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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Nov 05. 2023

밤바다 저 너머

인천에서 베를린으로

다음에는 언제 들어오니?

박사 따고 들어갈게요.


라는 대화를 마지막으로 약 2년이 지났다.

 

2022년 1월,

떠나는 날 아침부터 공항에 도착하는 새벽 때까지 종일 눈망울이 촉촉한 당신의 얼굴은 안경으로도,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감정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렇게 가게 일을 마치고 향하는 인천공항으로의 운전 길은 무척이나 말이 없다. 고요한 밤 인천대교 위를 빠르듯 느리듯 달리는 자동차, 이 가족들의 분위기는 칠흑 같이 어두운 바다 저 편으로 함께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왜 이리 심각해? 뭐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라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입을 못 열고 창문만 바라보는 모질이 아들이 있다.


밤바다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 즈음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분명 짐을 내가 챙겨놨었는데, 왜 이상하게도 더 무겁게 느껴지는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웬 후라이펜이며 약이며, 마스크 박스가 들어가 있다. 비상약은 그렇다 쳐도 이 중국 집에서 쓸법한 후라이펜은 대체 어디서 난 거지? 그리고 이때 들어있는 마스크들은 2년 가까이 된 지금에도 남아돈다. 장사해도 될 정도이다.


무게를 이미 오버했다. 짜증 내며 빼 버리니 잔뜩 성을 내며 다시 담으려는 당신과 나는 다투었었다.

백신을 이미 3번이나 맞았음에도, 혹여나 당신의 자식이 코로나에 걸릴까 잠기지도 않는 저 캐리어에 마구잡이로 마스크를 힘겹게 다시 구겨 넣고 있다. 떠나기 30분 전, 캐리어와 실랑이를 벌이며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넣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당신에게 나는 화가 났었다. 본인의 건강을 더 챙겼으면 좋겠다. 나 보다도 말이다. 이 50대 중년의 여성은 나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게 많다. 헤어짐이 익숙하지 않은 거다. 그런데 그건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안심시켜 드리고 웃으며 게이트로 들어가려 했는데 막상 헤어질 때가 되니 말없이 가만있던 아버지도 눈가에 눈물 맺히긴 마찬가지였다. 반드시 박사가 되어 돌아오겠다며 기약하고 검색대로 향했다. 기어코 눈물이 터져 손수건을 꺼내는 당신을 애써 못 본 척 발걸음을 옮겼다. 보게 되면 못 들어갈 것 같았다.


베를린행 비행기를 타고나니 동생이 가족들의 응원이 담긴 녹음을 보내왔다. 눈가에 눈물이 가리어졌다. 이륙하는 와중에도 눈물로 가득한 건 처음이네 그나마 옆자리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가족들과 헤어져 슬픈 게 아니라, 믿어줘서 고마운 감정으로만 가득했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 때 괜찮냐고 물어봐주신 승무원 분께서 많이 황당하셨겠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울어대는 게 웃기네. 안전벨트 확인할 때는 모른척 지나가 주셨는데, 기내식 준비 할 때는 조용히 와서 휴지를 건네 주셨다.


숨 죽여 우는 게 들킬까봐 나름 집중하고 말하는데, 울면서도 비프스테이크는 먹고 싶은 승객이라니.

아닌가? 이분들은 이런 상황들을 자주 보신건가. 사실 그 와중에 와인도 훌쩍대며 시켰다. 술을 좀 마셔야지 진정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길, 가족들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들었다. 울다가 웃다가. 이제 창 밖에는 어느새 어두캄캄한 밤 바다로 들어섰다. 나는 또 다시 밤 바다 저 너머로 건너간다.

당신은 본인의 짧은 가방끈 때문에 내 꿈에 도움 줄 수 없다며 한탄하곤 한다. 그렇게 다른 부모들과 본인을 비교하며 속앓이 하는 게 마음 아플 뿐이다.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야만 마주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힘만으로 다다러야 한다. 그 때는 보다 내 꿈과 가까워진 곳에 도착할 것이다.


이제 다시 만날 시간이 머지않아 다가온다. 다음 디펜스는 나로 정해졌다. 물론 박사학위만이 내 꿈의 끝이 아니지만,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자부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방심 말고 정신 똑바로 잡고 살아야만 더 확실해질 수 있다. 당신의 자랑스러움이 말이다. 그렇게 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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