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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Dec 10. 2023

밤바다의 등대

의지할 곳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왜 대신해주려고 하는데?"
"네가 친구가 없는 이유는 그 이기적인 점 때문이야!!!"


아침부터 나와 다투고 화가 잔뜩 나신 우리 집 여사님의 대사이다.


아침 8시, 출근길에 확인해 본 휴대폰에는 일찍이 카톡과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조심스럽게 이모티콘과 함께 섞어 내 안부를 물어보는 여사님의 말에 나는 좀 화가 났었다. 우리 집 여사님은 속감정을 참 알기 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길을 나서며 전화를 걸어보니 아침밥 여부부터 궁금해하는 당신이다. 나는 조금 짜증 섞인 감정을 드러냈다. 이 조금의 감정을 보이는 태도에도 당황스러워하는 여사님의 표정을 목소리로도 알 수 있다.

이 날 내 지도교수님과 아침 미팅이 있는 날로 알고 계셨었는데, 전 날에 갑자기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렸다. 그러자 어떻게 하냐며 도와주려는 당신에게 나는 되려 화를 냈다.


그게 전혀 문제 되는 일이 아닌데, 앞 뒤 자세한 설명은 듣지 않고 자식의 일이라면 감정을 크게 키워 어떻게든 해답을 찾아주려는 당신이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나의 급발진에 돌아오는 말은 위의 대사와 같다.


이런 날의 출근길은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꾸역꾸역 걸어간 베를린 지하철의 곰팡이 냄새는 내 꿍한 속과 다를 게 없다. 창 밖에 눈 내린 풍경을 봐도 응어리진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당신은 언제나 아들의 눈치를 본다. 이런 덜 떨어진 멍청이를 애지중지 여기며 사는 모습이 나는 싫었다.

괜히 새벽에 나를 깨울까 봐 아침 시간에 맞춰서 보내 놓은 카톡, 자주 쓰지도 않는 귀여운 이모티콘부터 아들과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박사 학위 취득이 가까워지니 더욱더 아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당신이다. 그런 당신은 남에게 의지 할 줄 모르고, 친구도 없는 나를 안타까워한다.


사실 나는 남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렇게 지금까지 내 가족들을 의지하고 있다. 내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이 거친 밤바다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등대가 되어주는 그들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 모험 이야기의 주제는 그들로 하여금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왜 전화했냐 새 x야"

"죄송해요. 아들이 잘못했어요"


못 다 헤친 꿍한 마음의 응어리를 다 풀어보고자 본심을 전해드렸다. 나는 당신이 그 먼 곳에서 나를 걱정하는 게 더 마음 아프다, 박사가 무슨 대단한 직업이라고 왜 상전 모시듯 자식 눈치를 보는가 등등.


"알았어 끊어, 들어가"


그럼에도 내가 가장 의지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차마 입 밖에서 꺼내지도 못하는 소심한 얼간이가 여기 있다. 언제쯤 좀 솔직해질 수 있을까 싶다. 언젠가 밝혀줄 등대가 필요 없을 시기가 온다면 그때는 내가 밝혀줘야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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