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다.
택시를 한 30분 타고 온 장소인데, 사진 촬영이 너무 빨리 끝났다. 다음 버스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데, 다음 정류장에서도 운행을 하니까 마을도 둘러볼 겸 걷기로 했다.
그렇게 당일 약 22km를 걷게 되었다.
저렇게 돌 표면에 얼었다가 녹았다가 반복하는거보니까 미생물이 엄청 많이 붙어 있겠다고 생각했다.
북유럽을 여행하려면 차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한참을 걷다가 돌이켜지는 오로라 생각이 자주 났다. 여기서는 보기 힘들겠지만, 그 진광경이 잊히지 않는 시간이었다.
씻는다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 같다.
날씨가 소나기 내리듯 눈이 갑자기 내렸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 물개들이나 돌고래가 자주 출몰한다고 한다.
바다를 통해 물품을 싣고 나르는 배들이 자주 보였는데, 그들에게 가끔 먹이를 받나 보다.
이 Forsand라는 마을도 뤼세피요르드를 느낄 수 있는 관광지라고 한다.
여기서 해안가 너머 섬으로 페리를 타고 가면 20만 원 정도의 돈이 든다는데, 저 거리가 만만치 않기보다는 수영해서 갈 수도 없고, 카약 타고 가다가 고래 떼라도 만나면 골로갈 수 있기 때문에 값 비싼 것 같다.
는 사실 북유럽이 진짜 너무 비싼 거다.
물이 하도 맑아서 내부가 다 비치는데,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큰 물고기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마트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1시간이나 기다렸어야 했다.
너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으면서도, 정말 운이 좋게 눈도 맞아보고 물개 체이싱도 했다.
물개 보러 왔구나 여긴.
요정들의 도시, 북유럽의 문화 호빗이 아니라 트롤이 사느 곳인가.
뭔 점이 움직이지 해서 플라스틱인 줄 알았는데, 물개가 맞았다.
근데 내가 본건 둘 중에 무슨 종류였지.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기 전 한 곳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해가 져서 빨리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목적지는 i fjell이라는 바이킹의 검 3 자루가 박혀있는 장소였다.
생각보다 거리가 그렇게 멀지도 않아서 20분 내로 버스 타고 다녀올 수 있었다.
거위들 자유분방하게 키우는 건 스타방에르 고유의 문화 같다.
저것들 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갈듯 말 듯 하는 게 볼만했다.
표지판이 물색할 정도로 검이 눈에 띄었다.
해안가에 돌 덩어리들 사이에 꽂혀있는 이 검들의 명칭은 Sverd i fjell 노르웨이어로 돌에 꽂힌 검이라는 뜻이다.
약 10m 정도 높이의 이 검들은 872년에 노르웨이 첫 왕의 탄생을 의미하는 Hafrsfjord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왕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20세기에 Olav 왕이 선보였다고 한다.
가장 큰 사이즈는 노르웨이 초대 왕 Harald Fairhair 왕의 것이고, 나머지 2개는 패배한 왕들의 것으로 각각 자유, 평화, 통일을 상징한다.
검들이 굉장히 크다. 노르웨이 전사들의 냄새가 나는걸
마력 없는 사람은 가렌 같은 챔피언 밖에 못하는 것이다.
저거 때문에 이 인연도 없는 스타방에르로 오게 된 것도 있다.
아쉽게도 트럭킹은 하지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 함께 오라는 의미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중년 여성 분께서 길을 버스 스케줄을 물어보셨다. 우리도 여기 초행길인데;;
그래서 여기 오시지 말고, 인터넷 검색해 보시거나 스케줄을 알아보시라는 말에 아차 싶었다.
이 분은 여기 그 방법을 몰라서 오신 거다. 외워가시려는 것을 보고. 여기 정류장에 붙여진 운행표를 휴대폰으로 찍어가는 걸 말씀드리니까 웃음꽃 피우신다.
그래 이곳에 온 이유가 이 분의 발걸음 아끼게끔 도와드리러 온 것도 있겠다.
이제 오늘을 떠나 다음날의 마지막 일정을 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숫가를 보기로 했다. 얼음들이 많이 녹아 백조샛기들이 많이 보였다.
연어로 시작해서 연어로 끝나는구나.
매우 아쉬웠던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동물들은 다 보게 된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될 때, 지금을 기억하며 실수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노르웨이 여섯 번째 밤이 저물었다.
3줄 요약.
1. 북극의 관문 트롬쇠를 떠나 방랑자들의 도시 스타방에르로 향했다.
2. 안전 문제로 3대 피요르드 트럭킹은 하지 못했지만, i fjell과 물개는 보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3. 연어가 맛있다. 근데 적당히 비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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